40.
스님께서 어느 땐가 말씀하셨다.
"부처의 향상사(向上事)를 체득해야만 조금이라도 말할 자격이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말을 할 땐 그대가 듣질 못한다."
"스님께선 들으시는지요?"
"말하지 않을 때라면 듣는다."
41.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떻게 해야 바르게 질문하고 바르게 답변하는 것입니까?"
"입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묻는다면 스님께선 답변하시겠습니까?"
"물은 적도 없는데."
42.
한 스님이 물었다.
"방편을 통해 들어가는 것은 보배가 아니다' 하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만두는 것이 좋겠네."
43.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세상에 나오시어 몇 사람이나 긍정하셨습니까?"
"긍정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어째서입니까?"
"그들은 제각기 기상이 왕과 같기 때문이다."
44.
스님께서 「유마경(維摩經)」을 강의하는 스님에게 물으셨다.
"'지혜[智]로도 알 수 없고 분별[識]로도 알 수 없다' 하였는데 이것이 무슨 말인가?"
"법신을 찬탄하는 말입니다."
"법신이라 할 때 그 말 자체가 벌써 찬탄한 것이다."
45.
한 스님이 물었다.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는다'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오조 홍인(五祖弘忍)스님의 의발(衣鉢)을 전수받지 못했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받아야 마땅합니까?"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이다."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이기만 하면 의발을 전수 받습니까?"
"그렇긴 하나 부득불 주지 않을 수는 없다네."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저 '본래 한 물건도 없다'고 해도 의발을 전수 받기에는 합당하질 못하니 그대는 말해보라. 어떤 사람이 합당하겠는지를. 여기에서 딱 깨쳐줄 만한 한 마디[一轉語]를 던져보아라. 자, 어떤 말을 해야겠는가."
그때 한 스님이 96마디를 하였으나 모두 계합하질 못하다가 마지막 한 마디에 비로소 스님의 뜻에 적중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왜 진작 이렇게 말하지 않았더냐?"
또 다른 스님 하나가 몰래 듣다가 마지막 한 마디만을 듣지 못하여 드디어 그 스님에게 설명해주기를 청하였으나 스님은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3년을 쫓아 다녔으나 끝내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하루는 병이 들어 말하였다.
"나는 3년이나 앞의 이야기를 설명해 달라고 청하였으나 자비를 받지 못하였다. 선의로 하여 되지 않았으니 악의로 하겠다."
드디어는 칼을 가지고 협박하였다.
"나를 위하여 설명해 주지 않는다면 그대를 죽이겠다."
그 스님은 두려워하면서 말하였다.
"우선 기다리게. 내 그대를 위해 설명하겠네."
이리하여 말하였다.
"설사 가져온다 해도 둘 곳이 없다고 하였다네."
그 스님은 절하고 물러갔다.
설두 중현스님은 말하였다.
"그가 이미 받지 않았다면 그를 안목있다 하겠으나 가져오면 반드시 눈이 멀리라. 조사의 의발을 보았느냐? 여기에서 문에 들어가야 두 손에 그것을 받을 수 있으니, 대유령(大庾嶺)에서 한 사람이 이끌어도 일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사 온 나라 사람이 찾아온다 해도 떠나갔을 것이다."
취암 지(翠巖芝)스님은 말하였다.
"그의 의발을 얻는데 모두 합당하지 않아야 도리어 옛 부처와 동참하리라. 말해보라. 동참할 자 누구인가."
천동 정각스님은 말하였다.
"나 장노(長蘆)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곧장 가져와야지, 가져오지 않는다면 받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랴. 가져온다면 필시 안목이 있다 하겠으나, 받지 않는다면 참으로 눈이 멀었다 하리라. 알겠느냐.
관조(觀照)가 다하니 자체는 의지할 바 없어 온 몸이 대도에 합하네."
영은 악(靈恩嶽)스님이 취암의 말을 거량하고 나서 말하였다.
"양자강 도착하니 오(吳)나라 땅 다하고
언덕 넘어 월(越)나라는 산이 많구나."
46.
한 암주는 불안하여 스님네들만 보면 언제나,
"구해주게, 구해줘"라고 계속 말을 하였으나 알아듣지 못하였다. 스님께서 그리하여 그를 방문하였더니 암주는 역시 말하였다.
"구해주십시오."
"어떻게 구해주지?"
"약산(藥山)의 법손이 아니면 운암(雲巖)의 적자가 아니십니까?"
"그렇소."
암주는 합장하면서 "선지식이여! 안녕히 가십시오" 하더니 그냥 죽어버렸다.
한 스님이 물었다.
"그 스님은 죽어서 어디로 갑니까?"
"불이 탄 뒤 한 줄기 순나물이라네."
47.
스님께서 대중운력 시간에 요사채를 순찰하다가 한 스님이 대중운력에 가지 않은 것을 보고는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째서 가지 않았느냐?"
"몸이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평소 건강할 땐 왜 왔다갔다 하였느냐?"
48.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평소에 학인더러 조도(鳥道)로 다니라 하셨습니다. 어떤 길이 조도인지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도 만나질 않는 길이라네."
"어떻게 가야 합니까?"
"곧장 그 자리에서 사심 없이 가야만 하네."
"조도로 가기만 한다면 바로 본래면목 아닙니까?"
"그대는 무엇 때문에 전도(顚倒)되느냐?"
"어느 곳이 저의 전도된 곳입니까?"
"전도되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종을 낭군으로 오인하느냐?"
"무엇이 본래면목입니까?"
"조도로 가지 않는 것이다."
그 뒤에 협산 선회(夾山善會 : 805∼881)스님이 어느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동산에서 옵니다."
"동산스님은 어떤 법문을 제자들에게 보여주더냐?"
"평소에 학인들더러 3로(三路)를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3로라더냐?"
"현로(玄路) · 조도(鳥道) · 전수(展手)였습니다."*
"정말 그런 말씀을 하셨다더냐?"
"실제로 하셨습니다."
"천리(千里)길을 따라가면
임하(林下)의 도인이 슬퍼한다."
부산 법원(浮山法遠 : 991∼1067)스님은 말하였다.
"지는 낙엽을 보지 않으면
어떻게 가을이 깊었음을 알랴."
49.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향상인(向上人) 부처가 있음을 알아야 말할 자격이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향상인 부처입니까?"
"부처가 아니다[非佛]."
보복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부처라 해도 틀린다."
법안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방편으로 부처라고 부른다."
50.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디 갔다 오느냐?"
"신발을 만들고 옵니다."
"스스로 알았느냐, 남에게 배웠느냐?"
"남에게 배웠습니다."
"그가 그대에게 가르쳐 주더냐?"
"진실하기만 하면 어긋나지 않습니다."
51.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현묘한 중에서도 가장 현묘함입니까?"
"죽은 사람의 혓바닥 같은 것이다."
52.
스님께서 발우를 씻다가 까마귀 두 마리가 개구리를 놓고 다투는 것을 보셨다. 한 스님이 문득 여쭈었다.
"어째서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너 때문이지."
53.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비로자나 법신부처입니까?"
"벼 줄기·좁쌀 줄기이다."
54.
한 스님이 물었다.
"3신(三身) 가운데 어느 부처님이 여러 테두리[數]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나도 이제껏 이 문제에 간절했다."
그 스님이 그 뒤에 조산(曹山)스님에게 물었다.
"스승[先師]께서 말씀하시길, '나도 이제껏 이 문제에 간절했다'라고 하셨는데 그 뜻이 무엇이었을까요?"
조산스님은 말하였다.
"처음부터 없애버려야 한다."
다시 설봉스님에게 묻자 설봉스님은 주장자로 입을 후려치더니 말하였다.
"나도 동산에 갔다 왔다."
승천 종(承天宗)스님은 말하였다.
"몸을 바꿀 만한 한 마디[一轉語]여
바다는 잔잔하고 강물은 맑아라
몸을 바꿀 만한 한 마디여
바람은 높고 달은 차가워라
몸을 바꿀 만한 한 마디여
도적의 말을 타고 도적을 쫓는구나
홀연히 납승이 나와서 전혀 아니라고 해도
그가 지혜 눈을 갖추었다 인정하여라."
묘희(妙喜)스님은 말하였다.
"이렇게 어지러운 이야기로는 꿈에서도 3신(三身)을 보지 못하리라."
다시 말하였다.
"어째서 명치 끝에 침 한 방을 놓지 않느냐."
스님 회하의 한 노숙(老宿)이 운암스님에게 갔다가 돌아오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운암스님께 가서 무얼 하였습니까?"
"모르겠네."
대신 말씀하셨다.
"수북이 쌓였구나."
55.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청산과 백운의 아버지입니까?"
"빽빽히 우거지지 않은 자이다."
"무엇이 백운과 청산의 아이입니까?"
"동서를 분별하지 않는 자이다."
"백운이 종일 의지한다 함은 무엇입니까?"
"떠나지 못함이다."
"청산이 아무것도 모른다 함은 무엇입니까?"
"둘러보지 않는 것이다."
56.
한 스님이 물었다.
"맑은 강 저쪽 언덕엔 어떤 풀이 있습니까?"
"싹 트지 않는 풀이 있다."
57.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세상에서 어떤 중생이 가장 괴롭겠느냐?"
"지옥이 가장 괴롭습니다."
"그렇지 않다. 여기 가사 입고서 대사(大事)를 밝히지 못한 것을 가장 괴롭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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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산은 3로(三路 : 鳥道 · 玄路 · 展手)라는 격식으로 납자들을 지도했다. 조도는 새가 공중을 날 때 아무 자취를 남기지 않듯이 유무(有無) · 단상(斷常) 등의 자취를 남기지 않는 경계, 현로는 유무 · 단상 등 상대를 떠난 묘한 경계, 전수는 손을 펴서 중생에게 나아가는 경계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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