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나호야록羅湖野錄

11. 황제와 법을 주고 받다 / 대각 회련(大覺懷璉)선사

쪽빛마루 2015. 8. 21. 13:07

11. 황제와 법을 주고 받다 / 대각 회련(大覺懷璉)선사

 

 대각(大覺懷璉 : 운문종)선사가 지난 날 늑담사(泐潭寺)에 살 때, 방안에서 좌선하노라니 황금 뱀이 바닥에서 불쑥 나왔다가 곧장 사라져 버렸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모두 좋은 징조라고 찬탄하였는데, 얼마 후 여산 원통사(圓通寺)로부터 황제의 조칙이 있어 동도(東都) 정인사(淨因寺)의 주지가 되었다.
 이에 앞서 인종(仁宗)황제가 「투자어록(投子語綠)」을 보다가, 한 스님이 투자스님에게 "무엇이 큰 길의 흰 소[露地白牛]입니까?"라고 묻자 투자스님은 연신 그를 꾸짖었다는 구절에서 깨닫고는 석전송(釋典頌) 14수를 지었는데 여기에는 그 첫수만을 기록한다.

 

만일 주인공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참으로 고요하여 태초의 허공과 합친다 하리
머리는 세 개 팔뚝이 여섯이라*
엄동설한 섣달에 봄바람이 훈훈하구나.

若問主人公  眞寂合太空

三頭倂六臂  臘月正春風

 

 그리고는 이를 회련선사에게 하사하니 회련스님이 게송으로 답하였다.

 

만일 주인공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창공처럼 맑고 맑은 것이라고 하리
우뢰가 고동칠 때면
온누리에 가득한 화창한 봄바람.

若問主人公  澄澄類碧空

雲雷時鼓動  天地盡和風

 

 황제에게 이경(二更 : 밤 9~11시)의 독서거리로 불경을 올리자 황제는 신하에게 명하여 용뇌수(龍惱樹)*로 만든 발우를 하사하였다. 대각선사는 임금의 은혜에 감사를 표한 후 발우를 받들고서, "우리 불법에서는 먹물 옷을 입고 질그릇이나 쇠그릇에 밥을 먹는데 이 바리때는 법답지 못하다" 하고 태워 버렸다. 중사(中使)가 돌아가 이 일을 아뢰자 황제는 몹시 기뻐하였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산으로 돌아갈 것을 바라는 마음에 송을 지어 올렸다.

 

도읍에서 여섯 해 조사의 기틀을 펼치고
대궐에서 황제를 뵈온 일도 두차례
청산에 가서 숨으면 무슨 기쁨이 있을까
광주리 가득히 황제의 글을 담아간다.

六載皇都唱祖機  兩曾金殿奉天威

靑山隱去欣何得  滿篋唯將御頌歸

 

 황제가 이에 답하였다.

 

불조는 밝고 밝아 맨 위의 기틀을 깨치신 분
기틀에 앞서서 알아차려야 비로소 위엄이 온전하리
청산과 반야는 꼭 같은 바탕인데
나의 게송 가지고 어디로 돌아가시오.

佛祖明明了上機  機前薦得始全威

靑山般若如如體  御頌收將甚處歸

 

 대각스님은 또다시 게송을 지어 황제의 은혜에 감사하였다.

 

사신은 대궐을 나와 잘 전하니
다시금 나를 이곳에 머물라 하네
청산도 이 못난 이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백발로 어찌 나라 일을 도우리까


임금의 깊은 은총 그지없으나
숲에 살던 생각이 눈 앞에 선선하오*
임금의 어진마음 하늘처럼 넓으시니
떠도는 저 구름 가는 대로 내버려두오.

中使宣傳出禁圍  再令臣住此禪扉

靑山未許藏千拙  白髮將何補萬機

 

雨露恩輝方湛湛  林泉情味苦依依

堯仁况是如天闊  應任孤雲自在飛

 

 치평(治平 : 1064~1067)연간에 산사로 돌아가겠다는 글을 올리자 영종(英宗)황제는 글[箚子]을 내렸다.

 

 "대각선사 회련(懷璉)은 선왕의 사랑을 받아 여러 차례 글을 하사받은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글을 올려 산사로 돌아가겠다고 청한 바 있으니 이제 그가 바라던대로 마음편히 쉬도록 해주고자 한다. 지나가는 도중에 아담하고 쓸만한 암자가 있으면 그의 마음에 따라 어느 곳이든지 주지가 되도록 하고, 시방(十方)의 총림에서 핍박하거나 억지로 청하지 못하도록 하라."

 

 대각선사는 이 글을 간직하고 동쪽으로 돌아갔으나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한림학사 소식(蘇軾)이 항주자사로 있을 때 스님에게 서신으로 물었다.

 

 "신규각(宸奎閣) 비문을 지어달라는 말씀을 듣고 지어놓긴 했습니다만 몸은 늙고 학문이 없는 사람이라 이 글을 과연 비석에 새겨도 좋을지 모르겟습니다. 떠도는 말에, 스님이 서울에서 돌아 오던 날 영종황제께서 손수 쓰신 조서(詔書)를 하사하면서, 스님 마음에 드는 곳이면 어디든지 주지를 하라고 하셨다는데 과연 그러한 사실이 있습니까? 있었다면 그 전문을 베껴 보내 주십시오. 비문에 이 사실을 넣고자 합니다."

 

 대각선사는 끝내 이 사실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았으나 입적한 후 그의 대광주리 속에서 이 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렇게 명예로운 일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권력과 총애만을 믿는 이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만들 만하다. 인종(仁宗)황제가 일을 하는 여가에 대각스님과 게송을 주고 받으면서 종지를 밝힌 일은 정사에도 도움이 되었다. 그러므로 신규각(宸奎閣) 비문에서 "부처의 심법을 얻은 사람은 고금에 한 사람뿐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진실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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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두육비(三頭六臂) : 마군을 항복받는 일을 맡은 부동명왕(不動明王)이나 애염명왕(愛染明王)의 기괴하고도 성난 듯한 모습.
*용뇌수(龍惱樹) : 동인도에 사는 나무. 용뇌수 줄기에서 나오는 무색투명한 결정체로 향이나 그릇 등의 물건을 만든다.

* 원문의 고(苦)는 약(若)의 잘못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