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림성사
上
1. 황룡스님을 참방하다 / 정대경(程大卿)
정대경(程大卿)이 혜남(黃龍慧南 : 1001∼1069)선사를 찾아뵙자, 혜남스님은 그에게 ‘태어난 인연[生緣 : 黃龍三關 중 하나]’ 화두를 참구하도록 하였는데, 법창(法昌倚遇 : 1005∼1081)스님이 어느 날 혜남스님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그 자리에서 번뇌 망상을 떨쳐주지 않소?”
“언제 사족이라도 그렸단 말인가? 그 스스로가 단박에 깨닫지 못했을 뿐이오.”
“스님은 그를 어떻게 가르치시렵니까?”
“생강을 깨물고 식초를 빨게 하겠소.”
“속된 중이 또 저러는구나.”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이 말에 법창스님이 불자(拂子)를 뽑아들고 황룡스님을 치자, 황룡스님이 “이 늙은이가 이처럼 인정머리가 없을 수 있나!”라고 하니, 법창 스님은 그만두었다.
2. 소동파의 옥대를 벗기다 / 불인 요원(佛印了元)선사
불인(佛印了元 : 1032~1098)스님이 어느 날 방에 들어가려는데 생각잖게 소동파(蘇東坡 : 1036~1101)가 오자, 그에게 말하였다.
"이곳에는 앉을 자리가 없어 거사를 모실 수 없습니다."
"잠시 스님의 육신[四大]을 자리로 빌어 앉아 봅시다."
"이 산승에게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거사께서 만일 대답을 하면 앉도록 하겠지만 대답을 못하신다면 옥대(玉帶)를 풀어 주시오."
이 말에 소동파가 선뜻 말씀해 보라 하니 스님이 말하였다.
"거사는 조금 전에 이 산승의 육신을 빌어 앉겠다고 하셨는데, 이 산승의 육신은 본디 빈[空] 것이며 오음(五陰 : 五蘊)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사는 어디에 앉겠소?"
이 말에 소동파는 생각해 보았지만 대답하지 못하고, 마침내 옥대를 풀어 놓고 껄껄대며 밖으로 나가자 불인스님은 행각할 때 입던 누더기를 그에게 선물하였다. 이에 소동파는 세 수의 게를 읊었다.
백천 개의 등불이 하나의 등불이라
항하의 모래알이 모두가 묘한 법왕이기에
나, 소동파는 감히 이를 아끼지 않고
그대 육신을 빌어서 자리 삼으려 하였다오.
百千燈作一燈光 盡是恒沙妙法王
是故東坡不敢惜 借君四大作禪牀
병든 몸에 옥대를 두르기란 벅찬 일이라
노둔한 근기가 그대의 활촉같은 기봉에 떨어졌노라
기생집 앞에서 걸식할 뻔하였는데
행각선승 옛 누더기와 바꾸었다네
病骨難堪玉帶圍 鈍根仍落箭鋒機
會當乞食歌姬院 換得雲山舊衲衣
이 옥대 숱한 사람 여관[旅閣]처럼 거쳐오다가
이 내 몸에 전해온 지도 아득하여라
비단 도포 위에 서로 어울리더니
거짓 미치광이 노스님에게 빌려 주노라.
此帶閱人如傳舍 流傳到此赤悠哉
錦袍錯落渾相稱 乞與徉狂老萬回
이에 대하여 불인스님은 게송 두 수를 지어 화답하였다.
석상(石霜 : 807~888)스님, 배휴(裴休 : 796~870)의 홀(笏)을 빼앗아
3백년간 많은 입에 그 소문 자자했지만
길이 밝은 달과 티없이 함께 할
소동파가 끌러 놓은 옥대만이야 하겠는가
石霜尊得裴休笏 三百年來衆口誇
長和明月共無瑕 爭似蘇公留玉帶
형산 땅 변씨[卞和]는 세 임금에게 옥을 바쳤고*
조나라 인상여는 온갖 죽음 무릅쓰고 되찾아왔네*
귀중한 보배란 오로지 천자만이 쓰는 것인데
어이하여 이 소봉래산(小蓬萊山 : 金山)에 있는 것일까
荊山卞氏三朝獻 趙國相如萬死回
至寶只應天子用 因何留在小蓬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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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楚)나라에 변화(卞和)라는 사람이 커다란 옥석을 하나 갖고 있다가 왕에게 바쳤다. 그 옥석은 겉은 거치른 돌덩이 같았다. 왕이 보고는 화가나서 부하를 시켜서 그의 오른쪽 다리를 잘랐다.
왕이 바뀌자 변화는 다시 가서 진상했는데 그 왕도 역시 속았다고 화가나서 이번에는 그의 왼쪽 다리를 잘랐다. 그리고는 다시 왕이 바뀌어 3대 왕이 등극했다. 그는 궁궐앞에 가서 사흘밤 사흘낮을 그치지 않고 통곡했다. 왕이 불러다 놓고 까닭을 물어 그가 내막을 이야기 하니 보석 감정가를 시켜서 옥석을 잘라 보게 하였다. 과연 큰 옥이 그속에서 나오자 왕은 그에게 상으로 금은보화를 가득 내렸다.
* 인상여(藺相如) : 조(趙)나라에 중국 최고의 보물구슬이 있었다. 조나라 보다 강한 진나라의 소왕(昭王)은 구슬을 욕심내어 자기 나라의 성 15개와 그 구슬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 제안이 결코 지켜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조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은 크게 당황했다. 그때 낮은 지위의 인상여(藺相如)가 자진해서 그 약속을 이행시키고 오겠다며 진나라 사신으로 떠났다. 그러나 소왕이 약속을 어기자 인상여가 목숨을 걸고 약속지킬 것을 요구하자 소왕이 결국 굴복하고 15개 성과 구슬을 바꾸었다는 얘기다.
3. 양차공과 한위공에게 답하다 / 부용 도해(芙蓉道楷)선사
제형(提刑) 양차공(楊傑)이 어느 날 부용 도해(芙蓉道楷 : 1043~1118)선사를 찾아와 물었다.
"제가 스님과 헤어진 지 몇해입니까?"
"7년 되었소."
"이 7년 동안 참선을 하셨습니까, 아니면 도를 배우셨습니까?"
"북도 치지 않고 피리도 불지 않았소."
"그렇다면 괜히 산수에서 노닐었으니 아무것도 이룬 게 없겠군요?"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잘도 아는군!"
이 말에 양걸은 껄껄 웃었다.
한위국공(韓魏國公 : 韓琦)이 여름결제 때에 방문하자 도해스님은 산문 밖까지 나와 맞이하니, 그가 말하였다.
"결제 중에는 나오지 못하는데 무슨 까닭에 파계를 하셨소?"
"공적으로 말한다면 한 치의 바늘도 용납될 수 없지만, 사사로이는 수레도 통과합니다."
이 말에 한기는 크게 기뻐하였다.
4. 대우산에 살 때 / 진정 극문(眞淨克文)선사
진정(眞淨克文 : 1025~1102)선사가 균주(筠州) 대우산(大愚山)에 있을 때였다. 태수(太守) 전익(錢弋)이 그곳을 찾아가 보고서 갑자기 선승이 많아진 것을 이상하게 여겼는데, 사실은 대중들이 스님의 도덕 때문에 모여든 것이었다. 그래서 전익은 방장실로 들어가 보았으나 남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이튿날 대중공양[齋]을 열도록 명하여 스님이 앉으려는 찰나에 병풍 뒤에서 갑자기 개 한 마리가 뛰어나오게 하자, 스님은 몸을 움찔하며 개를 피하였다. 이에 전익이 비웃으며 말하였다.
"대선지식이란 본래 용도 항복시키고 호랑이도 굴복시킬 수 있다 하는데 어찌하여 개 한 마리를 두려워합니까?"
그러자 스님이 맞받았다.
"바위 위에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는 굴복시키기 쉽지만, 집 지키는 용을 항복시키기는 어렵소."
전익이 매우 기뻐하여 스님을 성수사(聖壽寺)로 모셔 와 도를 물었다.
5. 편지를 전하다 / 승천 전종(承天傳宗)스님
승천사(承天寺)의 전종(傳宗)스님이 행각할 때였다. 천주(泉州) 서은(棲隱)스님을 위하여 부마(駙馬) 이도위(李遵勗 都尉 : ?~1038)에게 편지를 전하고자 경사(京師)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가니, 그가 스님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서울까지 왔소?"
"절 일로 편지를 가져왔을 뿐이오."
"방금 내가 물은 것이 후회스럽소."
"도위께서는 항상 편지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이도위가 악! 하고 할을 한번 하자 스님이 말하였다.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또다시 잘못을 저지르면 용서할 수 없소."
"30년 후에 이를 거론할 사람이 꼭 있을 것이오."
이 말에 이도위는 큰소리로 웃었다.
6. 원두 소임을 맡아서 / 흥양 청부(興陽淸剖)선사
흥양 청부(興陽淸剖)선사가 처음 대양(大陽警玄 : 942~1027)스님 회하에서 원두(園頭 : 채소밭 관리를 맡은 스님)가 되어 외씨를 심고 있는데 대양스님이 물었다.
"참외가 언제쯤 익을꼬?"
"지금 다 익었습니다."
"단 것을 골라 따오너라."
"따오면 누구와 드시겠습니까?"
"참외밭에 들어가지 않는 자와 먹겠다."
"참외밭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도 참외를 먹을 수 있습니까?"
"너도 그를 아느냐?"
"모르지만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양스님은 웃으면서 참외밭을 떠났다.
청부스님이 병으로 앓아 눕자 대양스님이 문병을 와서 말했다.
"이 몸이란 허깨비나 물거품 같은 것이지만 허깨비나 물거품 속에서 일을 마쳐야 한다. 만일 허깨비나 물거품 같은 것 마저 없다면 생사대사를 끝낼 길이 없다. 만일 생사대사를 끝내려고 하거든 이 허깨비나 물거품을 알아 차려야 한다.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도 아직은 이곳 일입니다."
"그렇다면 저곳은 어떠한가?"
"온 누리에 태양이 찬란하여도 바다 밑엔 꽃이 피지 않습니다."
대양스님이 웃으면서, 그에게 정신이 또렷또렷하냐고 물으니 청부스님은 할을 한번 하고 나서 말하였다.
"내가 모든 것을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후 청부스님은 끝내 일어나지 못하였다. 대양스님은 마침내 그의 의발과 게송을 부산 법원(浮山法遠 : 997~1067)스님에게 전하였고, 부산 법원스님은 투자 의청(投子義靑 : 1032~1082)스님에게 전하여 조동종(曹洞宗) 일파를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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