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이름이 무엇이냐?"
"아무개입니다."
"무엇이 그대의 주인공이냐?"
"뵙고 대꾸하는 중입니다."
"괴롭다, 괴로워. 요즘 사람들은 으레껏 모두 이러하니 나귀가 앞서고 말이 뒤따라가는 줄도[通常事] 모른다 하겠다. '자기를 위하려다가 불법이 가라앉는다' 하더니 바로 이런 것이구나. 객 가운데 주인[賓中主]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주인 가운데 주인[主中主]을 알아내랴."
"무엇이 주인 가운데 주인입니까?"
"그대 스스로 말해보라."
"제가 말한다면 객 가운데 주인이 됩니다.
운거스님이 대신 말하기를, '내가 말한다면 객 가운데 주인이 아니라 하겠다'라고 하였다.
"무엇이 주인 가운데 주인입니까?"
"이처럼 말하기는 쉽다만 계속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시고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아아, 요즈음 도를 배우는 부류들을 보면
누구나가 문 앞만을 알 뿐이니
서울에 들어가 성주(聖主)께 조회하려 하면서
동관(潼關)에 이르러 그만두는 것과도 같구나.
嗟見今時學道流 千千萬萬認門頭
恰似入京朝聖主 祗到潼關卽便休
59.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도는 무심히 사람에 합하고 사람은 무심히 도에 합한다. 그 뜻을 알고 싶으냐? 하나는 늙고 하나는 늙지 않는다."
그 뒤에 어떤 스님이 조산(曹山)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늙는다'고 한 하나입니까?"
"부추켜 지탱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이 '늙지 않는다'고 한 하나입니까?"
"고목(枯木)이다."
그 스님이 다시 소요 충(逍遙忠)스님에게 말하였더니 충스님은 말하였다.
"3종과 6의[三從六義]로다."
60.
오설(五洩)스님이 석두(石頭)스님 처소에 와서 말하였다.
"한 마디에 서로 계합한다면 머물고 계합하지 못하면 떠나겠습니다."
석두스님이 기대 앉자 오설스님은 그냥 떠났다. 석두스님은 바로 뒤따라가서 불렀다.
"스님!"
오설스님이 머리를 돌리자 석두스님은 말하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이것일 뿐이다. 깨달아[回頭轉腦] 무엇 하겠느냐."
오설스님은 홀연히 깨닫고 주장자를 꺾어버렸다.
스님께서 이 인연을 들어 말씀하셨다.
"당시에 오설선사[先師]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알아차리기가 매우 어려웠으리라. 그렇긴 하나 아직은 가고 있는 도중이다."
61.
한 스님이 대자(大慈)스님을 하직하자 스님이 물었다.
"어디로 가려느냐?"
"강서로 가렵니다."
"내 그대에게 한 가지 힘든 일을 시키려는데 괜찮겠느냐?"
"스님께 무슨 일이 있으신지요?"
"나를 데려갈 수 있겠느냐?"
"스님보다 더 나은 자가 있다 해도 데려가지 못합니다."
그러자 대자스님은 그만두었다.
뒤에 그 스님이 스님(동산)께 말씀드렸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해서야 되겠느냐."
"스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라면 데려갈 수 있다고 하겠다."
법안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스님께서 떠난다면 저는 삿갓을 들겠습니다."
스님께서 다시 그 스님에게 물었다.
"대자스님께서는 특별히 무슨 법문을 하시더냐?"
“언젠가는 이런 법문을 하셨습니다. ‘한 길[一丈]을 말로 하는 것이 한 자[一尺]를 가져오느니만 못하며, 한 자를 말로 하는 것이 한 치[一寸]를 가져오느니만 못하다.’”
"나라면 그렇게 말하진 않겠다."
"스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행(行)하지 못할 것을 말해내기도 하며, 말[說]하지 못할 것을 행해내기도 한다."
62.
약산스님이 운암스님과 함께 산을 유랑하는데 허리에 찬 장도에서 쨍그랑쨍그랑하는 소리가 나자 운암스님이 물었다.
"어떤 물건이 소리를 내지?"
약산스님은 칼을 뽑아 별안간 입을 찍는 시늉을 하였다.
스님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고는 시중(示衆)하셨다.
"살펴보라. 저 약산스님이 몸을 던져 이 일 위했던 것을. 요즈음 세상 사람들아. 향상의 일을 밝히고 싶다면 이 뜻을 체득해야만 하리라."
약산스님은 야참(夜參)에 등불을 켜지 않고 법어를 내리셨다.
"나에게 한 구절이 있는데 수소가 새끼를 낳으면 그때 가서 말해주겠다."
한 스님이 말하였다.
"수소가 새끼를 낳는다 해도 스님께서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약산스님이, "시자야, 등불을 가져오너라" 하자 그 스님은 몸을 빼서 대중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운암스님이 이 문제를 가지고 스님께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이 중이 도리어 이해하였군. 다만 절을 하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약산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호남에서 옵니다."
"동정호의 물은 가득 찼더냐?"
"아직은요."
"그렇게 오랫동안 비가 내렸는데 어째서 아직 차지 않았을까?"
그 스님이 대꾸가 없었다.
도오(道吾)스님이 말하였다.
"가득 찼습니다."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담담(湛湛)하다."
스님은 이 문제를 두고 말씀하셨다.
"어느 세월엔들 늘고 불고 한 적이 있더냐."
약산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가 점을 칠 줄 안다고 들었는데 그렇느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 점 한번 쳐보아라."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운암스님이 이 문제를 스님께 물었다.
"그대라면 어떻게 하겠소?"
"스님 태어난 달[生月]이 언제지요?"
63.
스님은 5위군신송(五位君臣頌)을 지어서 말씀하셨다.
정중편이여
삼경초야 달은 한창 밝은데
서로 만나 알지 못함을 괴이하게 여기지 말라
그래도 암암리에 지난날의 미움을 품는구나.
正中偏
三更初夜月明前
莫怪相逢不相識
隱隱猶懷舊日嫌
편중정이여
눈 어둔 노파 고경을 마주하여
얼굴을 분명히 비춰보니 따로 진실 없도다
다시는 머리를 미혹하여 그림자로 오인하지 말라.
偏中正
失曉老婆逢古鏡
分明賣頁面別無眞
休更迷頭猶認影
정중래여
'무' 속에 티끌세상 벗어날 길이 있으니
지금 성주(聖主)의 휘(諱)를 저촉하지 않기만 하면야
그래도 전조에 혀 끊긴 사람보다는 낫겠지.*
正中來
無中有路隔塵埃
但能不觸當今諱
也勝前朝斷舌才
겸중지여
두 칼날이 부딪치면 피하지 말라
좋은 솜씨는 마치 불 속의 연꽃같아
완연히 스스로 하늘 찌르는 뜻 있구나.
兼中至
兩刃交鋒不須避
好手猶如火裏蓮
宛然自由沖天志
겸중도여
유무에 떨어지지 않는데 뉘라서 감히 조화를 하랴
사람마다 보통의 흐름에서 벗어나고자 하나
자재하게 되돌아가 재 속에 앉았네.
兼中到
不落有無誰敢和
人人盡欲出常流
折合還歸炭裏坐
64.
스님은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향시(向時)는 어떠하며, 봉시(奉時)는 어떠하며, 공시(功時)는 어떠하며, 공공시(共功時)는 어떠하며, 공공시(功功時)는 어떠하냐."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향(向)입니까?"
스님은 말씀하셨다.
"밥 먹을 땐 어떠하냐."
"어떤 것이 봉(奉)입니까?"
"등질 땐 어떠하냐."
"어떤 것이 공(功)입니까?"
"괭이를 놓아버릴 땐 어떠하냐."
"어떤 것이 공공(共功)입니까?"
"색(色)을 얻지 못한다."
"어떤 것이 공공(功功)입니까?"
"공(共)이 아니다."
그리고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성주(聖主)는 원래 요임금[帝堯]을 본받아
사람을 예의로써 다스리며 임금 허리를 굽히네
어느 땐 시끄러운 시장 앞을 지나며
곳곳 문물[文明]이 성스러운 조정을 축복하네.
聖主由來法帝堯 於人以禮曲龍腰
有時鬧市頭邊過 到虛文明賀聖朝
깨끗이 씻고 진하게 화장함은 누구를 위함일까
두견새 소리 속엔 사람더러 돌아가라 권하네
백화(百花)는 다 떨어졌으나 우는 소린 다함 없어
다시 어지러운 산봉우리 깊은 곳에서 우네
淨洗濃粧爲阿誰 子規聲裏勸人歸
百花落盡啼無盡 更向亂峯深處啼
고목(枯木)에 꽃이 피니 겁(劫) 밖의 봄이며
옥상(玉象)을 거꾸로 타고 기린을 쫓는다네
지금 천봉(千峯) 밖에 높이 은거하니
달 밝고 바람 맑아 좋은 날이라네.
枯木花開劫外春 倒騎玉象趁麒麟
而今高隱千峯外 月皎風淸好日辰
중생과 부처가 서로 침해하지 않으니
산은 절로 높고 물은 절로 깊어라
천차만별한 현상은 분명한 일이니
자고새 우는 곳에 백화가 새로워라.
衆生諸佛不相侵 山自高兮水自深
萬別千差明底事 鷓鴣啼處百花新
머리에 뿔이 갓 나면 이미 감당하지 못하며
헤아리는 마음으로 부처 구하니 부끄럽기도 하구려
아득한 공겁(空劫)에 아는 사람 없는데
남쪽으로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에게 물으려 하겠는가.
頭角纔生已不堪 擬心求佛好羞慚
沼沼空劫無人識 肯向南詢五十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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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간록] 下 pp. 109~11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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