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양기록·황룡록 楊岐錄·黃龍錄

황룡산에서 남긴 어록 1~7.

쪽빛마루 2015. 5. 31. 11:31

황룡산에서 남긴 어록

[黃龍山語錄]

 

1.

 절에 들어가 상당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황룡산의 경계입니까?"

 "어제서야 여기에 도착하였기 때문에 아직 자세히 보질 못하였."

 "어떤 것이 그 경계에 있는 사람입니까?"

 "긴 것은 길고 짧은 것은 짧다."

 스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도는 의심과 막힘이 없으며 법은 본래 인연을 따르니 일이 어찌 억지로 되랴. 아마도 그렇지 않으면서 그러한 것이리라. 적취(積翠菴)에 있으면 적취암 사람이라 하고, 황룡산(黃龍山)에 들어가면 바로 황룡장로(黃龍長老)라 한다. 조사의 심인(心印)을 어떻게 알랴. 무쇠소를 만드는 틀과도 흡사하여 도장을 떼면 무늬[印文]가 찍히고 도장을 누르고 있으면 무늬가 뭉개진다. 떼지도 않고 누르지도 않을 경우엔 또 어떻게 도장을 찍겠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안개 낀 마을에 3월 비 내리는데 어떤 집 하나만은 색다른 봄이로구나[煙村三月雨  別是一家春]."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2.

 방거사(龐居士)가 조리(笊)를 팔러 다리로 내려오다가 땅바닥에 입을 박고 엎어지자 딸인 영조(靈照)도 아버지 곁에 거꾸러지니 거사가 말하였다.

 "너는 무얼 하느냐?"

 "아버지께서 땅에 거꾸러진 것을 보고 제가 부축해 드리는 겁니."

 "다행히도 보는 사람이 없었기 망정이구나."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가련한 사람은 비웃는 줄도 모르고 도리어 가다 말고 진흙탕에서 뒹구는구나. 내가 당시에 보았더라면 이 원수를 한 방망이에 쳐죽였으리라."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내려오셨다.

 

3.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은 세상에 출현하여 방편으로 말씀[言詮]을 시설하였으나 조사가 서쪽에서 찾아와서는 입도 뻥긋 않으셨다. 가령 허공에서 놓아버린다면 3천세계(三千世界) 모든 티끌의 낱낱 티끌 가운데 법계를 머금겠지만, 만일 걸음마다 높은 데 오르려 한다면 나귀의 안장은 너의 아버지 아래턱뼈가 아니리라."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큰 도는 중간이 없으니 다시 무엇이 전후가 되며, 긴 허공은 자취가 끊겼는데 어찌 헤아림이 필요하랴. 허공이 이미 이와 같은데 도를 어찌 말하랴. 상근기라면 설명[言詮]을 빌리지 않겠지만 · 하의 부류라면 또 어떻게 면하겠는가. 그러므로 한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묻기를 '무엇이 운문의 한 곡조입니까?' 하자 '납월 25일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오늘이 바로 납월 25일이다. 그대들은 잘 알겠느냐? 잘 모르겠다면 자세히 들으라. 내 여러분을 위해서 거듭 한 번 더 노래하리.

 

운문의 한 곡조는 스물 다섯이라

궁상각치우에 속하지 않았네

내 곡조의 유래를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남산에 구름 일어나니 묵산에 비 내린다 하리.

雲門一曲二十五  不屬宮商角徵羽

若人問我曲因由  南山起雲北山雨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승당앞에서 종을 치면 종이 울리고 법당 위에서 북을 치면 북이 메아리쳐서 3세 모든 부처님이 북소리 속에서 큰 법륜을 굴린. 여러분은 어느 곳에서 안심입명을 하려느냐? 억지로 부리는 어떤 납승이 있어 탁하고 청정함을 모른 채 문득 '동서남북과 사유상하와 오늘은 7, 다음날은 8을 말하며 승당 안에서 밥을 먹고 요사채에서 불을 쪼이거나 혹은 면전에 한 획을 긋기도 한다. 렇게 했다간 4(四恩)을 등지리니 그것은 그래도 괜찮다 하겠지만 서쪽에서 오신 눈 푸른 달마를 저버리리라."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황매산(黃梅山)에서 한밤중에 심게(心偈)를 전하고 소실암전(少室巖前)에서 팔을 끊었으니 긁어 부스럼 만들면서 아픔을 모르고 지금까지 시비거리를 만드네."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내려오셨다.

 

7.

 월주(越州) 대주(大珠)스님이 지난날에 마조(馬祖)스님을 뵈었을 때 마조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무얼 하러 왔느냐?"

 "불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집을 버리고 생업을 잃었느냐. 왜 머리를 돌이켜 자기 집의 보배창고를 알고 갖질 않느냐."

 "무엇이 자기 집의 보배 창고입니까?"

 "지금 묻고 있는 자가 그것이다. 그대가 머리를 돌이킨다면 일체가 구족하여 누리고 씀[受用]이 끝도 없어서 다시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대주스님은 여기에서 구하는 마음을 홀연히 쉬고 대도량에 앉았.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여러분들은 각자에게 자기의 보배창고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사용하질 못하느냐. 머리를 돌이키지 않기 때문이다."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