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종사로 옮겨 살면서 남긴 어록
[遷住歸宗語錄]
1.
스님께서 처음 절에 들어가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귀종상사(歸宗上寺)는 큰 선강[禪河]이다. 이미 선강이라면 어찌 낚시꾼이 없으랴. 누가 질문할 사람이 없느냐?"
한참 있어도 묻는 사람이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뿔난 짐승 많아도 해태(獬豸 : 성품이 충직한 외뿔 달린 전설상의 동물)는 없고, 털난 짐승 많다 해도 원앙은 적어라. 미묘하구나, 큰 저 법신이여. 일부러 들어도 듣지 않고 보아도 보지 않도다. 청정하도다. 배울 수 없는 지혜여! 어찌 생각해서 얻으며 어찌 배워서 되겠느냐.
그러나 설법이 없다면 누구라서 근본종지를 가려내며, 문답이 없다면 어떻게 삿됨과 올바름을 밝히랴.
지금 이 장로(長老)가 상당하여 법문으로 이끌어 주는데도 대중 가운데선 질문하는 사람이 없구나. 질문하는 사람이 없으니 답변하는 사람도 없구나.
근본종지와 삿되고 바름을 밝히고 분별하려느냐. 삿됨과 바름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서 선상을 밀쳐 거꾸러뜨리고 소리를 쳐 대중을 해산한다 해도 그 납승에게 숨을 돌리게 해 주겠지만, 분별해내지 못한다면 내년에 새 가지가 돋아나 쉴새없이 봄바람에 흔들리리니 기다려 볼 일이다."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손바닥의 마니(摩尼)구슬은 갖가지 색깔 따라 빛이 나뉘고, 하늘에 걸린 보배달은 천강에 달그림자를 드리운다.
여러 납자들이여! 한 번 묻고 한 번 답하며, 방망이 한 대, 할 한 번 하는 것이 다 빛 그림자[光影]이며, 밝고 어두우며 잡고 놓아줌이 다 빛 그림자이며, 산하대지도 빛 그림자이며, 일월성신도 빛 그림자이며, 3세 모든 부처님과 일대장교, 나아가서는 모든 큰 조사와 천하의 훌륭하신 화상과 문 두드리는 기왓쪽 따위 천차만별까지도 모두 다 빛 그림자이다.
말해 보라. 무엇이 마니 구슬이며 무엇이 보배달인지를. 마니구슬과 보배달을 모르고서 말[言句]을 기억하여 빛 그림자를 그것이라고 잘못 안다면 마치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헤아리고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려는 격이니 그 수를 다 헤아리고 밝은 거울을 만들려 하나 만부당한 일이다.
듣지도 못하였느냐? '문자의 의미를 널리 찾음은 거울 속의 물건을 구하는 것과 같고, 그렇다고 생각[念]을 쉬고 공(空)을 관(觀)함은 물 속의 달을 붙들려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라고 한 말을.
납승이라면 이쯤에서 몸을 바꿀 만한 길 한 가닥[傳神一路]이 있어야만 한다. 몸을 바꿀 수만 있다면 벌여놓은 것과 모인 무더기마다 다 대사(大事)가 나타난[現前] 것이라서 종횡으로 자유로와 다시는 모자라거나 남는 법이 없으려니와, 몸을 바꾸지 못한다면 푸대 속의 늙은 거위와 같아서 살아있다 해도 죽은 목숨과 같으니라.
나는 산에 사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본래 식견이 없다. 그러나 어제는 이 군(郡)의 전승판관비서(殿承判官秘書)에게 특별히 초청을 받았으니 명령을 받고서 감히 찾아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문 앞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바로 귀종사(歸宗寺)를 맡아달라는 명령이 있었다.
나아가고 물러남을 곰곰히 살펴보았더니 염치없음만 깊이 더하였다. 이는 전승판관이 옛날에 부처님의 수기(受記)를 받들어 왕의 신하로 모습을 보이심이다. 항상 정사를 베푸는 여가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경스럽게 받들어 혜풍(慧風)과 요풍(堯風)을 아울러 선양하려 하였으며 불일(佛日)과 순일(舜日)이 함께 밝기를 기대했으니 진실로 중생에 뜻[意]을 두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처럼 마음을 극진히 할 수 있었으랴.
이 날에 또 조정의 수레가 영광스럽게도 법회에 임하여 시종 성쇠하던 중에 진실로 영광을 더하게 되었다. 옛날에 배상국(裵相國)은 높은 벼슬 자리에 있었으나 황벽(黃檗)스님에게 인정을 받았고, 한문공(漢文公)은 당세에 명성이 지중하였으니 태전(太賞)스님을 모시었다. 지금의 이 일을 옛날에 비교한다면 무슨 차이가 있으랴. 할말은 많으나 보고 듣느라고 번거로울까 염려스럽다."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3.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법령을 극진히 하여 기강을 잡음은 범부와 성인 양쪽에 다 통하지는 않으며 그렇다고 한 가닥 길을 놓아주면 알음알이[商量]가 생긴다."
곧 이어 주장자를 잡아 세우더니 말씀하셨다.
"바로 지금 주장자가 서니 시방세계가 일시에 서는구나."
그리고는 다시 주장자를 눕히더니 말씀하셨다.
"바로 지금 주장자를 눕히니 시방세계가 일시에 눕는다. 어째서인가? 듣지도 못했느냐. '가장 작은 것은 가장 큰 것과 같아서 경계를 끊어 잊었고, 가장 큰 것은 가장 작은 것과 같아서 테두리를 보지 못한다'고 한 말씀을."
그리고는 주장자를 높이 세우더니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4.
제형(提刑 : 지방에서 형벌이나 옥사의 일을 맡는 벼슬)이 산에 들어와 좌석에 오르자 한 스님이 청하였다.
"제형의 수레가 멀리서 법좌에 나오셨으니 스님께서는 깨달음의 종지[向上宗乘]를 한 번 결단해 주십시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자(一字) 모양 두건[幞頭]이며 챙이 뾰족한 모자로다."
그 스님이 또 말하였다.
"비단, 제형만 이 훌륭함을 받들 뿐 아니라 저도 절하며 스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의 눈썹을 잡아 벗기고 그대의 콧구멍을 두드려서 떨어뜨린다면 또 어떠하겠느냐?"
그 스님이 "허허(噓噓)"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국수를 만들려면 그 고을 밀가루로 빚어야 하고, 노래를 부르려면 천자의 고향 사람이라야만 한다."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유정(有情)의 근본은 지혜 바다로 근본을 삼고, 함식(含識)의 부류는 모두 법신으로 자체를 삼는다. 다만 미혹한 생각[情]이 생겨 지혜가 막혔기 때문에 매일 작용하면서도 모르며, 생각[想]이 바뀌는대로 몸이 달라지기 때문에 업연(業緣)을 쫓아가 되돌아올수 없다. 아득한 예와 지금에 뉘라서 근본 원인을 확연히 아는가. 고단한 사랑과 증오는 망정의 근본으로서 허망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석가모니 조어사(調御師)께서는 일찌감치 깨달음을 얻으시고 우리가 수고로운 삶으로 생사유전을 자초함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런 뒤에 큰 지혜를 얻고 오묘한 모습으로 몸을 나투시어 49년을 세상에 머무시면서 12분교(十二分敎)를 연설하셨다. 그리하여 영리하고 둔한 근기에 맞추어 교화 방편을 세워 상 · 중 · 하의 근기가 각자 정도[漸]에 맞게 얻기를 바라셨다. 마치 큰 바다가 작은 물줄기를 사양하지 않아서, 가령 모기 · 등애 · 아수라왕이 그 물을 마시는데 모두 배부르게 되는 것과도 같았다. 그 뒤 교화할 인연이 다하여 쌍림(雙林)에서 열반을 보이려 하면서 인간 · 천상의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나에게 정법안장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이 있는데 마하대가섭(摩訶大迦葉)에게 부촉하여 교(敎) 밖에 따로 펴서 상근기들에게 전하게 하노라.'
이 법은 조작이나 사유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신통이나 닦아서 깨달음[修證]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유심(有心)으로써 알지도 못하며 무심(無心)으로써 체득하지도 못한다. 이를 깨달으면 3계(三界)를 단박에 초월하려니와 이에 미혹되면 만겁토록 생사에 빠진다.
오늘은 왕의 관리가 두루 모이고 승속이 자리에 함께 하여 앉고 섬이 염연하고 보고 들음이 어둡지 않으니 이는 미혹이겠느냐, 깨달음이겠느냐? 여기에서 체득할 수 있다면 3아승지겁[三祗劫]을 다 채우거나 만행(萬行)의 공부가 완성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일념에 초월하여 다시는 전 · 후가 없으리라.
오늘은 우리 절에 영광스럽게도 이 지방의 제형도관(提刑都官)과 제형사인(提刑舍人)이 직접 조정의 수레로 내려오셔서 보잘 것 없는 이 절을 빛내 주시려고 하룻밤이나 걸려 찾아왔으니 나날의 기거(起居)에 만복 있으소서. 더구나 존귀한 두 분 관리는 숙세에 덕의 근본을 심어 재관(宰官)의 몸으로 시현(示現)하여 자비와 은혜로 백성들에게 임하셨음에랴. 지금 밤낮으로 급한 천자의 일을 대신하여 스님 · 속인 · 귀인 · 천인들이 모조리 복과 수명의 은혜를 하사받았으니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느냐.
이미 영광스럽게도 왕림해 주신 덕을 보았으니 우선 귀한 보살핌을 여유있게 받으라. 그러므로 우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설법하는 사람은 설명함도 없고 보여줌도 없으며, 법을 듣는 사람도 들음도 없고 얻음도 없다'고 하셨던 것이다.
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중니(仲尼 : 孔子)가 온백설자(溫伯雪子)를 오랫동안 보고 싶어 하던 중, 하루는 수레를 타고 가다 길에서 만났는데 피차 말없이 각자 되돌아갔다.
그 뒤에 제자가 묻기를, '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온백설자를 보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만나서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으셨으니 무슨 뜻인지요?' 하자 중니는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한다.
'군자의 만남은 눈빛이 마주치는 데에 도가 있다.'
말해 보라. 옛사람의 만남이 눈빛 마주치는 데에 도가 있다 하였는데 산승은 오늘 북을 울리고 법당에 올라 유난스레 말이 많았으니 한바탕 손해를 보았노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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