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법의 알을 품어준 은혜 / 표자(表自)선사
서촉(西蜀) 표자(表自 : 임제종 양기파)선사가 오조사(五祖寺)의 법연(法演)스님을 찾아뵈니 당시 원오스님이 오조선사와 함께 주지하며 납자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오조스님은 원오스님에게 표자선사를 직접 가르치라 하니 원오스님이 표자스님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오랫동안 스승의 법석에 함께 있었으니 물이 깊은지 얕은지를 더이상 염탐할 필요가 있겠는가? 미진한 점이 있다면 그것만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 좋겠다."
표자스님이 마침내 덕산선사의 소참화두*를 들어 말하자, 원오스님은 큰소리로 껄껄대며 웃었다.
"내, 그대의 스승이 되기에는 퍽이나 부족할 줄 알았는데, 그대의 말을 듣고 보니 되고도 남겠다." 원오스님은 다시 그 화두를 거론케 하며 '오늘 밤에는 답하지 않겠다.' 하는 대목에서 손으로 표자스님의 입을 급히 막으며, "그만! 그렇게 참구하여 뚫어버리면 곧 덕산스님을 뵙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표자선사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밖으로 달려나가 방석을 집어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날더러 오직 한 구절만 참구하라니!"
이에 여러 도반들이 표자스님을 격려하며 원오스님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하였는데 얼마 후 느낀 바 있었다.
원오스님은 총원(總院)의 감독으로 옮겨 가게 되자 표자스님을 좌원(座元)으로 천거하면서 남모르게 오조스님에게 말하였다.
"그는 아직 한 토막을 얻었을 뿐, 큰 법은 밝히지 못했으나 더 단련시키면 반드시 큰 그릇이 될 것입니다."
얼마 후 표자스님은 오조선사의 선언에 따라 입승(立僧)을 맡았다. 사실 그것은 그의 먼 장래를 격려하기 위함이었는데 표자스님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큰 기대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오조 선사가 법당에 올라 표자스님을 보면서, "망상 피우지 말라!" 하고는 곧바로 법좌에서 내려왔다. 표자스님은 몹시 불쾌한 마음으로 그곳을 떠나 낭야산 계(啓)선사의 절을 찾아갓다. 오래 뒤에 원오선사가 찾아가 달래니, 한마디에 크게 깨치고는 함께 오조스님에게 돌아오자 바로 입승(立僧)으로 임명하였다.
그 후 원오스님은 촉으로 돌아가 소각사(昭覺寺) 주지가 되어 세상에 나왔고, 오조스님이 입적하자 군수는 표자스님에게 오조스님의 법좌를 잇게 하였다. 그리하여 향을 사르고 개당설법을 하였는데 내용은 대강 다음과 같다.
"만일 지금 성도(成都) 소각사에 계시는 근(克勤)선사가 아니었다면 그때 내가 어떻게 도의 진수를 얻을 수 있었겠는가. 어째서인가? 그가 없었더라면 도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고기가 물 때문에 살고 자식이 어머니 때문에 존재하는 것과도 같다."
이로 본다면 원오선사는 표자선사에게 있어서 알을 품어준 은혜가 있었다. 표자선사는 속에 있는 분함을 씻고자 모든 대중 앞에서 자기의 불만을 토로햇으니, 이는 황벽선사가 백장선사에게 응수한 일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아! 표자선사에게 법제자가 없었던 데에는 참으로 그만한 까닭이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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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산스님이 하루 밤에는 소참법문을 하였다. "오늘 밤에는 질문에 답하지 않겠다. 누구든 질문하는 자가 있으면 몽둥이 30대를 때리겠다." 한 스님이 나와서 절을 하자 스님이 때렸다. 그 스님이 말하였다. "제가 말로 묻지 않았는데 어째서 때리십니까?" "그대는 어디 사람인가?" "신라 사람입니다." "뱃전을 밟기 전에 30대를 때렸어야 하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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