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불성 법태(佛性法泰)스님의 념고(拈古)
불성 태(佛性法泰)스님은 용아(龍牙居遁 : 835~923)스님이 취미(翠微無學)스님과 임제(臨濟義玄)스님에게 물었던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공안을 들어 송하였다.
자경(子卿)이 선우(흉노의 우두머리)에게 허리 굽히지 않고
끝까지 한나라의 절개를 지켰네
날씨가 추운 뒤에야 소나무의 절개를 알고
어려운 일을 겪어야 바야흐로 대장부를 알아볼 수 있는 법.
子卿不下單于拜 始末常遵漢帝儀
雪後始知松栢操 事難方見丈夫兒
그의 말은 간절하고도 분명하다 할 만하다. 내 지난날 옥궤산(玉几山)에 있을 무렵 불조(佛照)스님께서 이 송을 들어 말할 때에는 으레 두번 세번 칭찬하면서 "이것이야말로 고칙(古則)을 송하는 격식이다"고 하신 말씀을 들었다. 뒤에 그의 어록을 보니 '노파가 조주스님의 죽순을 훔치다'는 화두에 붙인 송도 있는데 이것을 좋아한다.
앵두 복숭아 갓 익고 울타리에 죽순 돋을때
숲 속에서 두 도인 서로 만나서
웃음을 참지 못하고 법령을 시행하니
단 맛 좋아하다 단맛에 빠졌네.
櫻桃初熟筍穿籬 林下相逢老古錐
忍俊不禁行正令 得便宜是落便宜
63. 개선 도겸(開善道謙)선사의 '송고(頌古)'
개선사(開善寺) 도겸(道謙)스님은 '마음은 부처가 아니며 지혜는 도가 아니다[心不是佛 智不是道]'는 공안을 들어 송하였다.
태평시절 해마다 풍년이라
나그네 봇짐엔 양식 걱정 없고 집마다 문단속 않네
큰 길에 사람 없고 밤에는 달빛 없는데
노래하며 돌아오니 삼경이나 되었을까.
太平時節歲豊登 旅不齎粮戶不扃
官路無人夜無月 唱歌歸去恰三更
묘희스님이 이 송을 가장 좋아하였다. 금산사의 기도자(奇道者 : 道奇師)는 별봉 보인(別峰寶印 : 1109~1190)스님의 법제자인데 그 또한 이 공안을 들어 송을 지은 바 있다.
기나긴 봄볕에 강산경개 아름답고
훈훈한 바람결에 꽃과 풀이 향기롭다
진흙땅 풀리자 제비는 날고
모래 사장 따뜻하니 원앙새가 꾸벅꾸벅.
遲日江山麗 春風華艸香
泥融飛燕子 沙暖睉鴛鴦
이 송 또한 쉽사리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그 당시에는 모두 스승의 경지를 뛰어넘은 작품이라 하였다.
64. 한림학사 범치령과의 만남 / 원통 도민(圓通道旻)스님
원통사(圓通寺)의 도민(道旻 : 1047~1114)스님은 흥화(興化) 선유(仙遊) 사람이며 늑담사(泐潭寺)의 응건(應乾)스님을 친견하였다. 좌승상(左丞相) 범치령(范致靈)이 처음 한림학사[內翰]로 있다가 예장(豫章)태수로 나가는 길에 후계(侯溪)를 지나게 되어 스님을 만났다. 이야기를 하다가 범공이 탄식하며 "이 늙으막에 벼슬길에 있자 하니, 생사대사를 알기에는 점점 멀어만 간다"라고 하자, 도민스님은 대뜸"내한(內翰)!"하고 불렀다. 범공이 "예" 하고 대답하자 스님이 말하였다.
"멀어진 것도 아니군요."
"참 좋습니다. 더 가르쳐 주십시오."
"이곳에서 홍도(洪都)까지는 나흘 길입니다."
내한이 생각에 잠기자, 도민스님이 말하였다.
"보려거든 즉시 보아야지 생각하려 하면 어긋납니다."
내한은 몹시 기뻐하였고 이로부터 깨달아 들어가게 되었다.
65. 추밀원 정사 오거후(吳居厚)
추밀원(樞密院) 정사(政事) 오거후(吳居厚)는 왕명을 받들어 종릉(鍾陵)으로 돌아가는 길에 도민(道旻)스님을 만나 말하였다.
"내 지난 날 성시(省試)를 보러 원통사 조주관(趙州關)을 지나면서 전임 주지 거눌(居訥)스님에게, '관문을 꿰뚫고 나가는 일은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었더니 거눌스님은 '벼슬이나 하러 가라'고 하였는데, 벌써 나도 모르는 사이에 50여 년이나 되었습니다."
도민스님이 말하였다.
"관문을 꿰뚫고 나가는 일은 밝혔습니까?"
"여덟 차례나 그곳을 지나가면서 항상 마음에 두고는 있으나 아직까지 시원스레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도민스님이 오공에게 부채를 주면서 "부채나 부치시오"라고 하자, 오공이 부채를 부치니 도민스님이 말하였다.
"시원하지 않은 곳이 어디에 있소?"
오공은 매우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말후구(末後句)를 가르쳐 주십시오."
도민스님이 두 차례 부채를 부쳤다.
"친절하십니다."
"길료새(桔嘹 : 앵무새)는 혓바닥이 삼천리지."
66. 관음경을 사경하다 / 진팽공 여림(陳彭空汝霖)
간의대부(諫議大夫) 팽공(彭公) 진 여림(陳汝霖)이 손수 관음경을 베껴 써서 도민스님에게 올리자 도민스님은 책을 들고서 말하였다.
"이것은 관음경이니, 무엇이 간의대부입니까?"
"이것은 제가 직접 쓴 것입니다."
"쓴 것은 글자인데, 무엇이 경전입니까?"
팽공이 웃으면서 "정말 모르겠습니다"하자 도민스님이 다시 말을 이었다.
"재상의 몸으로 나타나서 설법을 하십니다."
"사람마다 분수가 있습니다."
"경전을 비방하지 않는 것이 좋겠소."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도민스님이 경전을 들어 보이자 팽공은 손뼉을 치면서 껄껄대며 하! 하고 감탄하였다.
도민스님이 "그래도 모르겠다고 하겠나?"라고 하니, 팽공은 스님에게 절을 올렸다.
67. 도민스님을 뵙다 / 안상국(安相國)
안상국(安相國)이 남부지방으로 좌천되어 지나는 길에 도민스님을 만나서 탄식하였다.
"일생동안 벼슬하다가 지금와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깨고 보니 이제까지의 일이 한바탕 꿈이었습니다."
"상국께서는 꿈을 깨셨습니까?"
"이것이 모두 본디 있는 것이나 다만 몰랐을 뿐입니다."
"상국!"
안상국이 고개를 들자 스님이 말하였다.
"알았습니까?"
"여러 가지 맡은 일은 어떻게……"
"서울에서 며칠 만에 이곳까지 오셨소?"
"42일입니다."
"어디에서 일을 얻어왔소?"
상국이 웃으며 말하였다.
"조금 알성 싶습니다."
"지금 당장 그대로 누리십시오."
"어떻게 누려야 합니까?"
"아침마다 똑같고 날마다 일반입니다."
안상국이 마침내 합장을 하자 도민스님이 말하였다.
"가진 것을 다 비우고 없는 것을 채우지 마시오. 대체로 이와 같이 하면 참으로 자유로울 것이오."
68. 드센 터를 누르고 살다 / 이령암주(二靈菴主)
이령암주(二靈菴主)는 소주(蘇州)사람이다. 처음 진정(眞淨克文)스님을 찾아뵙고 후일 늑담 응건(泐潭應乾 : 1034~1096)스님에게 공부하여 깨친 바 있었다. 동절(東浙)지방으로 돌아가 설두산 중봉암(中峰庵)에 주석하였는데 그의 자리 아래에는 항상 호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처음 천동 보교(天童普交 : 1048~1124)스님과 동행하면서 두 사람 다 결단코 세상에 나가지 않겠노라고 맹세하였는데 후일 보교가 맹세를 어기고 세상에 나가 태백산(太白山)의 주지를 하자, 지화(知和 : 이령암주)스님은 마침내 그와 절교하고 중봉에서 여러 해를 살았다. 그 산은 몹시 드세어서 얼마 살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된다는 말이 있었다. 이에 지화스님은 호미로 산맥을 잘라버렸다. 그러나 대제(待制) 진공(陳空)이 시로 유인하여 이령암의 주지로 있게 하자 1~2년이 못되어 많은 납자들이 몰려와 작은 절을 이루게 되었다. 그의 명성이 궁중에까지 알려져 여러 차례 천자의 조칙이 내렸으나 응하지 않았다.
지금도 유적이 남아 있으며 많은 게송과 법문이 세상에 알려져 있다. 이령암은 은강(勤江) 월파(月波) 가운데에 있는데 순희(淳熙 : 1174~1189) 연간에 별봉 보인(別峰寶印)스님이 유두사(乳竇寺)에서 경산사로 부임하는 도중에 그곳을 지나면서 게를 지었다.
일만 이랑 너른 호수 잔잔한 물결 위에
이령산의 산빛이 겹겹이 푸르러라
돛단배 너울너울 하늘가를 향하노니
머리돌려 바라보나 지화스님 뵐 낯 없네.
萬頃湖光瀲灔中 二靈山色翠重重
片帆我欲天邊去 回首和公有媿容
스님의 높은 도풍을 상상해 볼 수 있다.
69. 인종(仁宗)이 대각 회련(大覺懷璉)선사를 뵙다
대각(大覺懷蓮 : 1009~1090)스님이 궁중에 들어가 심법(心法)을 논하던 차에 인종황제(1012~1064)는 게를 지어 하사하였다.
초조(달마)께서 소림사에서 참선할 제
경전의 가르침 전하지 않고 심법만을 전하였네
후세사람 진여본성을 깨닫는다면
비밀한 심인(心印)의 유래, 그 이치 깊은 줄을 알리라.
初祖安禪在少林 不傳經敎但傳心
後人若悟眞如性 密印由來妙理深
70. 효종(孝宗)이 경산 도잠(徑山道潛)스님에게 칙서를 내리다
효종황제는 경산(徑山道潛)스님을 궁으로 불러들이고 송을 지어 하사하였다.
나오는대로 설법하되
수백 마디 모두가 으뜸가는 종지라
스님이 절로 돌아가자 너무나 고요해
한 글자도 부칠 곳이 없구나.
信手拈來說 宗乘數百句
僧歸寺寂寥 一字無著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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