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운문록 雲門錄

[운문록 중(中)] 실중어요(室中語要) 1~18.

쪽빛마루 2015. 5. 14. 09:32

운 문 록

 

실중어요(室中語要)

 

1.

 스님께서 대중에게 법을 보이셨다[示衆].

 “천지사방을 주장자로 한 번 그으면 산산이 부서진다. 3승 12분교와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은 놓아버려서도 안되며, 그렇다고 놓아버리지 않는다면 ‘할’ 한마디도 소화하지 못하리라.”

 

2.

 스님께서 시중하셨다.

 “인도의 28대 조사와 이 나라 6대 조사와 천하의 큰스님들이 모두 이 주장자 끝에 있다. 설사 이 점을 분명하게 알아차렸다 해도 아직은 도중에 있는 셈이니 만일 놓아버리지 않는다면 다들 여우 같은 망상꾸러기일 뿐이다.”

 

3.

 스님께서 하루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로부터 노스님들은 모두 자비로운 마음에서 수준을 낮춰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었으니, 납자들의 말을 들어보고 근기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가령 속제(俗諦)를 벗어난 말씀이라면 그렇지 않다. 만일 그러하다면 그것은 말을 소중히 여겨 말을 이해하는 것이 된다. 듣지도 못했느냐.

 앙산(仰山)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이제 어디서 왔느냐?’

 ‘여산(廬山)에서 왔습니다.’

 ‘오로봉(五老峰)에 갔느냐?’

 ‘가 보지 못했습니다.’

 ‘그대는 산에 가 보지 못했구나.’

 이 말은 모두가 자비로움 때문에 수준을 낮춰 하신 말씀이다.”

 

4.

 스님께서 어느 땐가 말씀하셨다.

 “‘마음이 부처다[即心即佛]’라는 말은 방편이니 머슴을 주인으로 착각하는 것이고, ‘생사가 열반이다[生死涅槃]’ 함은 흡사 목을 베고서 살리고자 하는 꼴이다. 부처니 조사니 한다면 부처의 뜻과 조사의 뜻은 그대 눈알을 나무 염주알로 바꾸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5.

 “소리를 듣고 도를 깨닫고, 색(色)을 보고 마음을 밝힌다”고 하신 옛분의 말씀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무엇이 소리를 듣고 깨치는 것이며, 색을 보고 마음을 밝히는 것이겠느냐?”

 이어서 말씀하셨다.

 “관세음보살이 돈을 가지고 와 호떡을 사는구나.”

 손을 아래로 내리며 말씀하셨다.

 “알고보니 만두였구나.”

 

6.

 스님께서 언제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등[燈籠]은 그대 자신이나, 발우를 들고 밥을 먹을 때 그 밥은 그대 자신이 아니다.”

 그러자 한 스님이 물었다.

 “밥이 자기인 경우는 어떻습니까?”

 “이 여우같은 촌뜨기야.”

 다시 말씀하셨다.

 “이리 오너라, 이리와, 너는 밥이 자기라고 말하지 않았더냐.”

 “그렇습니다.”

 “영원히 꿈에선들 보겠느냐. 이 촌뜨기야.”

 

7.

 스님께서 어느 땐가 말씀하셨다.

 “진공(眞空)은 유(有)를 깨뜨리지 않으며 색(色)과 다르지도 않다.”

 그러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진공입니까?”

 “종소리가 들리느냐?”

 “아, 종소리이군요.”

 “어느 세월에 꿈엔들 보겠느냐.”

 

8.

 소산(疏山)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영중(嶺中)에서 왔습니다.”

 “설봉에 찾아가 본 적이 있느냐?”

 “찾아가 보았습니다.”

 “내가 전에 갔을 땐 이 일[是事]이 부족하였는데, 요즈음은 어떠하더냐?”

 “요즈음은 충분합니다.”

 “죽이 충분하더냐, 밥이 충분하더냐?”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운문)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씀하셨다.

 “죽도 충분하고 밥도 충분하다.”

 

9.

 부상좌(孚上座)가 설봉스님을 참례하려는데, 설봉스님은 이 소문을 듣고 대중을 집합시켰다. 부상좌가 법당에 올라와 두리번거리자 설봉스님은 막바로 내려와버렸다. 지사(知事 : 여기서는 부상좌)가 다음날 다시 올라가 절하고는 말하였다.

 “제가 어제는 스님의 마음을 언짢게 해드렸습니다.”

 “그런줄 알았으면 되었네.”

 스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 때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점이 설봉스님의 마음을 언짢게 해드렸다는 말씀입니까?”

 스님은 갑자기 후려쳤다. 

 

10.

 한 스님이 자복(資福)스님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백추(白槌)*를 치고 불자(拂子)를 세웠던 뜻은 무엇입니까?”

 “옛사람이 그렇게 했더냐?”

 “백추를 치고 불자를 세웠던 뜻이 무엇이냐고요?”

 자복스님은 대뜸 악! 하더니 나가 버렸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씀하셨다.

 “옛사람의 안목이 어떠냐?”

 한 스님이 말했다.

 “스님은 어떠십니까?”

 “어느 세월에 알겠느냐?”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는 “이리 좀 오너라” 하고 그 스님을 부르셨다. 그 스님이 앞으로 가까이 가자 스님은 갑자기 불자로 입을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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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추 : 대중에게 알릴 사항이 있어 모이게 할 때 치는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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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스님께서 삼평(三平)스님의 게송*을 들려주고는 ‘이렇게 보고 듣는 것이 사실은 보고 듣는 것이 아니니…’한 구절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엇을 보고 듣는다 하느냐?”

 또 ‘그대에게 보여 줄 이런저런 성색(聲色)이란 없다네’ 한 구절에 대해서는 “말로만이라도 성색 성색 할 무엇이 있느냐?” 하시고 ‘거기에 아무 것도 없음을 확실히 안다면…’ 한 구절에 대해서는 “무슨 일이 있느냐?”하셨다.

 마지막에 ‘본체[體]다 작용[用]이다를 나누건 안 나누건 무방하리라’ 한 구절에 대해서는 “말이 바로 본체이고 본체 그대로가 말이다” 하셨다.

 그리고는 다시 주장자를 잡아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이 주장자는 본체[體]이고 등롱(燈籠)은 작용[用]이니 나뉘어지는 것이냐, 나뉘어지지 않는 것이냐? 듣지도 못했느냐, 모든 것을 아는 지혜는 청정하다 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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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평스님(漳州 三平山 義忠스님)은 다음과 같은 송(頌)을 지었다.

이렇게 보고 듣는 것이 사실은 보고 듣는 것이 아니니

그대에게 보여줄 이런저런 빛과 소리[聲色]란 없다네

거기에 아무일 없는줄 확실히 안다면

본체[體]다 작용[用]이다를 나누건 안 나누건 무방하리라

即此見聞非見聞  無餘聲色可呈君

箇中若了全無事  體用無妨分不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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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허깨비로 나타난 빈 몸 그대로가 법신이로다[幻化空身即法身]” 하신 일숙각(一宿覺 : 永嘉玄覺)의 말씀을 들려주고는 주장자를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온 누리가 다 법신이 아니다.”

 

13.

 한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저는 이제 막 총림에 들어왔습니다. 스님께서 좀 가르쳐 주십시오.”

 “죽을 먹었느냐?”

 “먹었습니다.”

 “발우를 씻도록 하라.”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씀하셨다.

 “말해보라, 가르쳐 준 것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가르쳐 준 바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에게 무슨 말을 해주었겠으며, 가르쳐 준 바가 없었다고 한다면 그 스님은 어떻게 깨닫겠느냐?”

 

14.

 한 스님이 설봉스님에게 가르쳐 주실 것을 청하자, 설봉스님이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그 스님은 말 끝에 크게 깨쳤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씀하셨다.

 “설봉스님이 그에게 무슨 말을 하였겠느냐?”

 

15.

 스님께서 어느 땐가 말씀하셨다.

 “멀쩡한 땅에서 죽은 사람이 무수하니 가시밭으로 가는 것이 상책이라 하겠다.”

 그러자 한 스님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큰방에서 제일좌(第一座)가 나은 자리[長處]에 있겠군요?”

 “소로소로.”

 

16.

 부정설법(不淨說法)*을 들려주다가 홀연히 종소리를 듣더니 말씀하셨다.

 “석가부처님이 설법하는구나.”

 그리고는 갑자기 주장자를 잡아 세우더니 한 스님에게 물었다.

 “이것이 무엇이냐?”

 그 스님이 “주장자입니다” 하자 “어느 세월에 꿈엔들 보겠느냐?”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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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양 혜충(南陽慧忠)국사께 한스님이 물었다. (…上略…) “무정(無情)도 심성이 있다면 설법을 알아듣겠습니까?” “그들은 부산하게 항상 설법하면서 잠시도 쉬지 않는다.” “그런데 저는 어째서 듣지 못합니까?” “그대 스스로가 듣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듣습니까?” “부처님이 들으신다.” “중생은 들을 자격이 없겠습니다.” “나는 중생을 위해 하는 말이지 성인을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저는 귀가 먹어서 듣지 못하니 스님은 들으시겠습니다.” “나도 듣지 못한다.” “듣지 못하신다면 어찌 무정이 설법하는 줄을 아십니까?” “내가 듣는다면 부처와 같아질 것이니 그대는 내 설법을 듣지 못한다.” “결국 중생들은 듣겠습니까?” “중생이 듣는다면 중생이 아니지.” (…下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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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스님께서 하루는 말씀하셨다.

 “촌구석 마을에서 점을 치는데 이리저리 점을 침에 점괘가 이랬다저랬다하는구나.”

 그러자 한 스님이 불쑥 물었다.

 “그러다가 괘가 맞는 경우라면 어떻습니까?”

 “바라옵건대…[伏惟].”

 

18.

 스님께서 어느 땐가 말씀하셨다.

 “위대한 작용이 나타남에는 정해진 법칙이 없다.”

 그러자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위대한 작용이 나타나는 것입니까?”

 스님은 이에 주장자를 들고 고함을 질렀다.

 “석가부처님이 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