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하루는 한 스님이 문안을 드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이 이렇게 왔다갔다하는가?"
"말하는 이 놈이 왔다갔다할 뿐입니다."
"어째서 들어가는 길을 찾지 못하는가?"
"스님께선 어떻게 왔다갔다한다 하십니까?"
"그대는 방금 어디서 왔는가?"
"저는 다당(茶堂) 안에서 왔습니다."
"그대가 지금 간다 해도 다당으로 갈텐데 어째서 가고 옴을 모르는가."
한 스님이 설봉스님께 "무엇이 비로자나의 스승이고 법신의 주인입니까?" 하고 묻자 설봉스님께서는 "좋은 질문이다"라고 하셨다.
그 스님이 이를 스님께 말씀드리면서 물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그대는 내게 묻거라" 하여 그 스님이 앞서 대로 물었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본래 사시(謝氏)네 셋째 아들이다."
"스님이 바로 그것 아닙니까?"
"이를 무엇이라고 하면 옳겠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정확한 뜻입니까?"
"나는 본래 민현(閩縣)의 인혜(仁惠)마을 사람이라네."
"무엇이 정확한 뜻이냐고요?"
"이제껏 그대에게 인혜마을 사씨네 셋째 아들이라고 말했더니...."
"스님께선 이끌어주십시오."
"사씨네 셋째 아들일 뿐이니 따로 찾지 말게."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온통 그 자체가 변하지 않는 불성(佛性)입니까?"
"가져와 보아라."
"스님께서 도와주십시오."
"그대는 무얼 물었는가?"
"온통 그 자체가 변하지 않는 불성 말입니다."
"출가하기 전에 그대의 속명(俗名)은 무엇이었더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학인 자신입니까?"
"나 자신이다."
"조금 전엔 제 자신을 물었습니다."
"나 자신이라고 그대에게 말하지 않더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법왕(法王)입니까?"
"법왕이지."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크게 긍정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까?"
"그대는 어디 사람이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3승(三乘)이 쓰는 법성(法性)입니까?"
"쓰는 법성은 모른다."
27.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여러 스님네들이여, 무슨 세계이기에 이렇게 자유자재할 수 있는가. 머물고 싶으면 머물고 가고 싶으면 가되, 아무것도 그대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의식으로 알고 몸으로 느끼도록 하는 법은 없으니 알겠는가. 긍정하고 소중히 여기는가. 긍정한다 해도 그대 스스로 긍정하는 것이며, 소중히 여긴다 해도 그대 스스로 소중히 여기는 것이지 그대에게 분별을 지어 주는 것은 털끝만큼도 없다. 알겠느냐. 알았다면 당장 꺼내놓고 대중 앞에서 헤아려 볼 일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가고 싶으면 가는 법입니까?"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무엇이 머물고 싶으면 머무는 것입니까?"
"그대는 가고 싶으면 가거라."
"그대로 사람을 위해야 하지 않을까요."
"누구를 위한단 말이냐."
"무엇이 눈 · 귀 · 코 · 혀 · 몸 · 생각이 없음입니까?"
"그대는 무얼 물었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6국(六國)이 편안치 못할 땐 어찌합니까?"
"그대 스스로 묻도록 하여라."
"편안해진 뒤엔 어찌합니까?"
"다시 그대에게 묻고, 그대는 그에게 대답해야 한다."
"그에게 대답하는 일이 가능합니까?"
"어째서 스스로 자빠졌다 일어났다 하는가."
28.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이러한 가풍은 예나 지금이나 한 법도 이것 아님이 없어서 이렇게 찬란하고 이렇게 분명하며 안팎으로 맑고 깨끗하다. 그런데 어째서 남에게 질문을 받으면 '나는 모른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는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대 평생에 부모가 그대를 기를 때, 어째서 부모에게 묻지 않았는가. 갓 태어났을 때 그대의 이 몸뚱아리를 보는 순간 사내아이라고 말했는지, 아니면 남이 물어 보는 것을 빌미로 분별해 본 뒤에야 비로소 사내아인 줄 알았는지를.
그대가 그런 식으로 낱낱이 사람들에게 물어 본다면 언제 자유 자재함을 얻겠는가. 이제는 알았는가?
그대는 그대대로 빠짐없이 완전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형제자매도 낱낱이 완전하다. 사람사람이 다 그렇고 법이 다 그러하니 나아가 모든 법까지도 일시에 알아버려야 한다.
만약 그렇게 알지 못하고서 저 다른 사람에게 질문해야 한다면 여래의 제자도 아니며 출가한 사람도 아니다. 오래들 서
있었다.
몸조심하라."
한 스님이 물었다.
"하루 종일 어떻게 맞추어 사용해야 합니까?"
"왔다갔다하면
안된다."
"그렇다면 전도된 것도 완전히 옳겠습니다."
"옳다 한들 또 옳은 것은 무엇이며, 옳지 않다 한들 옳지 않은 것은
무엇이겠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말이며 논리입니까?"
"그대는 질문을 꺼낼 수
있겠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산중의 진짜 주인입니까?"
"산중의 주인도
모른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모든 부처님께서 자비를 드리우시는
일입니까?"
"그대는 벌써 알고서 나에게 물으러 왔다."
"어째서 도리어 그렇습니까?"
"그대가 모르기
때문이지."
29.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그러할 뿐인데 다시 무슨 말씀을 찾으려 하는가. 여러분 앞에서 보리열반을
설하겠는가, 능가경(楞伽經) 사익경(思益經)을 설할 수 있겠는가. '이는 조사의 말씀이다', '이는 큰스님들의 이론이다'라고 설할
수 있겠는가.
여러 스님네들이여, 어째서 그런가. 그대가 마음 속으로 헤아리고 말이나 외워서 되는 도리가 아니며, 사람 앞에서
'이는 부처님께서 어느어느 때 하신 말씀이며 이는 어느어느 경 · 율 · 논의 말씀이다'라고 들먹일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님네들이여, 경전은 경전대로 그것을 강의하는 강주가 있다. 그러므로 달마대사께서 이렇게 특별히 오셔서 '심인(心印)만을
단독으로 전하고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으니, 요컨대 본래부터 내려온 본분의 심지법문(心地法門)을 그대들에게 알게 하였던
것이다. 하루 종일 그대 본분의 심지법문 아닌 것이 없는데, 깨달았는가, 알아냈는가.
이제 그대들에게 다 설파해
주었으니 여러분 각자가 직접 밝혀야만 한다.
위와 같은 말을 알아듣겠는가. 온 시방세계가 한 법도 이것 아님이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경사(經師)입니까?"
"나는 이렇게
들었다…."
"무엇이 율사(律師)입니까?"
"부처다."
"무엇이 논사(論師)입니까?"
"법이다."
"스님께서는 앞서 경 · 율 · 논의 강주를 세 부류로 나누지 않으셨던가요."
"그대는 경 · 율 · 논을 아는가?"
"경과 율과
논이겠지요."
"어찌 경 · 율 · 논을 알았겠느냐. 허망한 말일 뿐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조사의 말씀이나 외우고 다니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대가 어찌 알겠는가."
"어떤 사람이기에 말입니까"
"나는 아니다."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떻게 해야만 말이나 외우고 다니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대는 상당히 솔직하지 못하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주인 가운데
주인입니까?"
"여기는 북원(北院)이다."
"스님께서는 안녕하십시오."
"그대는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법왕입니까?"
"그 많은 법왕을 어디다
쓰려고?"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5온이 다 공하다는 것입니까?"
"무슨
잠꼬대냐."
30.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여러 스님네들이여, 광대자재한 견문각지는 지혜롭고 원통하며 청정하다. 끝없는 등불을 길이
태우고 모래알 같은 세계에 두루하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것이 없다. 범부와 성인이 낱낱이 해탈이며 낱낱이
여여하다. 여러분은 이러한 안락을 얻었느냐, 이러한 맑고 텅 빈 경지를 얻었느냐, 이런 자재를 얻었느냐, 이렇게 밝게 바라봄을
얻었느냐.
위풍당당한 광채가 환하게 드러나니 이것은 알음알이로 헤아려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지혜로 꿰뚫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넓고 아득하여 예와 지금에 환히 빛나고 3계(三界)와 4생9류(四生九類) 중생 등 천차만별한 것에 사무치니 소는 소이고 말은
말이며 나귀는 나귀고 양은 양이다. 여러분들이여, 승과 속이 분명하니 그 시비를 가려내야 하며 이렇게 허투루 세월을 보내서는
안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끝없는 등불을 길이 태웁니까?"
"보아라."
"저는
모르겠습니다."
"끝없는 등불도 모른다고 말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눈을 부릅뜨고서 보고 들음을 끊은 사람입니까?"
"바로
이때다."
"그렇다면 별다를 것이 없군요."
"천리, 만리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그만 그만! 말하지 말라. 나의 법은 오묘하여 헤아리기 어렵다'
한 것입니까?"
"지금 말한 것은 말한 것이 아니다."
"스님께서는 곧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어찌 빙 둘러 말하는
것이겠느냐."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스님의 말일 뿐입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이쪽 저쪽으로 자빠지느냐."
"학인이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대 스스로 다시 말해 보아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마니주(摩尼珠)입니까?"
"그대는 이렇게 전도될 수
있느냐."
"스님께서 밝게 꺼내 주십시오."
"그대도 전혀 이렇게 오지 않는구나."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정말로 죽은
나귀로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한 가닥 첩경입니까?"
"그대는 초숭(楚嵩)이
아니더냐."
"모르겠습니다."
"난들 또 어떻게 알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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