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전등록을 읽다가 깊은 의심을 내다 / 오순(吳恂)
흥원부(興元府) 오순(吳恂)의 자는 덕부(德夫)이다. 원풍(元豊 : 1078)원년에 예장(豫章) 법조(法曺)에 부임하였는데 당시 그 고을 태수(太守)인 관문 왕소(觀文王韶)가 회당(晦堂)선사를 성 안으로 맞이하여 대범원(大梵院)에 숙소를 정하고 심법의 요결을 물었는데 오순도 함께 찾아뵈니 회당선사가 오순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평소 배워 익히고 들어왔던 것들은 묻지 않겠습니다.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의 일을 한마디 해 보시오.”
오순은 말이 막혀 대답하지 못하였다. 드디어 행주좌와에 이 화두를 들다가 홀연히 저절로 그런 것이 있는 줄은 알게 되었지만 계기가 틔워지지 않았다. 그런데 「전등록」을 보다가 “등은봉(鄧隱峰)이 꺼꾸로 서서 죽었는데 그의 옷은 몸에서 흘러 내리지 않았다”는 대목에서 깊이 의심을 했다. 이때부터 큰스님들에게 두루 물어보니, 신통묘용이라고도 하고, 때로는 반야의 힘이라고도 하였지만 끝내 의심은 풀리지 않았다. 다시 회당선사에게 달려가 여쭈니 회당선사는 웃으면서 말하였다.
“그대는 지금 바로 섰는가, 거꾸로 섰는가?”
“바로 섰습니다.”
“의심을 하는가?”
“의심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의심하지 않는데 그는 왜 의심하는가?”
이 말에 오순은 크게 깨치고 게송 두 수를 지어 회당스님에게 올렸다.
가운데엔 문이 없고 사방엔 옆이 없는데
학인은 부질없이 그림자 잡기에 바쁘네
옛동산에 떠오르는 천고의 보배 달은
밤이 되면 변함없이 숨는 적이 없구나.
中無門戶四無旁 學者徒勞捉影忙
珍重故園千古月 夜來依舊不曾藏
노봉거사는 옛 문인이라
스승의 영정얻어 가까이 모시구려
대지를 쓸어 잡아 하나의 눈 마련하고
높이 날아 올라보니 모든게 새로워라.
廬峰居士舊門人 邈得師眞的的親
大地撮來成箇眼 翻騰別是一般新
회당선사도 게를 지어 그에게 보냈다.
바닷가 가파른 산 발길 끊겼으니
굳게 닫힌 관문을 밟았을 때 소식 이미 통했네
여기에 원래부터 태평성대의 터전이 있으니
동서니 남북이니를 논하지 말게.
海門山嶮絶行蹤 踏斷牢關信已通
自有太平基業在 不論南北與西東
아! 오순은 고을의 아전으로 있으면서도 공무 보는 여가에 스스로 큰스님을 찾아 의심나는 것을 질문하니, 오로지 관리생활만 하며 큰 일을 밀쳐두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당시 총림에서도 모두 그의 풍채를 흠모한 것으로 보아 과연 뛰어난 선비라 하겠다. 「임간록(林間錄)」에서‘덕부(德夫)’를 ‘돈부(敦夫)’라 한 것은 잘못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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