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전생의 원(願)을 이어 / 변재 원정(辯才元淨)법사
변재 원정(辯才元淨)법사는 항주(杭州) 어잠(於潛) 사람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왼쪽 어깨살이 가사의 매듭같이 솟아올라 있었다가 81일 만에 없어지니 그의 아버지가 감탄하여 말했다.
"이 아이는 전생에 사문이었으니 그 원(願)을 빼앗지 말고 자라면 부처님을 모시게 하겠다."
법사가 세상을 떠난 그 해가 실로 81세였으니 아마도 이는 숙명인 것 같다. 출가한 후에는 법좌를 볼 때마다 감탄하며, 저기에 올라 설법을 해서 사람들을 제도하는 것이 자신의 원이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자운(慈雲 : 遵式)스님을 찾아가서 밤낮으로 열심히 정진하였다. 배움과 실천이 함께 향상하여 몇해 안 가서 자운스님의 상좌들과 나란히 앉게 되었는데, 자운스님이 죽고 난 뒤에는 다시 사명산(四明山)의 조소(祖韶)스님을 모셨다. 조소스님이 천태지관 (天台止觀)을 가르치다가 "한끼의 밥으로 일체에게 보시하며 모든 불보살에게 공양한 다음에야 먹을 수 있다" 하신 방편오연(方便五緣)에 나오는 유마거사의 말씀까지를 이야기하니, 원정스님은 그 말 끝에 깨닫고는 "오늘에야 색, 소리, 냄새, 맛이 본래 제일의제(第一義諦)를 갖추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사물을 대할 때 마음 속에 의심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당시 심숙재(沈叔才)가 항주(杭州)를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는 관음도량(觀音道場)은 경 공부와 참회로 불사를 하는 곳이니 선수행자들이 살 곳은 아니라고 생각하여 마침내 스님에게 교학하던 곳을 선도량으로 바꾸라고 명하였다. 스님이 그곳에 도착하자 오월(吳越) 사람들은 마치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기라도 한 것처럼 귀의하고 부모를 공양하듯 스님을 모셨다. 돈, 베, 비단 등의 보시가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어왔다. 그러다가 천축사(天竺寺)에 머문 지 14년 되던 해, 그 절의 부(富)를 탐내는 사람이 스님을 협박하여 쫓아내니, 스님은 기꺼이 떠나면서 그것을 마음에 품지 않았다. 이 일로 천축사 대중들이 사방으로 흩어지자 사건이 조정에 알려져 다음 해에 스님이 다시 옛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스님은 마지 못해 돌아오는 듯하였고, 대중들은 다시 크게 모였다. 스님과 세속을 벗어난 도반이었던 조청헌(趙淸獻 : 趙抃)은 이 일을 보고 찬(讚)하였다.
스님께서 천축사를 떠나니 산은 비고 귀신이 울었는데
천축사에 스님께서 돌아오니 도량에는 빛이 찬란하도다.
師去天竺山空鬼哭 天竺師歸道場光輝
스님은 그곳에 다시 2년을 머물다가 하루는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성인이었던 우리 조사 지자(智者)대사도 중생교화를 더 급하게 여겨 자기 수행에는 해가 되었기에 수행위로는 철륜왕(鐵輪王)*이 되어야 하는데도 오품위(五品位) *까지밖에 증득하지 못하셨는데, 하물며 범부야…" 하고는 그곳을 떠나서 종남산(終南山) 용정(龍井)에서 노년을 보냈다. 갈대와 대나무로 지붕을 덮고, 문 닫고 좌선하여 종일 아무소리가 없었다. 이는 나뭇잎이 떨어지고 뿌리가 자라는 겨울의 마른 나무와 같은 경지며, 바람이 자고 파도가 가라앉은 옛우물과도 같은 경지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스님을 '눌(訥 : 말더듬이)'이라고 불렀다.
스님은 계율을 엄격히 지켰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설법을 하였는데 한번은 이렇게 말하였다.
"귀신의 힘으로는 두렵게 할 수 없다. 낮에는 말을 해도 여기까지 오지 않는 수가 있고 밤에 사람들이 조용해야 들릴 정도이기 때문이다."
한번은 손가락을 태워 부처님께 공양을 했다. 그래서 오른손가락 2개와 왼손가락 3개로 겨우겨우 물건을 잡았는데 그 문도들 중에 따라하려는 자가 있으면 번번히 못하게 하면서, 동파(蘇東坡)라야 나처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하루는 누군가가 와서 북산(北山)에 스님과 같은 방법으로 수행하는 사람이 몇 있다고 하니 스님은 밀행(密行)하는 승려들의 경계는 내가 추측할 수 없다고 하였다.
「용정잡비(龍井雜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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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륜왕(鐵輪王) : 전륜성왕의 4위계인 금륜왕(金輪王), 은륜왕(銀輪王), 동륜왕(銅輪王), 철륜왕(鐵輪王) 중의 마지막.
* 오품위(五品位) : 천태종에게 원교(圓敎)의 수행 계위중 십신(十信)의 전단계. 오품 제자위(五品弟子位)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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