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용고기와 돼지고기 / 영원(靈源)선사
영원(靈源)선사가 황룡사 소묵당(昭默堂)에 있을 무렵, 동호거사(東湖居士) 서사천(徐師川)과 함께 깊은 밤까지 이야기 하던 중 “진술고(陳述古)가 소동파와 마주앉아 선에 관해 했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소동파가 진술고의 말은 용고기를 먹는 것과 같다 하고, 자기 말은 마치 돼지고기를 먹는 것과 같아서 실로 맛있으면서도 참으로 배부르다고 하였다”는 데에 이르자 영원선사가 말하였다.
“이는 소동파가 젊었을 때 말을 많이 하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구렁으로 떨어진 것이므로 마땅히 밝혀야 한다.”
그리고는 게송 두 수를 지었다.
소동파가 용고기 먹는 일이라고 웃고 말하지만
혀바닥의 군침을 어찌하랴
군침 속에 참다운 맛이 있음을 안다면
용고기도 진미가 되지 못함을 말하게 되리.
東坡笑說喫龍肉 舌底那知已嚥津
能省嚥津眞有味 會言龍肉不爲珍
용고기가 돼지고기임을 어떻게 알리
크고 작은 모든 말에 신묘가 깃들어 있는데
애석하다. 당시의 동파거사여
큰 기틀로 육진 티끌을 벗어나지 못했구려.
何知龍肉卽猪肉 細語麤言盡入神
惜彼當年老居士 大機曾未脫根塵
이에 서사천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소동파가 이 말을 듣지 못한 것이 애석합니다.”
아! 소동파의 시에, “나의 전신은 노행자[前身自是盧行者]”라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불조(佛祖)에서 왔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학문을 진술고와 비교해 보면 앞의 말은 농담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영원선사는 그를 뒤따라 말하려는 자의 입을 막기 위하여 게송으로 이를 밝혔으니 그에게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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