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호랑이 수염을 순조롭게 뽑으려거든 응당 자기부터 살펴야 하며, 뱀꼬리를 거꾸로 잡으려거든 뱀이 하는대로 맡겨두어라. 오랑캐가 오면 오랑캐가 나타나고 중국사람이 오면 중국사람이 나타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니 밝은 거울을 높은 경대에 걸지 말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자소봉(紫霄峰) 위의 검은 구름은 아련한데 파양호(鄱陽湖) 속의 흰 파도는 하늘까지 넘실거린다. 한 기운[一氣]은 일어남 없이 일어나고 만법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그러하구나. 여기서 따지고 헤아리다면 10만 8천리 밖으로 멀어지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7.
상당하여 주장자를 잡더니 말씀하셨다.
"옆으로 잡고 거꾸로 휘둘러 미륵의 눈동자를 열어제치고, 밝음이 가고 어둠이 오니 조사의 콧구멍을 두드려 떨어뜨린다. 바로 이런 때라면 목건련과 사리자는 숨소리마저 죽이고 임제(臨濟)와 덕산(德山)은 하하 하고 크게 웃는다. 말해 보라. 무엇을 두고 웃었는지를. 쯧쯧…"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8.
목주(睦州)스님에게는 뛰어난 제자가 하나 있었는데, 언젠가 만났을 때 목주스님이 말하였다.
"무엇을 아는가?"
"24가(二十四家)의 서법(書法)을 압니다."
목주스님은 주장자로 공중에다 점 하나를 찍더니 말하였다.
"알겠느냐?"
제자가 어찌할 바를 모르자 목주스님이 말하였다.
"24가의 서법을 안다고 다시 말해 보라. 영자8법(永字八法)도 모르고서는…"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목주스님의 한 점은 곧장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에 있더니 영자8법으로 글씨를 논함에 이르러선 도리어 속인에게 간파당하였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공자 문하의 제자는 아는 사람 없었는데 눈 푸른 달마는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이는구나."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9.
엄양존자(嚴陽尊者)가 조주(趙州)스님에게 말하였다.
"한 물건도 가져 오지 않을 경우라면 어떻습니까?"
"놓아버리게"
"이미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놓아버리라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걸머지게"
존자는 이 말끝에 깨달았다.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한 물건도 가져 온 것 없건만
어깨에 짐을 지고 일어나지 못했었네
말 끝에 홀연히 잘못임을 알아
마음 속은 무한히 기쁘고
나쁜 독을 마음에서 잊었으니
뱀과 호랑이도 친구라네
몇백 년 세월 흘렀건만
맑은 바람 그치질 않네
一物不將來 肩頭擔不起
言下忽知非 心中武限喜
毒惡旣忘懷 蛇處爲知己
光陰幾百年 淸風物未己
주장자를 선상에 세우더니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0.
임제스님이 감원(監院 : 원주)에게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느냐?"
"고을에서 쌀을 사옵니다."
임제스님은 주장자로 그 앞에서 한 획을 긋더니 말씀하셨다.
"이것도 살 수 있겠느냐?"
감원이 별안간 악! 하고 고함을 치자 스님은 바로 후려쳤다. 전좌(典座 : 선방에서 좌구나 의복 생활용품을 담당하는 소임)가 찾아오자 임제스님이 앞의 대화를 말하였더니 전좌가 말하였다.
"원주(院主)는 스님의 의도를 몰랐군요."
"그대는 어찌하겠는가?"
전좌가 절을 하자 임제스님은 역시 후려쳤다.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할을 해도 후려치고 절을 해도 후려쳤다. 여기에 가까이함과 멀리함이 있겠느냐? 가까이함과 멀리함이 없었다면 임제스님은 옳지 않으니 맹목적으로 묶어놓고 방망이질을 한 것이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원주가 할을 할 때 놓아주어선 안되며, 전좌가 절을 할 때 놓아주어서도 안된다."
다시 말씀하셨다.
"임제스님은 법령을 행하였고, 나는 놓아주었다. 30년 뒤에 설명해 줄 사람이 있으리라."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1.
한 스님이 남원(南院)스님에게 물었다.
"해와 달은 번갈아 옮겨가고 추위와 더위는 차례차례 뒤바뀝니다. 추위와 더위를 겪지 않는 수도 있습니까?"
"자줏빛 비단으로 이마를 문지르고 속곳 허리에 수를 놓는다."
"가장 뛰어난 근기라면 여기서 이미 깨달았겠지만 중하(中下)의 부류는 어떻게 알아야 합니까?"
"잿더미 속에 몸을 숨겨라."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남원은 한 번에 상대를 이롭게 하였지만 병에 맞게 약을 쓴다는 면에서 보면 잘못 되었다. 납승의 문하라면 천지처럼 현격하게 다르다. 말해 보라. 납승에겐 더 나은 점이 무엇이겠느냐?"
"쯧쯧" 하더니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망정이 다하면 진상(眞常)이 그대로 드러나고, 허망한 인연을 여의기만 하면 그대로가 여여(如如)한 부처이니라' 하였는데, 쯧쯧! 이 무슨 말인가?"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3.
상당하자 한 스님이 여쭈었다.
"우두(牛頭)스님이 사조(四祖)스님을 뵙기 전에는 무엇 때문에 온갖 새들이 꽃을 물어다 바쳤습니까?"
"뽕나무 뿌리는 못[釘] 같으며 물소뿔은 넓다."
"뵌 뒤엔 무엇 때문에 꽃을 물어다가 바치지 않았을까요?"
"잠방이에는 배자(襠 : 덧조끼)가 없고 홑바지엔 바지 구멍이 없다."
그 스님이 또다시 여쭈었다.
"뵙지 않았을 땐 어떻습니까?"
"나라가 맑으면 인재가 존경을 받고, 집이 넉넉하면 어린 아이가 버릇없다."
"뵌 뒤엔 어떻습니까?"
"세상의 인정은 차고 따뜻함을 살피며, 사람의 얼굴은 높고 낮음을 좇는다."
스님께서 계속하여 말씀하셨다.
"학륵나(鶴勒那) 존자는 저 공중(空中)에서 갖가지 모습을 나투고 만나라(蔓拏羅) 존자는 땅을 가리키니 샘이 되었다. 덕산(德山)의 회상은 전후가 끊어졌고[光前絶後]임제의 문전에선 한 쪽만을 얻을 뿐이다."
한참 잠자코 있더니 "무엇이 그 한 쪽이겠느냐?" 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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