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조동록曹洞錄

[동산록/ 오가어록(五家語錄)] 2. 감변 · 시중 24~39.

쪽빛마루 2015. 5. 3. 04:28

24.

 서울의 미화상(米和尙)이 어떤 스님을 시켜 앙산(仰山)스님에게 묻도록 하였다.

 "요즘에도 방편을 통한 깨달음[假悟]이 있습니까?"

 앙산스님이 대답하였다.

 "깨달음이라면 없질 않지만 두번째 자리[第二頭]에 떨어져 있는데야 어찌하랴."

 다시 미화상은 그 스님더러 스님께 묻도록 하였다.

 "저 완전한 깨달음[究竟]은 어떠합니까?"

 스님께서 대답하셨다.

 "도리어 그에게 물어야 하리라."

 

25.

 진상서(陳尙書)가 물었다.

 "52위 보살 가운데 무엇 때문에 묘각(妙覺)이 보이질 않습니까?"

 "상서께서 묘각을 직접 보십시오."

 

26.

 어떤 관리가 물었다.

 "수행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대가 남자가 되면 그때 가서 수행을 하지."

 

27.

 스님께서 시중(示衆)하였다.

 "납자들이여, 늦여름 초가을에 이곳 저곳으로 갈 때 곧장 만리 밖 풀 한 포기 없는 곳으로 가야 하리라."

 한참 잠자코 계시다가 다시 말을 이으셨다.

 "만리 밖엔 한 포기 풀도 없는데 어떻게 가랴."

 그 뒤에 누군가 석상(石霜)스님에게 이 말씀을 드렸더니 석상스님이 말하였다.

 "어째서 문만 나서면 바로 풀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스님께서 듣고는 말씀하셨다.

 "이 나라에 이런 이가 몇 명이나 있을까?"

 

  대양 경현(大陽警玄: 942∼1027)스님은 말하였다.

 "지금 문을 나서지 않고도 풀이 가득하다고 말하리라. 말해보라. 어느 곳으로 가야겠는가."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하였다."

 "깎아지른 바위 온갖 푸른 풀을 지키지 말라. 흰구름에 눌러앉으면 종지(宗)가 오묘하지 못하리."

 

 "백운 수단(白雲守端: 1025∼1072)스님은 말하였다.

 "암주(菴主)를 볼 수 있다면 바로 동산스님을 볼 것이며, 동산 스님을 본다면 암주를 보리라. 동산스님을 보기는 쉬워도 암주를 보기는 어려운데, 그가 주지(住持)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지도 못했느냐, '구름은 고갯마루에 한가하여 사무치질 않는데 흐르는 시냇물은 쉴새없이 바쁘다'고 했던 말을."

 

 위산 과(潙山果)스님은 말하였다.

 "못과 무쇠를 절단하여 향상(向上)의 현묘한 관문을 활짝 열고 진실된 말씀으로 바로 그 사람의 요로(要路)를 지적한다. 말해보라. 그대는 '문을 나서면 바로 풀이다'고 한 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석상스님은 그렇게 말했고 상봉(上封)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움직이지 말라. 움직이면 곤장 30대를 맞으리라."

 

 경산 종고(徑山宗杲 : 1089∼1163)스님은 말하였다.

 "사자의 젖 한 방울로 노새 젖 열 섬을 물리쳤다."

 

28.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의 본래 스승을 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뵐 수 있겠습니까?"

 "같은 연배이니 격의없이 만나면 된다."

 그 스님이 이어서 말하려고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앞의 자취를 밟지 말고 다른 질문 하나 해보라."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운거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그렇다면 스님의 본래 스승을 보지 못합니다."

 그 뒤에 교상좌(皎上座)가 이를 들어 장경(長慶)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연배가 다른 것입니까?"

 장경스님은 말하였다.

 "옛사람이 이렇게 말했는데, 교화상! 다시 여기에서 무얼 찾느냐?"

 

29.

 어떤 스님이 물었다.

 "추위와 더위가 찾아오면 어떻게 피합니까?"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추울 땐 그대를 춥게 하고 더울 땐 그대를 덥게 하는 곳이지."

 

 "투자 동(投子同)스님은 말하였다.

 "하마터면 그리로 갈 뻔했군."

 

 낭야 혜각스님은 말하였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한다면 '큰방으로 가라'고 했으리라.

 

 운거 효순(雲居曉舜)스님은 말하였다.

 "가엾은 낭야스님은 이렇게 처신을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어디가 추 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한다면 '삼동(三冬)엔 따뜻한 불을 쬐고 한더위[九夏]엔 시원한 바람을 쏘이라' 했으리라."

 

 보봉 극문(寶峯克文: 1075∼1102)스님은 말하였다.

 "대중아! 알았다면 신통희유하면서 어느 때라도 추위와 더위를 개의치 않아도 무방하겠으나, 모른다면 추위와 더위 속에서 겨울과 여름을 보내도록 하라.

 

 "상봉 재(上封才)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의 한 구절은 주인과 손님이 교대로 참례하고 정 · 편(正 · 偏)이 섭렵해 들어간다 할 만하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로 피하려느냐. 일 없이 산에 올라 한 바퀴 돌아보노라. 여러분에게 묻노니, 알겠느냐.

 

 "늑담 문준(泐潭文準: 1061∼1115)스님은 말하였다.

 "다른 사람을 위할 때라면 물이라 해도 따뜻하지만 남을 위하지 않을 땐 불이라 해도 차갑다."

 

30.

 상당하여 "사은삼유(四恩三有)*를 받지 않을 자가 있느냐?" 하셨는데 대중이 대꾸가 없자 다시 말씀하셨다.

 "이 뜻을 체득하지 못한다면 끝없는 근심을 어떻게 벗어나겠느냐? 다만 마음마다 사물에 걸리지 않고 걸음마다 가는 곳 없어 항상 끊어지지 않아야 비로소 상응하리라. 부질없이 날을 보내지 말고 노력하여라."

 

31.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디 갔다 오느냐?"

 "산에 갔다 옵니다."

 "꼭대기까지 올라갔었느냐?"

 "갔었습니다."

 "그곳에 사람이 있더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정상에 도달하진 못했구나."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사람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거기 머물지 않았느냐?"

 "머무는 것은 사양하지 않습니다만 서천(西天)에 긍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원래 그대를 의심했었다."

 

32.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물소 뿔[駭雞犀]같은 것이다."

 

33.

 한 스님이 물었다.

 "뱀이 개구리를 삼킬 때 구해주어야 옳겠습니까, 구해주지 않아야 옳겠습니까?"

 "구해준다면 두 눈이 멀어버릴 것이며, 구해주지 않으면 형체도 그림자도 안 보일 것이다."

 

34.

 위독한 스님 하나가 스님을 뵈려 하기에 스님께서 그에게 갔다.

 "스님이시여, 무엇 때문에 중생을 구제하지 않습니까?"

 "그대는 어떤 중생이더냐?"

 "저는 대천제(大闡提)중생입니다."

 스님께서 잠자코 계시자 그가 말하였다.

 "사방에서 산이 밀어닥칠 땐 어찌합니까?"

 "나는 일전에 어떤 집 처마 밑을 지나왔다."

 "갔다 돌아왔습니까, 갔다 오지 않았습니까?"

 "갔다 오지 않았다."

 "저더러는 어느 곳으로 가라 하시렵니까?"

 "좁쌀 삼태기 속으로 가라."

 그 스님이 "허(噓)" 하고 소리를 한 번 내더니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는 앉은 채로 입적[坐脫]하자 스님은 주장자로 머리를 세번 치면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그렇게 갈 줄만 알았을 뿐 이렇게 올 줄은 몰랐구나."

 

 소각 근(昭覺勤)스님은 말하였다.

 "행각하는 납자라면 누구나 이 한 건의 일을 투철히 해결하려 해야 한다. 이 중은 이미 대천제 중생으로서 사방에서 산이 밀어닥칠 때서야 바쁘게 손발을 허둥댔다. 동산스님이 큰 자비를 가지고 그에게 한 가닥 길을 평평하게 터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이처럼 갈 줄 알았으랴. 그러므로 옛 사람은 말하기를, '임종할 즈음에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이다 범부다 하는 알음알이가 다하지 않는다면 노새나 말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면치 못한다' 하였던 것이다."

 동산스님이 말한, '나도 어떤 집 처마 밑을 지나왔다. 좁쌀 삼태기 안으로 가라' 했던 경우, 서로 맞서 사산(四山)을 막으면서 사산을 막지 않았다. 이쯤 되어서는 물통의 밑바닥이 쑥 빠져야 하리라. 말해보라. 동산스님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알았느냐?

 금닭[金雞]은 유리 껍질을 쪼아서 부수고, 옥토끼는 푸픈 바다문을 밀쳐 여는구나."

 

35.

 야참(夜參)에 등불을 켜지 않았는데 한 스님이 나와서 물었다. 물러난 뒤에 스님은 시자 더러 등불을 켜라 하셨다. 그리고는 조금 전에 말을 물었던 스님을 불러 나오라 하였다. 그 스님이 가까이 앞으로 나오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밀가루 석 냥(兩)을 이 상좌에게 갖다 주어라."

 그 스님은 소매를 털고 물러나더니 여기서 깨우친 바가 있었다. 드디어 의복과 일용품을 다 희사하여 재를 베풀고 3년을 산 뒤에 하직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가게."

 그때에 설봉스님이 모시고 섰다가 물었다.

 "이 스님이 하직하고 떠나는데 언제 다시 올까요?"

 "그는 한 번 떠날 줄만 알 뿐 다시 올 줄은 모른다네."

 그 스님은 큰방으로 돌아가더니 의발(衣鉢) 아래 앉아서 죽었다. 설봉스님이 올라가 아뢰었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렇긴 하나 나를 따라오려면 3생(三生)은 더 죽었다 깨나야 할 것이다."

 

36.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디서 오느냐?"

 "삼조(三祖)스님의 탑(塔)에서 옵니다."

 "이미 조사의 처소에서 왔는데 다시 나를 만나서 무엇 하겠느냐?"

 "조사라면 다르겠습니다만 저와 스님은 다르지 않습니다."

 "내 그대의 본래 스승을 보고 싶은데 되겠느냐?"

 "스님부터 스스로 나오셔야 될 것입니다."

 "내 조금 전에는 여기 있질 않았었다."

 

37.

 한 스님이 물었다.

 "서로 만나서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는데 바로 모든 뜻을 알 땐 어떻습니까?"

 스님은 이에 합장한 손을 이마까지 올렸다.

 

38.

 스님께서 덕산스님의 시자에게 물으셨다.

 "어디서 오느냐?"

 "덕산에서 왔습니다."

 "찾아와서 무얼 하려는가?"

 "스님을 공손히 따르렵니다."

 "세간에서는 무엇이 가장 공손히 따르는 것이냐?"

 시자는 대꾸가 없었다.

 

39.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천 사람, 만 사람 가운데 있으면서 한 사람을 등지지도 않고 그 한 사람을 향하지도 않는다. 그대들은 말해보라. 이 사람이 어떤 면목을 갖추었는지를."

 운거스님이 나오더니 말하였다.

 "저는 법당에 참례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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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은삼유(四恩三有) : 주변의 인연과 윤회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