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나호야록羅湖野錄

9. 강주를 그만두고 수좌가 되다 / 화장 안민(華藏安民)선사

쪽빛마루 2015. 8. 21. 13:30

9. 강주를 그만두고 수좌가 되다 / 화장 안민(華藏安民)선사

 

 금릉(金陵) 화장사(華藏寺)의 민(安民)선사가 처음 성도(成都)에서 「 능엄경 」을 강의하였을 때, 그에게 공부한 자가 유달리 많았다. 당시 원오(圓悟)선사가 소각사(昭覺寺) 주지로 있었는데 민선사가 그의 벗 승(奉勝)선사와 함께 원오선사를 찾아가 교외별전의 뜻을 묻고 있었다. 마침 한 스님이「 십현담(十玄談) 」 에 대하여 자세한 법문을 청하면서, "그대에게 묻노니, '심인(心印)'이란 어떤 얼굴인가?"라는 구절을 들어 말하자 원오선사가 갑자기 "환한 모습이 드러났구나" 하고 고함쳤다. 이 소리를 듣고 민선사는 환해져서 자기가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원오스님은 그가 생각으로 이해했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서 드디어 본분의 수단[本色鉗鎚]을 내보이니 민선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리고는 며칠 후 다시 자기의 견해를 말하였다.

 "백추를 치고 불자를 드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묘하고 밝은 참마음이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네가 원래부터 이 속에서 살림살이를 꾸려왔구나."
 "할(喝)을 하고 선상을 치는 것은 들음을 돌이켜 자성을 듣게하고, 그 자성이 무상도(無上道)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교학(敎學)에 의하면 오묘한 성품은 원만하고 밝아 모든 이름과 모습을 떠났다'고 하니 원래 세계라고는 없는데 중생이란 무엇인가?"
 민선사는 두려운 마음에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원오선사가 촉에서 나와 호북(湖北) 협산사에 주지로 있자, 민선사 또한 강의를 그만두고 그곳을 찾아갔다. 만참(晩參)때 원오선사가 들려주었다.
 "한 스님이 암두(巖頭)선사에게 '옛 돛대를 걸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라고 하자 암두선사는 '후원에서 당나귀가 풀을 씹고 있다' 라고 하였다."

 민선사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원오선사에게 조금전의 화두를 따져 물어나가다가 "뜰앞에 잣나무..."라고 대답하는 말에 갑자기 크게 깨쳤다. 이에 원오선사는 그를 선방 제일수좌로 명하고 법상에 올라 게송으로 찬하였다.

 

사분율도 그만두고 능엄경도 내던지고
구름가를 살피며 철저히 참구했네
양좌주가 마조선사와 친했던 일을 배우지 말고*
덕산스님이 용담선사를 찾아간 뜻을 알아야 하리*

7년 동안 왕래하며 소각사에 노니다가
만리 길을 날아서 벽암에 올라섰네
이제 제일 수좌를 번거롭게 하리니
많은 꽃밭 속에 우담화가 피어난 듯 하여라.

 

休淹四分罷楞嚴  按下雲頭徹底參

莫學亮公親馬祖  須知德嶠訪龍潭

 

七年往返遊昭覺  萬里翺翔上碧巖

今日煩充第一座  百花叢裏現優曇

 

 승(勝)선사 또한 원오선사의 법제자가 되어 사주(泗州) 보조사(普照寺)의 주지를 지냈으며 그의 법호는 법제선사(法濟禪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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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좌주(亮座主)가 마조스님을 찾아뵙자 마조스님이 물었다. "좌주는 경론을 훌륭히 강의한다고 들었는데 그렇소?" "부끄럽습니다." "무얼 가지고 강의하는가?" "마음으로 강의합니다." "마음[心]은 재주부리는 광대같고 의식[意]은 광대놀이에 장단을 맞추는 자와 같은데, 그것으로 어떻게 경을 알 수 있겠는가?" 양좌주는 언성을 높이면서 "마음이 강의하지 못한다면 허공이 강의합니까?" 하고 물었다. 마조스님은 "허공은 강의를 할 수 있지" 하였다. 좌주는 수긍하지 않고 그냥 나가 계단을 내려가는데 마조스님이 "좌주!" 하고 불렀다. 양좌주가 머리를 돌리는 순간 활연대오하고는 절을 올리자 마조스님은 "이 둔한 중아! 절을 해서 무얼 하느냐?" 하였다. 양좌주는 절에 돌아가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나의 논강은 남이 따를 수 없다 하였더니, 오늘 마조대사에게 한 번 질문을 받고서야 평생 해왔던 공부가 얼음 녹듯 하였다." 그리고는 서산으로 들어가 다시는 종적이 없었다.

* 금강경에 밝았던 덕산(德山宣鑒)선사가 하루는 용담(龍潭崇信)선사의 방에 밤늦게 들어가니 용담선사가 그냥 돌아가라고 하였다. 인사를 하고 나오려니 밖이 너무 어두워 돌아서서 "스님! 밖이 너무 어둡습니다" 했더니 용담선사가 지촉(紙燭)에 불을켜서 주었다. 덕산선사가 마악 받아 가지려는데 용담선사가 확 불어 끄니 덕산스님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외쳤다. "내가 지금부터는 천하 노스님들의 혀끝을 의심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