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운문록 雲門錄

[운문록 중(中)] 실중어요(室中語要) 39~64.

쪽빛마루 2015. 5. 14. 09:37

39.

 “온갖 소리는 부처님 소리이고 모든 색은 부처의 색이다” 한 구절을 들려주고서 불자를 세우더니 말씀하셨다.

 “이것이 무엇이냐? 불자라고 말한다면 촌구석 노파의 선(禪)도 모르는 것이다.”

 

40.

 남방의 선객이 국사[慧忠]에게 묻기를, “여기 불법은 어떻습니까?” 하니 “몸과 마음이 일여(一如)하여 몸 밖에 다른 것은 없다네” 하였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씀하셨다.

 “산하대지가 어디에 있느냐?”

 

41.

 스님께서 언젠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조사를 알고 싶으냐?”

 주장자로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조사가 그대 머리 위에서 뛰고 있다. 조사의 눈동자를 알고 싶으냐? 그대 발꿈치 밑에 있다.”

 다시 말씀하셨다.

 “이렇게 차와 밥으로 젯상을 차려도 역시 귀신은 만족을 모르는구나.”

 

42.

 스님께서 어느 땐가 말씀하셨다.

 “보리 · 열반 · 진여 · 해탈을 설명하라면 이는 풍향(楓香)을 태우면서 공양하는 것일 뿐이라 하겠다. 만일 불조를 설명하라면 황숙향(黃熟香)을 태워 공양하는 것일 뿐이라 하겠다. 또한 불조를 뛰어넘는 도리를 설명하라면 병향(甁香)을 태워 공양하는 것일 뿐이다. 그대는 그저 불법승에 귀의하면 될 뿐이다.”

 

43.

 스님께서 하루는 주장자를 세우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교학[敎]에서라면 범부는 이 주장자를 실제로 있다고 보고 2승(二乘)은 없다고 부정한다. 또 연각(緣覺)은 헛것[幻有]일 따름이라 하고 보살은 그 자체란 원래 공(空)한 것이라 할 것이다. 납승은 주장자를 보면 주장자라 할 뿐이다. 가면 갈 뿐이고 앉으면 앉을 뿐이라 도대체 옴짝달싹 못한다.”

 

44.

 “모든 사물에서 나를 알아내고 시끄러운 시장에서 천자(天子)를 알아보라” 하신 협산(夾山)스님의 말씀을 들려주고는 다시 한마디 하셨다.

 “한 티끌 일자마다 온 누리를 다 받아들인다.”

 

45.

 “3세 모든 부처님이 불꽃 위에서 큰 법륜을 굴린다” 하신 설봉(雪峯)스님의 말씀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불꽃이 3세 모든 부처님에게 법을 설하니 3세 모든 부처님이 제자리에서 법을 듣는다.”

 

46.

 스님께서 차를 마시고 나서 찻잔을 들고 말씀하셨다.

 “3세 모든 부처님이 법을 다 들으시고는 모두 찻잔 밑을 뚫고 내려간다. 보이느냐, 보여? 모르겠거든 그럭저럭 오랜 시일을 지내면서 알아내도록 하라.”

 

47.

 “빛이 경계를 비추지 않고 경계도 존재하지 않아서 빛과 경계 양쪽 다 잊으니 그 무슨 물건인가” 하신 반산스님의 말씀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온 누리가 다 큰 빛인데 무엇을 자기라고 하겠느냐? 그대가 빛을 알아버렸다면 경계도 성립하지 못하는데 무슨 똥같은 빛이니 경계가 있으랴. 빛과 경계가 이미 성립될 수 없다면 그것은 무슨 물건인가.”

 다시 말씀하셨다.

 “이는 옛사람이 자비심으로 중언부언하신 말씀이니 여기에서 매우 분명히 알아야 하리라. 놓아버려서는 안되거니와 놓아버리지 않는다면…” 하더니 다시 손을 들면서 말씀하셨다.

 “소로소로.”

 

48.

 “선하(禪河)는 물결 따라 고요하고 정수(定水)는 파도를 쫓아 맑다” 한 부대사(傅大士)의 게송을 들려주고는 주장자로 등불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보느냐? 본다고 한다면 범부를 타파하는 것이며,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두 눈이 멀쩡한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주장자를 잡고 말씀하셨다.

 “온 누리가 물결이 아니다.”

 

49.

 스님께서 언젠가는 주장자로 선상을 한 번 치더니 말씀하셨다.

 “온갖 소리는 부처님의 소리이며 모든 색은 부처님의 색이다. 그대들은 발우를 들고 밥을 먹을 땐 이것이 발우라는 생각을 하고, 걸어갈 땐 간다는 생각을 하며, 앉을 땐 앉는다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부류들은 그런 식으로 계속해 간다면 방망이를 집어들고 몽땅 쫓아 흩어버려야겠다.”

 

50.

 스님께서 어느 땐가 불자를 세우더니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들어갈 곳을 얻으니 괴이하게 되었구나. 일본에서 선(禪)을 설명하니 33천에서 어떤 사람이 나와서 ‘음음(吽吽)’하고 창고지기[特庫兒]는 형틀을 걸머지고 죄상을 고백한다.”

 

51.

 “한 곳에 통하지 못하면 두 곳에서 힘[功]을 잃고, 두 곳에서 통하지 못하면 부딪치는 길마다 막히리라” 한 옛사람의 말씀을 들려주고는 주장자를 잡아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산하대지와 모든 부처님이 다 이 주장자 끝에 있는데 무슨 막힘이나 걸림이 있으랴. 지금 이렇게 밝은데 어둠은 어디로 갔겠느냐? 이 밝음 그대로가 어둠인데 일체 중생은 색공 · 명암(色空明暗)에 막히어 거기서 생멸하는 법이 있다고 보게 된다.”

 

52.

 “여섯 가지 신통묘용은 공하면서 공하지 않고 한 덩이 두렷한 빛은 색이면서 색이 아니네” 하신 일숙각의 게송을 들려주고는 불자를 잡아 세우더니 말씀하셨다.

 “이것이 색이면서 색이 아닌 두렷한 빛인데 무엇을 색이라 부르느냐? 내게 한번 가져와 보아라.”

 

53.

 “모든 사물 속에서 나를 알아보고 시끄러운 시장 안에서 천자를 알아보아라.” 하신 협산스님의 말씀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두꺼비가 그대 귀 속으로 들어가고 독사가 그대 눈알을 뺀다. 우선 말 속에서 알아내도록 하라.”

 

54.

 "시방부처의 한 길 열반문"이라는 구절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그대가 모른다면 대식국(大食國) 사람이 너의 속눈썹 안에서 향약(香藥)을 팔고 있으리라."

 

55.

 “둘도 없고 둘로 나뉨도 없으니 차별도 없고 끊김도 없기 때문이다” 한 「반야경」의 한 구절을 들려주고는 이어서 법당 앞 돌기둥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반야경」과의 거리가 얼마나 되겠느냐?”

 

56.

 “경전이나 주문, 온갖 언어문자는 하나도 실다운 모습과 어긋나지 않는다” 한 경(經)의 한 구절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이것이 무엇이냐? 주장자라고 한다면 지옥으로 들어갈 것이며, 주장자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느냐?”

 

57.

 스님께서 하루는 불자를 잡고 한 번 흔들더니 말씀하셨다.

 “해와 달, 뭇 별들이 땅 위에 쫙 깔렸다. 보이느냐?”

 한참 잠자코 몸을 일으키면서 말씀하셨다.

 “얼마 있다가 그대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이다.”

 

58.

 “시방부처의 한 길 열반문”이라는 구절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이것은 집이고, 위는 하늘이며 손 안에는 주장자가 있다. 어떤 것이 열반문이냐?”

 

59.

 스님께서 어느 땐가 말씀하셨다.

 “손가락을 튕기고 기침을 하며 눈썹을 드날리고 눈을 깜짝이며 백추를 잡고 불자를 세우거나, 혹은 원상(圓相) 그리는 것은 다 올가미를 씌우는 일이다. 불법(佛法)이라는 두 글자에는 근처에도 못 가는 말이며, 말했다 하면 그것은 똥오줌을 뿌리는 격이다.”

 

60.

 와관(瓦官)스님이 덕산스님을 참례하고서는 시자가 되었다. 하루는 함께 산에 들어가 나무를 찍는데 덕산스님이 물 한 발우를 떠다 주어 와관스님이 마시자 덕산스님이 말씀하셨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덕산스님이 다시 물 한 발우를 주자 와관스님이 받아 마시니 덕산스님이 말씀하셨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저 모른다 한 것을 어째서 탈바꿈하지 않느냐?”

 모르겠습니다. 다시 무엇을 바꾸겠습니까?”

 “그대는 어쩌면 그렇게도 쇠말뚝같으냐.”

 와관스님이 절에 머문 뒤 설봉스님이 찾아가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다가 설봉스님이 말씀하셨다.

 “당시 덕산스님 회상에 있으면서 나무를 찍던 일은 어떠하였소?”

 “선사(先師)께선 당시에 나를 인정하였다오.”

 “스님은 선사를 너무 빨리 떠나왔소.”

 그 때 앞에 물 한 발우가 있었는데 설봉스님이 물을 가져오라고 하여 와관스님이 바로 설봉스님에게 건네 주었더니, 설봉스님은 받자마자 물을 확 뿌렸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대신 말씀하셨다.

 “양민을 짓눌러 천민을 만들지 마십시오.”

 

61.

 재(齋)를 지내고서 호떡을 한 입 깨물더니 말씀하셨다.

 “제석의 콧구멍을 물어뜯었더니 제석이 아야, 아야! 하는구나.”

 다시 주장자로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의 발꿈치 아래서 석가부처님으로 변하였다. 보이느냐, 보여? 염라대왕이 내 말을 듣고 하하 하고 크게 웃으면서 말하기를, ‘스님이 맞는다면 내 그를 어찌하지 못하겠지만 맞지 않는다면 다 내 손아귀에 있다’고 하는구나.”

 

62.

 스님께서 언젠가는 주장자로 선상을 한 번 치더니 말씀하셨다.

 “그대가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소리를 듣고 여기에서 대뜸 깨달을 것이니, 그리고 나서는 산하대지와 일월성신 모두가 무슨 허물이 있겠느냐?”

 

63.

 “티끌 하나 일자마자 온 누리를 다 받아들인다” 하신 낙포(洛浦)스님의 게송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조과(鳥窠)*스님이 실 한 오라기를 뽑아드니 누군가가 그 자리에서 깨닫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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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과 도림(鳥窠道林)스님에게 회통(會通)시자라는 이가 있었는데, 하루는 떠난다고 하직을 하니 도림스님이 말하였다. “어디로 가려는가?” “저는 법을 알기 위해 출가하였는데 스님께서 가르쳐주시지 않으므로 이제 여기저기 다니면서 불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불법쯤이라면 내게도 약간은 있다.” “무엇이 스님의 불법입니까?” “도림스님은 몸에서 실올[布毛]을 하나 뽑아서 불어 날리니 회통시자는 여기서 묘한 이치를 깨달았다. 그리하여 포모시자(布毛侍者)라는 별명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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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3신 4지(三身四智)는 체중원(體中圓)이고, 8해 6통(八解六通)은 심지인(心地印)이다” 하신 일숙각의 말씀을 차를 마시는 때에 들려주고는 “차를 마실 땐 심지인이 아니다” 하셨다.

 곧 이어 주장자를 잡고 말씀하셨다.

 “우선 이것부터 알아내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