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양기록·황룡록 楊岐錄·黃龍錄

균주 황벽산에서 남긴 법어 10~15.

쪽빛마루 2015. 5. 31. 11:28

10.

 설날 아침에 상당하자 한 스님이 여쭈었다.

 "묵은 해는 이미 갔고 새해가 찾아왔습니다. 이 두 길을 지나지 않는 길을 스님께서는 지적해 보여 주십시오."

 "동방(東方)은 갑을목(甲乙木)이다."

 "인간과 천상이 귀를 쯩긋하고 오로지 흘러 통하는[流通]소리를 들을 뿐입니다."

 "흘러 통하는 일은 어떠한데?"

 "흐르는 물을 만나지 못한다면 어찌 다른 산으로 지날 수 있겠습니까?"

 "30년 뒤에 잘 헤아려 보라."

 그리고는 스님께서 이 이야기를 하셨다.

 한 스님이 경청(鏡淸)스님에게 물었다.

 "신년 벽두에도 불법이 있습니까?"

 "있지"

 "어떤 것이 신년 벽두의 불법인지요?"

 "초하룻날 아침에 복을 여니 만물 모두가 새롭다."

 "스님의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노승이 오늘은 손해를 보았구나."

 다시 그 스님이 명교(明敎)스님에게 물었다.

 "신년에도 불법이 있습니까?"

 "없다."

 "해마다 좋은 해이고 나날이 좋은 날인데 무엇 때문에 없다 하시는지요?"

 "장공(張公)이 술을 마셨는데 이공(李公)이 술에 취한다."

 ", 무슨 말씀을, 용두사미로군요."

 "노승이 오늘은 손해를 보았다."

 이에 대해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경청스님이 손해본 것은 묻질 않겠다. 그대 납자들이여무엇이 명교스님이 손해본 곳이더냐? 가려낼 사람이 있다면 문수의 머리는 하얗고 보현의 머리는 까맣겠지만, 가려내지 못한다면 오늘은 내가 손해를 보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1.

 늑담( )스님이 편지를 보내오자 그 일로 상당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다.

 "5조 사계(五祖思戒)스님이 지문(智門)스님의 편지를 가지고 덕(德山)스님에게 도착하였더니 원명(圓明)스님이 편지를 받고는 물었다.

 '이것은 지문(智門)스님의 것이니 어느 것이 바로 심부름꾼의 것이냐?'

 오조스님은 곧장 올라가 덕산스님을 보면서 말하였다.

 '앞 사람을 보려 한다면 우선 심부름꾼을 관찰하십시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사람은 산 너머로 연기만 보아도 바로 불이라는 것을 알았다는데 나는 그에 비해 얼마나 다행인가. 늑담스님께서 영광스런 편지를 멀리 보내와 내 마음을 자상하게 위로해 주시니 실로 부끄러운 마음으로 받는다. 더구나 스님께서는 바다같은 학문에 훤히 밝고 고금에 박식하게 통달한 사람이 아닌가. 하늘의 일월을 높이 떠받들고 사람을 가르치는데 게으름이 없었다 할 만하다. 나는 또 무슨 지푸라기같은 사람이기에 이같은 은덕을 입는가."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내려오셨다.

 

12.

 성절(聖節)에 상당하더니 말씀하셨다.

 "오늘은 영광스럽게도 우리 황제가 탄생하신 날이니 온 누리가 모두 축하하고 온 나라에서 공경히 받듭니다. 요임금같은 천명()과 순임금같은 덕은 일월과 똑같이 밝고, 금과 옥같은 자손은 산같이 바다같이 영원히 견고하소서.

 만국을 가엾게 여기는 은혜를 베푸시고 다른 나라까지도 은택을 내리소서. 감옥에는 오래 갇혀 있는 죄수가 없게 하고 전쟁하는 말은 소와 양과 함께 골짜기에 놀게 하소서. 문덕(文德)을 닦으시고 무덕(武德)을 쉬어 전쟁을 그만두게 하시니 만민은 우물을 파서 물 마시고 백성은 스스로 농사 지어 밥을 먹으며 집안과 나라는 편안하고 제대로 되지 않는 일이 없게 하소서."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3.

 눈이 내리자 상당하더니 말씀하셨다.

 "눈은 송이송이 다르지 않고 어지럽게 흩날리며 시절에 응하는구나. 알쏭달쏭한 선문답도 모르는데 말뚝을 지키며 토끼 기다리는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려주랴."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33(三玄三要)5위군신(五位君臣)4종장봉(四種藏鋒)*8방주옥(八方珠玉)30년 전에는 다투어 구하느라 저마다 날카로운 기량[機鋒]을 드러냈었다. 그러나 지금은 태평스러워져 소박순수함으로 되돌아가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다.

 산도 푸르고 물도 푸른데 흰 구름 깊은 곳이로다. 3(三儀)한 벌 누더기뿐, 만사에 생각 없는데 무얼 염려하랴."

 선상을 치더니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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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종장봉 : 경 · · 3장에 잡장(雜藏)이나 주장(呪藏)을 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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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영가대사(永嘉大師)는 말하였다.

 "강과 바다에 다니고 산과 개울을 건너 스승을 찾고 도를 묻는 것으로 참선이라 하다가 조계의 길[曹溪路]을 알고부터는 생사가 나를 어찌하지 못함을 분명히 알았다네."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여러 스님들이여어느 것이 돌아다닌 산천이며, 어느 것이 찾아다닌 스승이며, 어느 것이 참구할 선이며, 어느 것이 물을 도이더냐?

 회남(淮南)과 양절(兩浙 : 절강을 중심으로 위 아래 고을)과 여산과 남악에서 운문과 임제가 스승을 구하고 도를 물었고 동산()과 법안(法眼)이 참선을 하였으니 이는 밖으로 치달려 구하는 것으로서 외도(外道)라 한다. 비로자나 자성으로서 바다를 삼고 반야 적멸의 지혜[]로서 선을 삼는다면 안에서 구함[內求]이라 하겠지만, 밖에서 구한다면 그대를 쫓아낼 것이며, 5(五蘊) 에 안주하여 구하면 그대를 속박하리라. 그러므로 선()이란 안도 아니며 밖도 아니며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며 실제도 아니고 허망도 아니다. 듣지도 못했느냐? '안으로 보고 밖으로 봄이 모두 잘못이며 부처의 도와 마군의 도가 모두 악이다'라고 했던 말을.

별안간 이렇게 되어버림이여

달에 서산에 지는구나

자꾸만 소리와 모습[聲色]을 찾음이여

이름과 모습이 어디에 있는가.

瞥然與麽去兮  月落西山

更尋聲色兮  何處名邈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