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시절 운세가 기울어 이제 상법(像法) ⋅ 말법(末法)에 들어섰다는 점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한다. 요즈음 스님들은 문수보살을 친견한답시고 북쪽으로 가고 남악에 유람한답시고 남쪽으로 간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행각하는 명자비구(名字比丘)들은 부질없이 신도들의 시주만 소비할 뿐이니, 정말 씁쓸한 일이다.
질문했다 하면 새까만 칠통 같으면서 오로지 늘 하던대로 세월을 보내는구나. 설사 두세 사람은 있다 해도 헛되이 해박한 지식만을 챙겨 이야기나 기억한다. 그것으로 가는 곳마다 그럴듯한 말을 찾으면서 큰스님을 인가하고 뛰어난 근기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박복한 업을 짓는다. 뒷날 염라대왕이 못질을 할 때 가서 ‘내게 말해 준 사람이 없었다’고 말하지 말라.
처음 발심한 후학이라면 반드시 정신을 차려야지 부질없이 말만 기억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많아도 헛것은 적고 참된 것만은 못하니, 앞으로 스스로를 속일 뿐 무슨 가까워질 일이 있겠느냐?“
“저는 미혹에 빠져 있습니다. 스님께서 한 번 지도해 주십시오.”
“뭐라고.”
“부처님이 말씀[敎]해 주신 가르침의 뜻이 무엇입니까?”
“아직 대답이 끝나지 않았다.”
“스님께선 무어라고 대답하시렵니까?”
“영리하다고 생각했더니…”
“무엇이 납승의 바른 안목입니까?”
“이리 가까이 오너라.”
그 스님이 가까이 가자 스님은 혀를 차면서 말씀하셨다.
“가거라.”
“스님의 한마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섣달 스무닷새다.”
“교학[敎]의 내용은 묻지 않겠습니다. 무엇이 종문(宗門)의 일입니까?”
“기왕 묻겠다고 왔으니 어서 3배하라.”
“소식이 끊긴 자리를 어떻게 체험해야 합니까?”
“30년 뒤에.”
“지금은 어찌해야 합니까?”
“법통을 어지럽히지 말라.”
“성품의 근원에도 말이 있습니까?”
“묻지 말아라.”
“부처의 병통과 조사의 병통은 무엇으로 치료합니까?”
“잘 살펴보면 낫는다.”
“무엇으로 치료하느냐고요?”
“다행히도 치유될 힘이 있다.”
“백보 밖에서 버들잎을 쏘아 맞히듯 정확한 표적을 지적해 주십시오.”
“벌써 대답해 주었다.”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경계를 어떻게 체득해 알아야 합니까?”
“대중에게 얼른 3배하라.”
“기댈 곳 없는 외톨이[竛竮之子 : 법화경에 나오는 거지 아들의 비유]는 어떻게 가야 합니까?”
“눈앞을 분별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어찌 존귀하지 않겠습니까?”
“대단하다 할 것은 없지.”
“무슨 뜻입니까?”
“무슨 뜻이냐?”
“말[言說]을 꺼냈다 하면 여지없이 갈등(葛藤 : 어지러운 이론)입니다. 그렇다면 갈등이 아닌 것은 무엇입니까?”
“그대가 질문하는 것을 분명 보고 있는 자가 있다.”
“급하게 만났으니 스님께서는 가르쳐 주십시오.”
“무엇을 말이냐?”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무얼?”
1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대중들이여, 그대들에게도 단주의 바늘[鄲州針]이 있느냐. 있거든 한번 가져와 보아라. 있느냐, 있어?”
대중이 대꾸가 없자 스님은 “없다면 옷 입고들 그만 나가거라.” 하고는 바로 법좌에서 내려왔다.
13.
상당하여 대중이 모여 앉자 주장자를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온 누리 미진수 부처가 모두 이 속에 있다. 부처다 법이다 논쟁하여 승부를 다투는데도 충고해 줄 사람이 없느냐. 충고해 줄 사람이 없다면 내가 그대들에게 충고해 줄 때까지 기다리라.”
그때 어떤 스님이 말하였다.
“스님께서 충고해 주십시오.”
“이 여우같은 놈아.”
“온 누리 사람들이 찾아오면 스님은 어떻게 맞이하시겠습니까?”
“법요를 설하는 데에는 길이 있다.”
“지금 그대로가 바로 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까?”
“개 아가리 닥쳐라.”
“하루종일 밝지 못하니 어떻게 해야만 세상 인연[緣塵]에 떨어지지 않을까요?”
“문을 걸어 닫고 아이고! 아이고! 통곡한다.”
“하루 생활에서 어떻게 체득해 알아야 할까요?”
“알아내기가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제가 들어갈 곳이 있겠습니까?”
“전에 했던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라.”
“영산의 한 법회에서 가섭이 직접 들었다 하는데, 무슨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들이대는 칼끝을 피하지 말고 얼른 말하라, 얼른 말해.”
“무슨 이야기를요?”
“번개 잡는 근기가 쓸데없이 알음알이를 내는구나.”
“모든 성인도 전하지 못하고 고금을 지나지도 않습니다. 스님께선 무어라고 한마디 하여 납자를 지도하십니까?”
“노형의 비윗장을 건드려도 되겠소?”
“무어라는 한마디로 납자를 지도하시느냐구요?”
“뭐라고?”
“저의 마음을 쉬게 할 만한 첩경되는 요점이 있습니까?”
“곤장 30대를 치리라.”
“눈앞이 평탄할 땐 어떻습니까?”
“바닷물이 그대 머리 위에 있다.”
“그러면 닿을 수 있습니까?”
“여기서 허튼 말을 하기냐.”
“시주가 공양[齋]을 베풀면 무엇으로 보답합니까?”
“재능을 헤아려 소임을 맡긴다.”
“모르겠습니다.”
“모르겠거든 밥이나 먹어라.”
“무엇이 깨닫는 일[向上事]입니까?”
“창자를 끊어내어 숟가락으로 바꿔넣고 발우를 들고 와 보라.”
그 스님이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런 사기꾼.”
“무엇이 불법의 요점입니까?”
“들어오는 칼 끝에 길이 보이는구나.”
“어디가 제가 범부 몸을 뒤바꿀 만한 경계입니까?”
“날카롭군[利].”
“한 입에 다 삼켰을 경우라면 어떻습니까?”
“내가 네 뱃속에 들었구나.”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제 뱃속에 계십니까?”
“내 말을 되돌려다오.”
14.
상당하여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시기를, “다른 사람에게 누만 끼칠 뿐이다”하고는 법좌에서 내려왔다.
1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할말은 다 했다.”
그때 한 스님이 나와서 절하고 무엇인가 물으려는 순간 스님은 주장자를 집어들고 후려치면서 말씀하셨다.
“무슨 좋고 나쁜 것을 알겠느냐. 이 썩은 나무 등걸이나 치는 놈아. 다 이런 중과 같다면 이떻게 신도들의 시주를 받을 수 있으랴. 악업 중생이 여기 다 모여 무슨 마른 똥막대기를 찾아 물어뜯고 있느냐.”
그리고는 주장자로 다 쫓아내버렸다.
“우두(牛頭)스님이 4조(四祖)스님을 뵙지 않았을 땐 어떠하였습니까?”
“집집마다 관세음보살이었다.”
“뵌 뒤에는 어떠하였습니까?”
“불 속에서 지네가 호랑이를 삼킨다.”
“무엇이 선(禪)입니까?”
“그 한 글자[一字]마저도 뽑아버릴 수 있느냐?”
“부상(扶桑)의 언덕에서 해가 뜨지 않았을 땐 어떻습니까?”
“알지[知].”
“초나라를 배반하고 오나라에 투항했을 땐 어떻습니까?”
“남쪽을 향해 북두를 살펴보라.”
“6국(六國)이 편안하지 못할 땐 어떻습니까?”
“천리는 어째서 밝으냐?”
“밝지 않은데야 어찌합니까?”
“다행히도 조금 전에 말했기에 망정이지.”
“무엇이 본원(本源)입니까?”
“누구의 공양을 받느냐?”
“무엇이 곧장 끊어버리는 한 길입니까?”
“주산(主山) 뒤에 있다.”
“스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입 닥쳐라.”
“조계 정통의 종지를 보여 주십시오.”
“30년 뒤에 보여 주겠다.”
“밀실(密室)이나 현궁(玄宮 : 임금이 政事에 관하여 조용히 생각하는 그윽한 궁전)이라면 어떻습니까?”
“거꾸러지지[倒].”
“궁중에 일은 어떻습니까?”
“막중하다[重].”
“모든 기미를 토해내지 않았을 땐 어떻습니까?”
“대중은 숨기지 않았다.”
“그래도 저에게는 의심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네 말이 눈앞의 기미를 덮어버렸다.”
“계합[相應]하려고 성급한 마음으로 둘 아닌[不二] 도리만을 말 할 경우는 어떻습니까?”
“대중 앞에서 대승법을 들먹이면서 몰라서야 되겠느냐?”
“어떻게 알아차려야 할까요?”
“어느 세월에.”
“일생을 악만 쌓은 자는 선을 모르고 일생을 선만 쌓은 자는 악을 모른다 하니 무슨 뜻입니까?”
“훤하지[燭].”
“아주 멀리서 찾아왔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칠구 육십삼이다.”
“저는 요즘 형주(衡州)를 떠나왔습니다.”
스님께서 악[喝]! 고함을 치고는 “짚새기 뒤꿈치가 닳아 떨어졌구나” 하셨다.
그 스님이 “안녕히 계십시오” 하는데 스님께서 악! 고함을 치고는 “고요한 곳이니라. 사바하(薩婆訶)” 하셨다.
“어떤 것이 제 자신입니까?”
“한 부처님에 두 보살이다.”
'선림고경총서 > 운문록 雲門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문록 상(上)] 상당 ⋅ 대기(上堂 ⋅ 對機) 20~27. (0) | 2015.05.14 |
---|---|
[운문록 상(上)] 상당 ⋅ 대기(上堂 ⋅ 對機) 16~19. (0) | 2015.05.14 |
[운문록 상(上)] 상당 ⋅ 대기(上堂 ⋅對機) 7~10. (0) | 2015.05.14 |
[운문록 상(上)] 상당 ⋅ 대기(上堂 ⋅ 對機) 4~6. (0) | 2015.05.14 |
[운문록 상(上)] 상당 ⋅ 대기(上堂 ⋅ 對機) 2~3. (0) | 2015.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