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여러 스님네들이여, 말은 진실 아님이 없고 이치는 옳지 않음이 없되, 곳에 따라 어디든 응해 주는 오묘한 작용은 그 범위가 말의 갈래를 초월하였다.
6도의 인천(人天)은 명암이 갈라져서 사람은 사람, 하늘은 하늘, 수라(修羅)는 수라, 어룡(魚龍)은 어룡이다. 지옥과 축생, 나아가서는 시방세계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모두 마찬가지다.
여러 스님네들이여, 그런데 어떻게 바로 한결같이 이렇게 말할수 있는가. '자기가 스스로 믿으면 바로 이것인데, 저기에 다시 많은 인간, 천상의 6도(六道)가 있어 4생9류에 왔다갔다한다'고.
여러 스님네들이여, 이렇게 이해한다면 무슨 구제할 곳이 있으며, 어디에 말할 여지가 있겠는가. 어째서 그런가. 당초에 가까이할 선지식에게 붙지 못했기 때문이니, 괴로움은 시초에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헛발을 디디고는 문득 말하기를, '평생의 일을 모조리 끝냈다. 다시 누가 의심을 풀어 주랴. 사람을 영원하고 원대하게 하는 것은 이 일뿐이다. 더 이상 어디로 가겠는가. 모두다 심법(心法)일 뿐이다'라고 한다. 여러 스님네들이여, 이런 견해라면 국왕의 신심어린 시주를 어떻게 받으며, 그들의 공양을 어떻게 받겠는가.
여러 스님네들여, 속히 선지식을 가까이하여 의심을 풀고 미혹을 타파하여 심요(心要)를 분명하게 취하라. 어디서든 몸을 뒤바꿔도 오롯해야만 자유를 얻고, 그에 걸맞는 안락을 얻으리라.
이렇게 이해한다면 3세 모든 부처님과 심지법문을 똑같이 증득하고 오묘한 행동을 똑같이 한다. 일색(一色)을 함께 운용하되, 운용하는 곳에서 바탕을 바꾸지 않고 있는 그 자리에서 설법을 하되 다시는 막힘이 없다.
여러 스님네들이여, 이러한 말이 옛 큰스님들의 말씀에 부합되겠는가. 멍청한 말은 아닌가. 하나같이 일률적이지나 않은가. 모두 나 한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닌가. 다시는 4생9류가 없겠는가. 이제껏 한 말을 알겠는가. 깨달았는가. 이것이 무슨 말인가 여러분 스스로 체득해 알도록 맡겨두겠다. 오래들 서 있었다. 몸조심하라."
3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이렇게 좋게 할 수도 있고 이렇게 나쁘게 할 수도 있고, 이렇게 길게도 이렇게 짧게도, 이렇게 생소하게도, 이렇게 익숙하게도, 이렇게 모나게도 이렇게 둥글게도 할 수 있으면서 낱낱이 환하게 밝다.
자 무엇이 좋고 나쁘고 길고 짧고 모나고 둥근 도리인가? 알았느냐. 어떻게 가려내야겠는가.
이런 말은 실로 마음의 힘을 덜어 주니 스스로 자세히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알았다면 함께 증명해 보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좋고 나쁜 일입니까?"
"다시 무슨 말을 해야 옳겠느냐."
"무엇이 모나고 둥글고 길고 짧은 일입니까?"
"설고 익고 길고 짧고 모나고 둥글다."
"어떻게 체득해 알아야 합니까?"
"바로 체득해 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달마의 정법안(正法眼)입니까?"
"절문[三門] 한번 좋구나."
"어떤데요?"
"그대는 어떤가?"
"녜, 녜."
"좋다, 좋아."
한 스님이 물었다.
"저는 평생 우둔하여 스님의 처소에 이르긴 했으나 전혀 들어갈 길이 없습니다. 스님께서는 곧바로 보여 주십시오."
"밖으로 찾지만 말라."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하겠습니까?"
"나쁜 일들을 하지 말고 착한 일들은 받들어 행하라."
한 스님이 물었다.
"옛 말을 들으오니 진여(眞如)는 여의보(如意寶)이고, 여의보(如意普)는 진여(眞如)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보진여(普眞如)입니까?"
"그대는 원사(園司 : 채소밭을 관리하는 지위)에 있지 않은가."
"스님께서는 분명하게 꺼내 주십시오."
"채소를 심기가 쉽지 않지."
한 스님이 물었다.
"말로는 미치지 못하는 곳을 스님께서는 곧바로 말해 주십시오."
"헛소리하는 놈아!"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설법을 해도 그 형체가 없다 한 것입니까?"
"그대의 아버지 이름은 무엇인가?"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떻게 해야 도에 부합하게 됩니까?"
"도에 부합해야만 한다."
"긍정하십니까?"
"부합했지, 부합했어."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옛 부처의 마음입니까?"
"등롱(燈籠)이다."
"무엇이 스님의 마음입니까?"
"주장자다."
"스님의 마음과 부처의 마음은 나뉘어지는 것입니까, 나뉘어지지 않는 것입니까?"
"무엇이 나뉘지 않느냐."
"어떻게 나뉩니까?"
"남당(南堂)과 동당(東堂)이다."
"무엇이 나뉘지 않음입니까?"
"그대가 묻고 내가 대답한다."
"어떻게 지녀야 합니까?"
"지님이 필요치 않다."
한 스님이 물었다.
"사방에서 산이 밀어닥쳐올 땐[四山相逼] 어떻습니까?"
"바로 말하라."
"밟을 수 있습니까?"
"그대는 무얼 사산(四山)이라고 했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모양 없는 도량입니까?"
"모양 없는 도량이다."
"그렇다면 부합합니까?"
"그대도 계합하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매일 모든 일에 응하는 사람입니까?"
"그대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승속을 분간하고 흑백을 분별하라' 하였습니다. 무엇이 승속을 분간하는 것입니까?"
"그대를 속인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무엇이 흑백을 분별하는 것입니까?"
"파란색을 노란색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일상적인 감정을 초월하는 것입니까?"
"그대 스스로 전도되지 말라."
한 스님이 물었다.
"오랫동안 총림에 있었습니다만 어째서 존귀한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대 이렇게 스스로 묶이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떻게 실천해야만 부왕(父王)을 뵐 수 있습니까?"
"스스로 악사(樂人)가 되어 악사 노인을 공양하라."*
"그렇게 하면 부왕을 뵐 수 있습니까?"
"아직 그대를 믿지 못하겠다."
한 스님이 물었다.
"승려로서 어떤 일을 해야만 조사께 부합되겠습니까?"
"그대는 아버지를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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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하(丹霞)스님의 여의송(如意頌)에 나오는 구절.
"眞如如意寶 如意寶眞如 森羅及萬像 一法更無餘‥"(「조당집」권4). 원문의 '普'는 '寶'의 오자인 듯하다.
* 「예기(禮記)」 소의(少儀)편에 나오는 이야기. 악사(樂士)의 장(長)으로 있는 아버지께 가장 큰 효도는 스스로 악사가 되어 가(家)를 이루는 일이라 하였다.
33.
스님께서 죽은 스님에게 공양하는 것을 보더니 물으셨다.
"거기서 무얼 하는가?"
"죽은 스님에게 공양을 합니다."
스님께서는 "이처럼 전도될 수 있다니" 하더니 다시 그 스님에게 물으셨다.
"죽은 중은 어디 사람이었던가?"
"양절(兩浙)지방 사람이었습니다."
"음음(吽吽), 어째서 선(禪)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언제 끝날 기약이 있으랴."
죽은 스님 앞에 놓인 향로를 보고는 말씀하셨다.
"죽은 중의 면전이 바로 '눈에 보이는대로 보리(菩提)'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 스님이 "눈에 보이는대로 보리는 아닙니다"라고 말하자 스님께서말씀하셨다.
"그런 도리는 아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사람마다 빠짐없이 갖춘 도리입니까?"
"여기는 8백 5십명(현사 문하의 대중)이 아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대 스스로 말해 보라. 왜 모르는지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모든 부처님의 경계입니까?"
"지옥, 축생이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반드시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대인입니까?"
"소인이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크고 작은 것도 모르다니."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공부가 철저하게 된 사람입니까?"
"그대의 아버지와 그대의 어머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본래 물건입니까?"
"그대는 진씨(陳氏)댁 아이가 아니더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저의 주인공입니까?"
"공(公)도 모르다니."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학인 스스로 누리는 경계[自受用]입니까?"
"오늘은 대중운력하는 날이 아니다."
"그럴 뿐입니까?"
"그대는 누리는 경계[受用]를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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