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나호야록羅湖野錄

28. 능엄경 구절에서 깨치다 / 인천(仁遷)선사

쪽빛마루 2015. 8. 21. 13:16

28. 능엄경 구절에서 깨치다 / 인천(仁遷)선사

 

 담주(潭州) 동명사(東明寺) 천(仁遷)선사는 진여 철(眞如慕喆)선사의 법제자로 천성이 담박하고 높은 지견을 지닌 분이다. 노년에 위산(潙山) 진여암(眞如庵)에 은거하니, 도에 뜻을 둔 많은 사람들이 그 곳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다. 하루는 시자스님이 능엄경을 보다가 '내가 손가락을 누르면 해인(海印)이 빛을 내지만' 하는 대목에서 그곳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여기서 부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석가모니불이 몽둥이 서른대쯤 맞아야겠구나."
 "무엇 때문입니까?"
 "손가락은 눌러서 무엇 하려고......."
 "'너희들은 잠깐만 마음을 움직여도 티끌번뇌가 먼저 일어나느니라' 하셨는데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도 해인이 빛을 내는 것이다."
 그 스님은 그 자리에서 기뻐하며, "하고많은 세월을 허송하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누릴 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충도자(忠道者)가 그곳의 주지로 있을 때만 해도 천선사는 아무 탈없이 서로 기쁘게 지냈으나 얼마 되지 않은 오늘날 총림에서 그의 이름을 거의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이와 같은 것을 보면 그의 고상한 풍모를 상상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