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나한사의 소남(小南)선사
여산(廬山) 나한사(羅漢寺)의 소남(小南 : 임제종 양기파)선사는 정주 장씨(汀州張氏)의 아들이며, 정주 남쪽 금천원(金泉院)은 그의 옛집이다. 담주(潭州) 도림사(道林寺)의 우(祐 : 元祐)선사를 찾아뵙고 인가를 얻었다. 우선사를 따라가 나한사에 살면서 당사(堂司)를 맡아 법좌를 함께하고 회계일을 보다가 우선사가 운거사(雲居寺)로 옮겨가자 그 뒤를 이어 주지가 되었는데 사방에 명성이 높아 많은 학인들이 귀의하였다. 그 당시 거사 장계(張戒)라는 이가 성심껏 참선을 하였는데 어느날 소남선사는 장계에게 물었다.
"어떤가?"
"모르겠습니다."
소남선사가 다시 계속해서 따져 물으니 장계는 갑자기 종지를 깨닫고 게송을 지어 답하였다.
하늘도 땅도 나는 모를레라
그 누가 동서남북을 말하는가
수미산을 베게삼아 바다 속에 잠이드니
돌 죽순에 돋아난 가지 정말 신통하구나.
天下戴兮地不知 誰言南北與東西
身眠大海須彌枕 石筍抽條也太奇
얼마 후 장계가 하직하자 소남스님은 그에게 게송 두 수를 지어 주었다.
그대가 여산을 찾아오자 여산이 그대에게 갔더니
누가 다시 나 여산을 떠나가는가
산문 밖을 나서거든 산마루 바람에게 물어보오
큰 도는 높고높아 본래 기댈것이 없다네.
汝到廬山山到汝 更誰別我廬山去
出門問取嶺頭風 大道騰騰無本據
하얀 옷에 검은 수건을 쓰고
일년동안 한가히 산사를 빌려 썼구나
산문을 나서거든 왔던 길을 말해보오
그 집은 누런 들판, 푸른 아지랑이 속에 있느니
頭戴烏巾著白襴 山房借汝一年閑
出門爲說來時路 家在黃陂翠靄閒
나한사 소남스님의 계보를 따져보면 황룡선사는 그의 조부뻘이나 그들의 이름자가 같고 도의 경지 또한 그에 버금갔으므로 총림에서 그를 소남(小南)이라 하고 황룡선사는 노남(老南)이라 높혔던 것이다. 그러나 나한사의 소남스님은 도를 전하는 데 뜻을 두어 7년간 법을 전하다 43세로 입적하였다. 비록 지닌 포부를 펴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이름은 당시에 빛났고, 또한 후세에까지 칭송되니 가히 운거(雲居元祐 : 羅漢小南의 은사)선사에게는 이런 제자가 있었다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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