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저마다 하남(河南) 해북(海北)지방에서 와 태어난 인연[生緣]이 있으니, 그곳이 어딘지를 아느냐? 어디 한번 꺼내와 보아라. 이 늙은이가 그대들에게 증명해 주리라. 있느냐, 있어? 모른다면 이 늙은이가 그대들을 속이리라. 알고 싶으냐? 태어난 인연이 북쪽에 있다면 북쪽에 있는 조주스님과 오대산의 문수보살이 다 여기에 있으며, 태어난 인연이 남쪽에 있다면 있는 설봉(雪峯) · 와룡(臥龍) · 서원(西院) · 고산(鼓山)스님이 모두 여기에 있다. 알고 싶으냐? 그렇다면 여기에서 알도록 하라. 만일 보지 못했다면 속이지 말라. 보았느냐, 보았어? 보지 못했다면 이 늙은이가 법당을 타고 나가는 것을 보라. 몸 조심하라.”
“6국(六國)이 편안하지 못할 땐 어떻습니까?”
“구름이 비올 기색을 띠는구나.”
“위로 올려다볼 것도 없고 아래로 자기 몸도 없을 땐 어떻습니까?”
“몸을 숨길 만한 한마디를 어떻게 말하겠느냐?”
그 스님이 절을 하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번 놓아 주겠으니 질문 하나 던져 보아라.”
대꾸가 없자, “이 죽은 두꺼비야” 하셨다.
“무엇이 색즉시공(色卽是空)입니까?”
“주장자로 너의 콧구멍을 쳐야겠구나.”
“스님께서는 수시로 납자들을 위해 무어라고 하십니까?”
“아침에 쟁기 끌고 저녁에 고무래 끈다.”
“3승 5성(三乘五性)은 묻지 않겠습니다만 무엇이 납승 문하의 일입니까?”
“해가 점점 저물어간다. 얼른 3배하라.”
“만난 지가 오래되었는데 어째서 모를까요?”
“헤아리기 때문이지[測].”
“마음이 무엇입니까?”
“마음이다.”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는가?”
“결국 어떻다는 말입니까?”
스님은 쯧쯧 하며 말씀하셨다.
“고요한 곳에서 갈팡질팡하는구나.”
“3계가 오직 마음일 뿐이며, 만법이 다 식[三界唯心萬法唯識]일 경우라면 어떻습니까?”
“혀 속[舌根]에 몸을 숨겼다.”
“몸을 숨긴 뒤엔 어떻습니까?”
“소로소로.”
“무엇이 자재한 작용[受用]입니까?”
“칠구 육십삼이다.”
“무엇이 세제(世諦)가 널리 펴지는 것입니까?”
“강서 · 호남 · 신라 · 발해이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 밀실은 어떻습니까?”
“메아리가 드러나 바람을 울린다.”
“그 밀실에 있는 사람은 누굽니까?”
“거듭 설명해도 알아내기 어렵다.”
“그대로 이렇게 올 경우는 어떻습니까?”
“어떻게 해서 관조[照]가 생기느냐?”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을 경우라면 어떻습니까?”
“앞에서 무어라고 말했지?”
“문이 없는 곳[無門]으로 나아갈 땐 어떻습니까?”
“3천 8백이다.”
17.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자유롭게 말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대의 입을 막을 사람이 없겠지만 그대에게 말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면 그땐 어떻게 하겠느냐?”
18.
상당하여 대중이 모이자 한참 잠자코 있더니 주장자를 잡고 말씀하셨다.
“저것 좀 보아라. 북울단월(北欎單越) 사람이 힘들게 땔나무를 져 나르는 여러분들을 보고 뜰에서 서로 다투듯 공양하는구나. 그리고는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아는 청정한 지혜는 둘이 아니며 둘로 나눌 수도 없으니, 다르지도 않고 끊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는 「반야경」의 한 구절을 외워 주는구나.”
그러자 한 스님이 불쑥 이렇게 물었다.
“모든 것을 아는 청정한 지혜란 무엇입니까?”
“인도에서 잘린 머리와 팔을 여기에서 받아가지고 나가거라.”
“그윽한 바위에 지팡이를 걸어 둔다면 어떻겠습니까?”
“어디다가 말이냐?”
“어디가 깊은 곳 속의 얕은 곳입니까?”
“산하대지.”
“그러면 어디가 얕은 곳 속의 깊은 곳입니까?”
“대지산하.”
“깊은 곳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아침에 인도[西天]에 갔다가 저녁에 중국[唐土]에 되돌아온다.”
“가섭이 선정에 든 경계는 어떻습니까?”
“숨을 수 있겠느냐?”
“시방(十方)을 볼까요?”
“묘수에는 빠져나갈 길이 없다.”
“맑고 고요하며 오묘하고 뛰어난 진여(眞如)에 들어갈 방법이 없을 땐[無門] 어찌해야 합니까?”
“스스로의 마음[機]으로 돌이켜 관조하여라.”
“여기 당신은 어떻습니까?”
“착각하지 말아라.”
“천가지 방편으로 이끌어 근원으로 돌아가려 합니다만 근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질문이 있으면 대답이 있다. 빨리 말해 보아라.”
그 스님이 “예” 하자 스님께서는 “아득히 멀었다” 하셨다.
“무엇이 운문의 칼입니까?”
“높이 들어라[揭].”
“누가 그 칼을 씁니까?”
“소로소로.”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말할 것이 없다.”
“모르겠습니다.”
“질문 한번 장하구나.”
“안팎을 잘 설명하면 어떻습니까?”
“바람이 들어가질 못한다.”
“안팎이란 무엇입니까?”
“틀렸다[錯].”
“모든 일[機緣]이 다 끝났을 경우라면 어떻습니까?”
“무덤 위에 지초(芝草)가 난다.”
“몸을 관찰해도 자기가 없고 밖을 관찰해도 그러할 땐 어찌합니까?”
“열이 나는 것은 무엇이냐?”
“그렇다면 기와쪽 부서지듯 얼음녹듯 할 것입니다.”
스님은 갑자기 후려쳤다.
“용문폭포에 오를 뜻이 있으나 물을 헤치고 나아갈 힘이 없을 땐 어찌합니까?”
“찾아오는 일은 쉬우나 두 번씩 들어주기는 어렵다.”
“정작 이럴 땐 어떻습니까?”
“통쾌하다[快].”
19.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여러분을 살펴보았더니 2류 3류 근기도 못되면서 부질없이 누더기만 입고 있으니 그래 가지고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 알겠느냐? 내 그대들을 위해 설파해 주리니 오랜 뒤에 제방에 갔을 때 큰스님이 손가락 하나를 들고 불자를 한 번 세우면서 ‘이것이 선이며 이것이 도다’ 하면 보는 즉시 주장자를 들어 머리를 깨부수고 바로 떠나도록 하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모조리 천마(天魔)의 권속에 떨어져 우리 종지를 무너뜨리고 말 것이다.
그래도 정말 모르겠다면 우선 말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라. 나는 평소에 그대들에게 말하기를, ‘미진찰토(微塵刹土)의 3세 모든 부처님과 서천 28조사와 이 나라 여섯 분 조사가 모두 주장자 끝에서 설법하고 계시는데, 신통변화를 나타내어 그 소리가 시방에 응한다’라고 하였다. 알겠느냐? 모르겠거든 사기치지 말라.
그러나 그건 그렇다치고 자세하고 진실하게 보았느냐? 설사 이 경지에 도달했다 해도 꿈에서도 사미납승을 보지 못하고 몇 집 안되는 촌마을[三家寸]에서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격이다.”
그리고 주장자를 잡고 땅에 한 번 긋더니 “다 이 속에 있다” 하시고는 다시 한 번 긋더니 말씀하셨다.
“다 이 속에 있다가 나갔다. 몸 조심하라.”
“옛사람이 면벽(面壁)했던 뜻이 무엇입니까?”
“27[念七]*이다” 하더니, 다시 “정(定)”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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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념칠=念七] : 매월 4, 9, 13, 18, 22, 27일은 천지휴폐일(天地休廢日)로서, 되는 일이 없어서 들어앉았기로 되어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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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찾아왔을 땐 스님은 어떻게 맞이하시겠습니까?”
“실언해서 속을 들켰구나[話墮].”
“어떤 점이 실언해서 속을 들켰다는 것입니까?”
“일곱 방망이로 열 셋을 대적하는구나.”
“옛사람 말씀에 ‘깨달으면 업장이 본래 비었으나 깨닫지 못했다면 묵은 빚을 꼭 갚아야 한다’ 하였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이조(二祖)스님은 깨달았습니까? 못 깨달았습니까?”
“확연하다[確].”
“옛부터 큰스님께서는 무엇으 전수해 오셨는지요?”
“얼른 3배하라.”
“무엇이 운문의 한 길입니까?”
“친절하다[親].”
“어떻게 해야 옳겠습니까?”
“전도된 언어로 무엇을 하려느냐?”
“옛사람이 말하기를, ‘마음을 냈다 하면 틀린다’ 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틀리지 않겠습니까?”
“큰 기틀은 손바닥 보듯 역력하다.”
“뒷사람이 거듭 질문하면 어찌합니까?”
“더딘 풍속은 고치기 어렵다.”
“3신(三身) 가운데 어느 부처[身]가 설법을 합니까?”
“필요한데로[要]”
“무엇이 석가부처님의 몸입니까?”
“마른 똥막대기다.”
“종문의 강령을 말씀해 주십시오.”
“남쪽에는 설봉(雪峯)이 있고, 북쪽에는 조주(趙州)가 있다.”
“확철대오한 사람은 일체 법이 공(空)함을 봅니까?”
“소로소로.”
“종일 애썼지만 들어갈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스님께서 들어갈 길을 가리켜 주십시오.”
“맞는 근기에게 길이 있다.”
“무엇이 불조를 뛰어넘는 이야기입니까?”
“포주(蒲州)에서는 마황(麻黃)이 나고, 익주(益州)에서는 부자(附子)가 난다.”
“무엇이 교(敎)의 뜻입니까?”
“어지럽게 일어나 오면 무어라고 말하지?”
“말씀해 주십시오.”
“소에게 거문고를 뜯어 준다.”
“현묘한 기틀 한 길[玄機一路]을 어떻게 체득해 알아야 합니까?”
“30년 뒤에.”
“곽시쌍부(槨示雙趺)는 무슨 일을 나타낸 것입니까?”
“말이다[言].”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짚신을 단단히 묶어라.”
“현묘한 기미도 아니고 눈으로 직접 보는 것도 아닌 경우라면 어떠합니까?”
“한마디 전도된 말이다[倒一說].”
“겁화(劫火)가 활활 탈 땐 어찌합니까?”
“꿈속에서 다시 무얼 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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