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쌍림 숲의 상승인 / 광혜 원련(廣慧元璉)선사
여양(汝陽) 광혜 연(廣慧元璉 : 임제종)선사는 천주(泉州) 진강(晋江) 사람이며 속성은 진씨(陳氏)다. 15세에 보구원(報劬院)에서 승적을 얻고 초경사(招慶寺) 진각(眞覺)선사에게 귀의하였는데, 날마다 밥짓고 불을 때면서도 틈이 나면 경전을 외우니 진각선사가 이를 보고 물었다.
“너는 무슨 경을 외우느냐?”
“유마경입니다.”
“경은 여기 있는데 유마는 어디에 있느냐?”
연선사는 망연자실 대답할 바를 몰랐다. 이에 눈물을 흘리면서, “대장부가 질문을 받고도 대답할 줄을 모르다니 어찌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하였다. 그리고는 민현(閩縣)의 큰 스님을 50여명 가량 찾아뵈었으나 종지를 깨닫지 못하자 하남 수산사(首山寺)의 념(省念)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학인이 보배산에 갔다가 빈 손으로 돌아왔을 때는 어떻습니까?”
“집집마다 문 앞에 횃불이 있다.”
연선사는 드디어 활짝 깨치고 그곳 수좌로 발탁되었다.
경덕(景德) 갑진년(1004)에는 광혜사(廣慧寺)에서 설법을 하였다. 당시 참정(參政) 왕서(王署)가 급사(給事) 일을 보면서 여양(汝陽) 태수로 나와 있을 때였다. 연선사는 그 고을에 들어갔다가 마침 그가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고서 물었다.
“무엇이 군주(郡主)의 한자루 붓입니까?”
“찾아 오는 사람을 판결하는 것입니다.”
“갑자기 아무도 오지 않을 때는 어찌하시렵니까?”
왕공은 붓을 던져버리는 시늉을 하였다.
또한 랑중(郞中) 허식(許式)이 서촉지방의 조운사(漕運使)로 가는 길에 연선사를 찾아 왔는데, 때마침 부처님 앞에서 접견하게 되자 허식이 물었다.
“부처님께 먼저 절을 할까요, 아니면 스님에게 할까요?”
“두꺼비가 뱀을 삼켰도다.”
“그렇다면 아무 데도 절하지 않고 가겠습니다.
“그대는 말에 걸려들었소.”
“스님이 한쪽 눈은 갖추었다고 인정하겠습니다.”
연선사가 소매자락을 흔들어 보이니, 허식이 “오늘에야 스님의 진가를 보았습니다,” 하고는 절을 하였다
정진공(丁晋公)은 시와 함께 황제에게 하사받은 붉은 비단 보자기에 용자차(龍字茶)를 싸서 연선사에게 보냈다.
용차를 불에 말려 단단히 봉한 후에
붉은 비단 고이 싸니 두 눈이 새로와라
이처럼 좋은 물건 누구에게 걸맞을까
쌍림 숲 아래 상승인(上乘人)이지.
密緘龍焙火前春 翠字紅鎖慰眼新
品字至高誰合得 雙林樹下上乘人
선사는 명망높은 공경대부들에게 이처럼 지극한 존경을 받았다.
경우(景祐) 3년 병자년(1036) 정월 26일에 네개의 원상(圓相)을 그려놓고 그 안에다 각각 호랑이 · 개 · 쥐 · 소라고 써서 방장실문에 걸어놓았다. 마침내 9월 26일이 되자 세상을 떠나셨다.
경덕(景德 : 1004~1007) 연간에 고명한 사대부에게 흠모와 예찬을 받은 큰스님은 광혜선사 한 사람뿐이다. 그의 면모를 더듬어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났으며, 더구나 향년 86세로서 돌아갈 날까지 미리 알렸다. 이에 그의 행적을 대략 기록하여 「승보전(僧寶傳)」에서 빠진 부분을 보완하는 바이니 그의 아름다운 덕을 손상시키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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