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상당하여 말씀하시기를, “천친(天親)보살은 까닭없이 밤나무 주장자를 하나 만들어냈다” 하고는 땅을 한 번 긋고, “항하수 모래 알같이 많은 부처님이 모조리 이 속에서 어지러운 설법을 하고 있구나” 하고는 바로 법좌에서 내려왔다.
21.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나는 그대들과 펀안하게 지내면서 누군가를 만나면 누구라고 알아본다. 노파심으로 이토록 자세히 설명해 주어도 모르니, 매일 같이 배 부르게 밥먹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무얼 찾느냐. 이 망상꾸러기들아. 여기에 기대어 무엇을 하느냐?”
그리고는 주장자로 몽땅 쫓아냈다.
“여름도 끝물이라 가을로 들어서는군요. 누군가 길을 막고 물어온다면 무어라고 대꾸할까요?”
“대중은 뒤로 물러나라.”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나에게 한 철 밥값을 돌려다오.”
“저는 얼마 전에야 법회에 찾아왔습니다. 이곳 가풍은 어떻습니까?”
“한마디 질문도 받지 않았으니 어떻게 말하겠느냐?”
“시방국토 가운데 일승법(一乘法)이 있을 뿐이라 하니, 무엇이 일승법입니까?”
“왜 다른 질문은 하지 않느냐?”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은 대뜸 악! 하셨다.
“‘티끌 하나가 세상 티끌을 다 포함한다’는 옛사람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무엇이 한 티끌인지요?”
“또렷한 소리로 다시 물어 보아라.”
“저는 묻지 않겠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래도 대답하시겠습니까?”
“네 입을 벽에다 걸어두지 못하겠구나.”
“모든 것이 일상 그대로인 경계라면 어떻습니까?”
“똥 냄새가 나에게 스미긴 하나 내가 우선 묻겠다. 낮에 3천리를 가고 밤에 8백리를 가면 너의 발우 속 어디에 가서 닿겠느냐?”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질없이 헛소리나 지껄이는 놈아.”
“무엇이 부처님의 가르침[敎]을 보는 안목입니까?”
“얼른 3배하라.”
“우두(牛頭)스님은 종횡으로 자재하게 설하긴 했으나, 향상의 관문을 여는 빗장을 몰랐다는 옛사람의 말을 들었습니다. 무엇이 향상관문을 여는 빗장입니까?”
“동산의 서쪽 산마루가 푸르구나.”
“무엇이 큰길가의 흰 소[露地白牛]입니까?”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그 흰 소는 어디에 있습니까?”
스님은 쯧쯧쯧 혀를 찼다.
“나무가 시들어 잎이 질 땐 어떻습니까?”
“온통 가을바람이로다.”
“무엇이 포대 속의 진주입니까?”
“말할 수 있느냐?”
“무엇이 조종(祖宗)의 적자입니까?”
“말 속에 메아리가 있구나.”
2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반야를 배우는 보살이라면 모름지기 중생의 병통을 알아야 하며, 반야를 배우는 보살은 병통을 알아야 한다. 가려낼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나와서 대중 앞에서 가려내 보아라.”
대꾸가 없자 “가려내지 못하겠거든 내 길이나 막지 말아라” 하셨다.
23.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오늘 그대들과 함께 이런저런 말들을 나누니 똥불에 똥재가 생기듯 하고 똥묻은 돼지 부스럼투성이 개같구나. 좋은지 나쁜지를 분간 못하는 것들아! 똥구덩이 속에서 살 궁리를 하는구나.
그러므로 천지와 3승 12분교 · 삼세 모든 부처님과 천하 노스님의 가르침을 일시에 그대의 눈썹 위에 모아 놓고서 설사 여기에서 단번에 깨친다 해도 편해진 사람은 아니라고 하였던 것이다. 괜히 똥구덩이로 뛰어들었다가 우리 납승 문하를 지나게 되면 다리를 부러뜨려버리겠다.”
그때 세 스님이 동시에 나와서 절하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취조장 하나로 죄상을 싹 다스리리라.”
“어떻게 해야만 3계를 빨리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아먄 3계를 빨리 벗어날 수 있겠느냐?”
“그렇습니다[是].”
“그렇거든 이제 쉬거라.”
“종일 끝도 없을 땐 어찌합니까?”
“현묘한 기틀[機]을 보아도 메아리[響路]가 없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설명하지 못한다.”
“한 번 깨끗이 다 없어졌을 땐 어찌합니까?”
“노승인들 어찌해 보겠느냐?”
“이것은 스님의 몫[分上]입니다.”
“이 사기꾼아.”
“무엇이 도입니까?”
“그 한 글자도 확실하게 벗어나는 것이다.”
“확실하게 벗어난 뒤엔 어떻습니까?”
“천리에 다 같은 바람이다.”
“옛사람이 ‘지극한 법칙[極則]이라는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지극한 법칙입니까?”
“내 손안에 있는데야 어찌하겠느냐?”
“저는 지극한 법칙을 물었습니다.”
스님은 방망이로 딱 때리면 말씀하셨다.
“음음(吽吽}. 정작 쳐부수어야 할 때 가서 더 자세히 설파해 달라 하니 이런 놈은 가는 곳마다 법통을 어지럽힐 줄만 안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내 한마디 묻겠다. 평소에 길다란 선상에 앉아서 향상이니 향하니 불조를 뛰어넘는 일이니를 헤아리는데, 그렇다면 말해보라. 물소[水牯牛]에게도 불조를 뛰어넘는 도리가 있는지를.”
“방금 누군가가 묻지 않았습니까?”
“이런 것이 길다란 선상 위에서 배운 것이라고. 있으면 있다 하고 없으면 없다 할 것은 없다.”
“털 뒤집어쓰고 뿔 달린 축생이면 어떻습니까?”
“그대가 말만 배운 부류임을 이제 알겠다.”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이리 좀 와보아라. 내 다시 묻겠다. 그대들은 주장자를 걸머지고 나는 참선하여 도를 배우노라 하면서 불조를 뛰어넘는 도리를 찾는다. 내 우선 그대에게 묻겠다. 하루종일 행주좌와하고 오줌 · 똥 싸는 일과 거름 구덩이의 벌레, 양고기 파는 시장의 탁자에 이르기까지 불조를 뛰어넘을 만한 도리가 있더냐? 말할 수 있으면 나오너라. 없다면 내 앞에서 거리적거리지나 말아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왔다.
이제 막 찾아오는 한 스님을 보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얼음녹듯 기와장 부서지듯 하는구나.”
“제게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일곱 방망이로 열 셋을 대적하는구나.”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길다란 선상에 죽도 있고 밥도 있다.”
“‘도에는 옆길이 없어 거기 선 사람은 모두 위태롭다’ 한 옛사람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도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운력이나 해라.”
“어떤 것이 3승교(三乘敎 : 교학의 총칭) 밖의 한마디입니까?”
“그대의 한마디 질문에 노승은 3천리를 펄쩍 뛰었다.”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앉거라, 앉아. 이제 내 말이 무엇인지 말해 보아라.”
대꾸가 없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30년 뒤에 오너라. 몽둥이 30대를 때려 주겠다.”
“대중이 구름처럼 모였는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네 집에 있는 아버지를 속이는구나.”
“조계(曹溪)의 한마디는 온 나라가 듣고 압니다만 운문의 한마디는 어떠한 사람이 들을 수 있습니까?”
“그대는 듣지 못한다.”
“그렇다면 저는 가까이 할 수도 없습니까?”
“자세하게 더듬어 보아라.”
2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여래께서는 샛별이 떴을 때 도를 이루셨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샛별이 떴을 때 도를 이룬 것입니까?”
“이리 오너라, 이리 와.”
그 스님이 앞으로 가까이 가자 스님은 주장자로 후려쳐서 쫓아버렸다.
25.
상당하자 한 스님이 나와서 절하고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대답해 주십시오.”
스님이 “대중아!”하고 부르니 대중이 머리를 들자 바로 법좌에서 내려왔다.
26.
상당하여 한참 말이 없자 한 스님이 나와서 절하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답답한 사람아!”
그 스님이 “녜”하고 대답하자 “이 먹통아!” 하셨다.
27.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질문할 줄 아는 자가 있느냐? 질문 하나 해 보아라.”
한 스님이 나와서 절하며 말하였다.
“스님께선 잘 살펴보십시오.”
“낚시를 던져 고래를 낚으려다 두꺼비를 낚았구나.”
“착각하지 마십시오.”
“아침에 3천리를 달리고 저녁에 8백리를 달릴 경우라면 어떻겠느냐?”
대꾸가 없자 스님은 갑자기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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