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운문록 雲門錄

[운문록 중(中)] 실중어요(室中語要) 19~38.

쪽빛마루 2015. 5. 14. 09:35

19.

 스님께서 어느 땐가 주장자로 화로를 한 번 치니 대중들이 눈을 멀뚱멀뚱하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화로가 팔짝 뛰어 33천(三十三天)으로 올라간다. 보이느냐, 보여?”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지혜 없는 사람 앞에선 말을 하지 말아야지. 너희들 대가리를 산산히 부숴버리겠다.”

 

20.

 스님께서 어느 땐가 말씀하셨다.

 “저것 좀 보아라. 법신이 등불로 변하니 불조를 초월하는 이야기가 그대들 발밑을 지난다.”

 어떤 스님이 말하였다.

 “발밑에서 알아차렸을 땐 어떻습니까?”

 “나를 바보로 만드는군.”

 “그렇다면 여기와는 까마득하겠군요.”

 “10만 8천리이다.”

 

21.

 “주객[光境]을 양쪽 다 잊었으니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인가?” 하신 반산(槃山)스님의 말씀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설사 이렇게 말한다 해도 반밖에 못간 것이며 아직은 한 길[一路]을 투철히 벗어나진 못했다.”

 한 스님이 물었다.

 “한 길을 투철히 벗어난 것이란 무엇입니까?”

 “천태(天台)의 화정(華頂)이며 조주(趙州)의 석교(石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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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스님이 조주(趙州)스님에게 물었다. “오래 전부터 ‘조주의 돌다리’에 관한 소문을 들었는데 와서 보니 외나무다리[掠彴]만 보이는군요.” “그대는 외나무다리만 보았지 조주의 돌다리는 보지 못하는구나.” “무엇이 조주의 돌다리입니까?” “지금 지나온 것이다.”

 어떤 스님이 위의 질문을 똑같이 하기에 이번에도 그렇게 대답하자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무엇이 조주의 돌다리입니까?” “말도 건너고 나귀도 건너느니라.” “무엇이 외나무다리입니까?” “사람마다 따로따로 건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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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앙산(仰山)스님이 “여래선(如來禪)은 사형(師兄 : 香嚴)이 알았다고 인정하겠습니다만…”*이라고 한 말을 꺼내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여래선입니까?”

 스님께서 “상대인(上大人)*…” 하고는 다시 부채를 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것을 부채라고 부르는데, 그대는 무엇이라고 하겠느냐?”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채 위에서 설법을 하고 등롱 속에 몸을 숨긴다. 어떠한가?”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무엇이 스님의 선입니까?”

 스님은 꾸짖었다.

 “원래 여기에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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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산 혜적(仰山慧寂)스님이 사제(師弟) 향엄(香嚴)스님에게 묻기를, “아우님은 요즘 보는 경지가 어떻소” 하니 “갑작스레 대답하려니 말이 안나오는군요” 하고는 게송을 하나 지어 바쳤다.

 

작년의 가난은 가난이 아니었고

금년의 가난이야말로 진짜 가난일세

작년엔 송곳 하나 꽂을 틈 없더니

금년엔 송곳마저도 없어졌다오

 

 앙산스님은 다 듣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여래선(如來禪)만 했을 뿐, 조사선(祖師禪)은 하지 못했다.”

* 상대인(上大人) : 앞장 [상당 · 대기] 31. 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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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설봉스님이 어떤 스님을 가까이 오라고 불러 놓고는 그 스님이 차수(叉手)하고 앞으로 가자 “가거라!” 하였는데,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 차수구(叉手句)를 어떻게 말해내겠느냐? 그대가 차수구를 말할 수 있다면 즉시 설봉스님을 보게 되리라.”

 

24.

 “한 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이 허물이 없다” 하신 3조(三祖)스님의 말씀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깨달을 뿐이다.”

 그리고는 주장자를 잡아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세상천지에 무슨 허물이 있겠느냐?”

 

25.

 “모든 법상[數句]과 법상 아닌 것들이여, 나의 신령한 깨달음과 무슨 관계 있으랴” 하신 일숙각의 말씀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행주좌와가 신령한 각성(覺性)이 아닌데 무엇을 법상[數句]이라고 하느냐?”

 

26.

 “주객 양쪽을 다 잊었으니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겠느냐?” 하신 반산스님의 말씀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동해 바다에 몸을 숨기고 수미산 꼭대기에서 말을 달린다.”

 그리고는 주장자로 선상을 한 번 치자 대중들이 눈을 멀뚱거리니 이에 주장자를 집어들고 대중을 쫓아버리며 말씀하셨다.

 “영리한 놈인줄 알았더니 먹통이로군.”

 

27.

 어떤 스님이 건봉(乾峯)스님에게 물었다.

 “시방부처의 한 길 열반문이라 하는데 그 길이 어딘지를 모르겠습니다.”

 건봉스님은 주장자로 그으면서 “여기다” 하였다.

 스님께서는 이를 들려주고 부채를 잡아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부채가 팔짝 뛰어 33천으로 올라가 제석(帝釋)의 콧구멍을 막고 동해의 잉어가 한 방을 치니 대야물을 엎은듯이 비가 쏟아지는구나. 알겠느냐?”

 

28.

 스님께서 언젠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방에선 백추(白槌)를 잡고 불자를 세우면서 ‘알겠느냐?’ 라고들 하면 그저 하면 그저 ‘양반을 상놈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한다. 그러면 다시 ‘그렇지, 그래, 그래’ 하고는 납자들이 무어라고 하려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후려치곤 한다.”

 

29.

 “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없어진다”고 한 경전[敎]의 말씀을 들려주고는 주장자를 잡아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이 무게가 얼마나 되겠느냐?”

 한 스님이 “반근쯤 되겠습니다.” 하니 “어느 세월에 꿈엔들 보겠느냐” 하셨다.

 

30.

 “모든 사물 끝마다에서 나를 알아보아라” 하신 협산(夾山)스님의 말씀을 들려주며 합장하고 말씀하셨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다시 주장자로 법당 앞의 큰 기둥[露柱]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저것 좀 보아라. 협산스님이 노주가 되었구나.”

 

31.

 앙산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요즈음 어디서 왔느냐?”

 “남쪽에서 왔습니다.”

 앙산스님은 주장자를 잡아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그 곳에서도 이것을 말하더냐?”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말하지 않으면 저것은 말하더냐?”

 “말하지 않습니다.”

 앙산스님이 “스님[大德]!” 하고 부르더니 “법당에 참배나 하시오” 하였다. 그 스님이 떠나려 하자 앙산스님이 다시 그를 불렀다. 그 스님이 “녜” 하자 “이리 가까이 오너라” 하여 그 스님이 가까이 가자 별안간 후려쳤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씀하셨다.

 “앙산스님이 마지막 한마디를 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 분임을 알 수 있으랴.”

 

32.

 설봉스님이 어떤 스님을 앞으로 가까이 오라고 불러 그 스님이 가까이 가자 말씀하셨다.

 “어디 가느냐?”

 “운력하러 갑니다.”

 “가 보아라.”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씀하셨다.

 “이는 말을 듣고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다.”

 

33.

 “회호(回互)와 회호하지 않음…”이라고 한 참동계(參同契)*의 한 구절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무엇이 회호하지 않는 것이냐?”

 그리고는 손으로 판대기를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판대기이다. 그러면 무엇이 회호하는 것이냐?”

 이어서 말씀하셨다.

 “무엇을 판대기라고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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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악 석두 희천(石頭希遷)스님은 참동계(參同契 : 같이 공부에 동참하자는 취지)를 지었다. 여기서는 본문에 관계된 부분만 소개한다.

 

신령한 마음 근원은 밝게 사무치나

곁가지가 은연중에 가닥쳐 흐르니

현상을 붙들면 아예 미혹한 것이요

이치에 계합해도 깨침은 아니다

구비구비 온갖 경계

회호하고 회호하지 않는 것들이

빙 둘러 돌았다가는 다시 만나고

그렇지 않으면 제자리에 머문다

靈源明皎潔  枝派暗流注

執事元是迷  契理亦非悟

門門一切境  廻互不廻互

廻而更相涉  不爾依位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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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견문각지(見聞覺知)에 막힐 것 없으니 성향미촉(聲香味觸)이 항상 삼매라네“라는 한 구절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어느 곳도 삼매가 아니니, 작용[行]할 때도 삼매가 아니다. 어디에선가는 말하기를, ‘성향미촉의 본체도 한 쪽에 있고 성향미촉도 한 쪽에 있다’고 하나 그것은 고식적이고 치우친 견해이다.”

 

35.

 협산스님이 앉아 있는데 동산(洞山)스님이 찾아와서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협산스님은 “이러할 뿐이지” 하셨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동산스님의 입장에서는 “놓아주지 않으면 또 어떡하려구요”라고 대신 말하더니 협산스님의 입장에서는 별안간 “할”로 대신 말씀하셨다.

 스님께서는 다시 협산스님 이야기를 끄집어내어[拈] 말씀하셨다.

 “이러할 뿐이라니 원래 두꺼비 소굴 속에 있었군.”

 다시 말씀하셨다.

 “이러할 뿐이라 하였으나 그래도 제대로 되었다 하기는 어렵지.”

 

36.

 “법이란 법의 본래 법은…[法法本來法]” 하신 조사의 게송*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행주좌와도 ‘본래 법’이 아니며, 그 어느 곳도 ‘본래 법’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산하대지와 그대가 아침 저녁으로 옷 입고 밥 먹는데 무슨 허물이 있겠느냐?”

 다시 “법은 본래 법 없는 법이다[法本法無法]”하신 것을 들려주고는 주장자를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본래 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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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섭(迦葉)존자는 다음과 같이 송했다.

 

법이라 법이라 할 때, 그 본래 법은

법이라 할 것도 없고 법 아니라 할 것도 없으니

동일한 법 중에서

어찌 법인 것과 법 아닌 것이 있으랴

法法本來法  無法無非法

何於一法中  有法有不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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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빈 손엔 호미를 잡고 길을 갈 땐 물소를 탄다”고 하신 부대사(傅大士)의 게송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그대는 북쪽에서 한 마리 물빛소[水牯牛]*를 타고 여기 왔구나.”

 이어서 주장자를 세우더니 말씀하셨다.

 “안 보이느냐? 천 마리 만 마리가 이리로 몰려오는구나. 한 마리만 알아보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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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빛소 : 위산(潙山)스님의 물빛소 화두에서는 이것을 본래면목으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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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나의 몸이 비었듯이 모든 법도 비었으니 천품만류(千品萬類)가 모두 동일하도다” 하신 보공(寶公 : 梁나라 寶誌스님)스님의 게송을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그대는 서 있어도 선 줄을 보지 못하고 가면서도 가는 줄을 보지 못한다. 4대 5온이라 할 것이 없는데 어느 곳에서 산하대지를 보겠느냐. 그대가 매일 발우를 들고 밥을 먹는데 무엇을 밥이라 하겠으며 게다가 어느 곳에 한 톨의 쌀이 있다 하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