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태고록太古錄

[부록] 3. 석옥화상의 답서

쪽빛마루 2015. 7. 2. 07:24

3. 석옥화상의 답서

 

 답을 씁니다.
 이별한 뒤로 노병이 날로 더하여 문을 닫고 들어앉아 정양하며 구차히 날을 보내고 있던 중, 무자 10월 13일에 문득 정자사(淨慈寺)에서 전인(專人 : 어떤 일에 특별히 보내는 사람)이 장로의 편지를 가지고 왔기에 반가이 읽었습니다.
그리고 태고의 시절과 인연이 함께 익어, 여러 산의 큰스님네와 대신과 관리들이 왕에게 아뢰어 왕 명령으로 영녕선원의 주지가 되고, 개당하여 법을 설하여 최고의 가르침을 빛냈음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장로의 진실된 마음이 성인의 마음에 맞고, 그 행실이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니 어찌 우연이라 하겠습니까. 또 개당하던 날, 향을 준비했다가 이 변변찮은 늙은이를 위해 사른 줄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변변찮은 늙은이는 자리에서 물러나 한가하게 지내면서 미친 듯한 망념이 조금 쉬었을 뿐인데, 어찌 감히 남의 스승이 되리라고 망상인들 하였겠습니까.

 지금 장로가 그렇게 된 것이 어찌 많은 생(生)의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에 나가 사람을 위할 때에는, 반드시 본분의 일로써 어리석은 후학들을 격려해 이끌어 줄 것이요, 부디 일과 경계를 대하여 아첨의 유혹에 빠지지 마십시오. 대가(大家)의 풀속에서 그것을 굴린들 무엇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부디 노력하여 그렇게 되고 언제나 변하지 않으면, 임금의 은혜와 부처의 은혜를 한꺼번에 다 갚을 것이니, 내가 또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길은 비록 천만리로 멀지마는 눈앞에 본 듯합니다. 늙은 몸이 피곤하여 자세한 답을 쓰지 못합니다.

 

지정 8년 11월 7일, 하봉(霞峯)의 석옥은 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