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한 사람은 아침에는「화엄경」을 보고 저녁엔「반야경」을 보면서 밤낮으로 정근하느라 잠시도 겨를이 없으며, 한 사람은 참선도 하지 않고 논의도 하지 않은 채 헤진 방석을 붙들고 대낮에 졸고 있다. 이 두 사람이 함께 나를 찾아왔다. 한 사람은 함이 있고 한 사람은 함이 없다. 어떤 사람을 인정해야 옳겠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공덕천(功德天 : 毘沙門王의 왕비)과 흑암녀(黑暗女)를 지혜 있는 주인은 둘 다 받질 않는다."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9.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대각세존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지금 그대를 위해서 깨달음을 잘 간직[保任]하나니 이 일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너희들은 이 삼매를 부지런히 정진해야 된다'고 하셨다."
스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정진이라면 없질 않다만 여러분은 무엇을 삼매라 하겠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가섭의 분소의(糞掃衣) 값은 백천만금이고, 전륜왕 상투 속의 보배는 반푼어치도 못된다."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0.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어제는 죽을 지나치게 늦게 먹더니 오늘은 또 죽을 너무 일찍 먹는구나. 이는 주지하는 사람의 위엄스러운 명령이 근엄하질 못해서이냐, 아니면 일 보는 사람[執事人]의 몸과 마음이 게으르기 때문이냐? 대중들은 한번 판단해 보라. 법도가 혼란해지고 나면 모든 일이 들쑥날쑥하며 한 사람이 일을 실수 하면 여러 사람이 불안해진다. 절 내외의 1,2백 사람들은 곡좌(曲坐)가 이미 그 지위에 있으니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낱낱이 가까이 목전에서부터 반조하고 되돌아보아야만 하며 일을 경솔히 하고 대중을 업신여겨서는 안된다. 이처럼 할 수만 있다면 낱낱이 원각(圓覺)이며 걸음마다 도량이다. 어찌 밖에서 천착하여 긁어 부스럼을 만들랴."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1.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달마는 서쪽에서
십만 리를 찾아와 소림에서 팔구년을 면벽했는데 오직
신광(神光 : 이조
혜가)이 이 뜻을
알고 묵묵히 3배(三拜)하여 헛되게
전하지 않았다.
후대의 아손은
정각(正覺)을 잃고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좇으며 삿된 말을 숭상하여 죽는 날에 이르러선 빚진
원수같은 몸으로 황천에 들어가는구나."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2.
상당하여 불자로
선상을 한 번 치고는 말씀하셨다.
"눈이 있으면
모두 보고 귀가 있으면 다 들었을 것이다.
이미
보고 들었으니
말해 보라.
무엇을
들었는지를.
만학이든
초학이든 분명하고
분명하게 설파해야만 한다.
우리 부처님께선
마갈타국에서 이 법령을
직접 시행하였고,
28조사는 차례차례
전수하였다.
그 뒤
석두(石頭)와
마조(馬祖)스님에 이르러선
망아지 한 마리가 천하 사람들을
밟아 죽인 격이고,
임제와 덕산의
몽둥이와 할은 우뢰와 번개처럼
빨랐다.
뒤의 법손은
변변치 못하여 그 법령을 내세우긴 했으나
시행하진 못하고 화려한 언구만 드러냈을 뿐이다.
내가 세간에
태어난 시대는 말세운에 해당하여 다 망가져가는 법고(法鼓)를 치고 떨어져
버린 현묘한 강령을 정돈하였다.
여러분은 중간에
여러 해를 매어둔 채 보내지 말라.
4대해(四大海)의
물이 여러분의
머리 위에 있음을 알아야만 하리라."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3.
한 스님이
건봉(乾峰)스님에게
물었다.
"시방 제불의 한
길 열반문이라 하였는데 그리로 가는 길목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건봉스님은
주장자로 가르키면서 말하였다.
"여기에
있다."
그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자세한 설명을 청하였더니 운문스님은 부채를 잡아
일으키면서 말하였다.
"부채가 껑충
뛰어 33천에 올라
제석(帝釋)의 콧구멍에
부딪치고 동해의
잉어가 한 방망이를 치니 비가 동이물을 붓듯 쏟아지는구나.
알겠느냐,
알겠어?"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건봉스님이 한
번 지적한 일은 초학자[初機]를 위한 자상한
방편이며
운문스님에 와서야 변화에 통하여 후인들이 게으르지 않게끔
하였다.
여러분은 두 분
스님의 뜻을 깊이 캘지언정 두 분의 말씀을 좇진
말라.
뜻을 얻으면
바른 길로 되돌아와 집으로 돌아가려니와,
말을 찾는다면
삿된 길로 미끄러져 더욱 멀어지리라."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망정(妄情)이 다하여
진상(眞常)이
그대로 드러나고
허망한 인연 여의기만 하면 바로 여여한 부처라 하였다.
이는 옛사람이
먹다 남긴 국이고 쉰 밥이긴 하나 상당한 사람들이 먹질
못하고 있다.
내가 이 말을
들먹였으니 손해가 적지를 않구나.
점검해낼 사람이
있다면 바로 부처의 병과 조사의 병을 알리라.
만일 점검해내지
못한다면 섬부(陝府)의
무쇠소*가
천지를
삼키리라."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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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부의 무쇠소(陝府鐵牛) : 섬부는 지금의 하남성(河南省)자리. 여기에는 철제로 만든 큰소가 있다는데 움직이지 않는 것의 상징으로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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