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상당하여 대중이 모이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아름다운 물고기 깊은 곳에 있는데 그윽한 새는 오래도록 서 있구나."
그리고는 선상을 치고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오늘 사월
초파일은 우리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날로서 나라 안의 모든 절에서는
부처님을 관욕(灌浴)시킨다.
기억해 보니
준포납(遵布衲)이
약산(藥山
:
745∼828) 스님
회상에 있으면서
전주(殿主
:
불전의 청소나
향 등을 관리하는 소임,
지전)를 맡고 있을
당시 부처님을 관욕시키는 차에 약산 스님이 물었다.
'그대는<이것>만 목욕시킬
뿐이구나.
<저것>도 목욕시킬 수
있느냐?'
준포납이
'저것을 가져와
보십시오'라고 대꾸하자
약산스님은 그만
두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옛사람은 때에
따라 말을 함에 일언반구도 교묘함이 없었는데 요즈음 사람들은
마음과 힘을 다 써서 계산한다 해도 끝내 그들의 경계에 도달하진
못한다.
대중 가운데서는
생각으로 따라서 이렇게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라 함은
청동불상이며, <저것>이라 함은
법신이다.
불상은 형제가
있어 씻을 수 있으나 법신은 형상이 없는데 어떻게 씻을 수
있으랴.
약산스님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서 도리어 준스님에게 당하고
곧장 입이 납짝하게 되는 낭패를 면치 못하였다.'
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옛날 성인이
질문했던 것은 납자를 시험하려 하였을 뿐이다. 그러니 그에게
저것을 물었는데 저것을 가져와 보라고 하면 그것은 색과 소리에
끄달리는 것으로서 그의 말이나 씹으면서 그의 올가미에 올라앉은
셈이다.
약산스님은 그가
이해하지 못했음을 아셨기 때문에
그만둔 것이다.'
또 말할
것이다.
'약산스님이
그렇게 했던 것은 일없는 데서 일을 일으킨 것이니 긁어 부스럼을
만든 셈이다.
한편 준스님은
병통인 줄 모르고서 도리어 부스럼
위에다가 쑥불을 놓았다 하리라.'
어떤 사람은
말할 것이다.
'옛사람은 완전히
깨쳐서 만나는 곳마다 놀고 가니 가타부타할 것도
없었고,
높다 낮다 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너와
내가 있다고 알게
되고부터 후인들은 억지로 분별을 내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런 식의
이해는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여 한 번 근원을 잃고 미혹하여
회복하질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실한
마음만 믿고 헤아리고
비교함으로써 종승에 부딪쳐 보았으나 조작과 사유가 마음이 있음을 따라
일어난 것임을 잘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사유로써 부처님의
경계를 분별함은 마치 반딧불로 수미산을 태우려는 격이어서
미진겁을 지난다 해도 끝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행각하는
고상한 납자라면 스스로 간절히 살펴보아야만 한다.
이제껏 이야기한
일을 어떻게 해야 하며,
필경 무엇을
가지고 저 생사를
대적할 것인가.
조금이라도
들뜨고 거친 알으말이[識見]로 스스로
장애지음을 용납치 말라.
불법은 이러한
도리가 아니다.
나는 오늘
구업(口業)을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분에게 설파해 준다.
위의 두 분
스님께서는 한 번 나오고 한 번 들어가면서 이기고 짐을 보이질
않으셨다.
30년 뒤에 이
소식을 잘못 말하지 말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7.
성절(聖節)에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오늘은 황제께서
태어나신 날로서 온누리 모든 백성이 성수(聖壽)가 연장되기를
축원하는 일은 빠뜨릴 수 없다만,
여러
납자들이여!
왕자를
아느냐?
누가 알았다면
티끌같은 시방세계가 모두 그대의 것이어서 다름이 아니고
열반성 안에 앉아 단정히 팔짱낀 채 함이 없이[無爲]
3계를 자기
집처럼 거느리고 4생(四生)의 부모가
되려니와,
알지
못했다면 법당
안에서 향을 사르고 3문(三門)앞에서 합장해야
하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8.
상당하자 한
스님이 편지를 전해오니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擧].
행사(行思)스님이
석두(石頭)스님더러 편지를
가지고 달려가 남악
회양(南嶽懷讓)스님에게 올리라
하고는,
"즉시 돌아오면
그대에게 무딘
도끼를 주어 산에 주지살이하게 하리라"라고
말하였다.
석두스님이
회양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편지를 전달하지도 않고 불쑥
물었다.
"모든 성인도
구하지 않고 자기의 신령함도 대단히 여기지 않을 경우라면
어떻습니까?"
"그대의 질문은
지나치게 고상하다.
왜
향하(向下 : 俗諦를 써서 중생을 제접하는
쪽의 일)에서 묻질
않는가?"
"영겁토록
생사윤회를 받을지언정 모든 성인으로부터 해탈을 구하진
않겠습니다."
회양스님은
대꾸하지 않았다.
석두스님이 곧
돌아오니 행사 스님이
물었다.
"그대가 떠난 지
오래지 않은데 편지는 전달하였느냐?"
"말도 통하지
못했고 편지도 전달하지 못하였습니다."
행사스님이
이유를 묻자 석두스님은 앞서의 대화를 말씀드리고 다시
말하였다.
"지난날 스님께서
무딘 도끼를 줄테니 산에 주지하라 하신 허락을 하셨으니
바로 지금 청하옵니다."
행사스님이 한
발을 늘어뜨리자 석두스님은 바로 절하고 남악으로 들어가 산에
주지하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석두스님이
편지를 가지고 달려갔던 일은 예나 지금이나 함께 들었으나 뒷
사람들은 그 근본 뜻[宗由]을 잘 알지
못하여 법을 편 사람이
드물었다.
그리하여 물과
우유를 분별하지 못하고 옥과 돌을 분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내가 오늘 반으로 갈라 보여 대중들에게
보시하리라.
석두스님은
이처럼 잘 달려가 전달하여 종풍을 욕되게 하진 않았으나 너무
허둥대다가 낭패보는 줄을 몰랐는데야 어찌하랴.
이미 손해를
보았다면 돌아와서는 무엇 때문에 도리어 무딘 도끼를 얻어 산에
주지하겠느냐.
여기에서 깨칠
수 있다면 산에 주지할 뿐만 아니라
시방세계 티끌티끌마다 호랑이 굴이나 마군의 궁전까지도 모두가
안주할 곳이다.
그러나 만일
깨치지 못한다면 감히 장담하노니
여러분은 안심입명할 곳이 없으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9.
운문(雲門)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평탄한 길에서
죽은 사람이 셀 수도 없으니 가시덤불로 가는 것이
상책이리라."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불자를 잡아 일으키더니 말씀하셨다.
"대중아!
이를 불자라고
부른다면 바로 평지에서 죽은 사람이며 불자라
부르지 않는다 해도 가시덤불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선상을 치고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0.
상당하여
악!하고
할(喝)을 한 번
하고는 말씀하셨다.
"온 누리가 내
할 한 번에 기왓장 깨지듯 얼음녹듯 하였다.
이제 그대들은
어디서 옷 입고 밥을 먹겠느냐.
옷 입고 밥
먹을 곳을 아직 찾지
못했거든 옷 입고 밥 먹을 곳을 찾아야만 하며,
옷 입고 밥 먹을
곳을 알았다면 본래면목[鼻孔]을 알아야
하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1.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큰 파도는
아득히 출렁이고 흰 물결은 하늘까지 넘실거린다.
생사의 흐름을
끊고 저 언덕에 도달한 사람은 단연코 알음알이를 떨어버리겠지만
짧은 노의 외로운 뱃사람은 밀고 당기느라 상을 찌푸리며
애쓴다.
말해
보라.
바람 자고 물결
고유한 한마디를 어떻게 말하겠느냐.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없다면 내
그대들에게 보시하리라."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어부는 어부대로
한가히 선창하고 나무꾼도 저 혼자서 소리 높여
노래하네[漁人閑自唱
樵者獨高歌]."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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