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총림성사叢林盛事

총림성사 下 69~71.<終>

쪽빛마루 2015. 9. 24. 14:24

69. 30년을 한곳에서 보내다 / 둔암 종연(遯菴宗演)선사

 

 둔암 연(遯菴宗演)선사는 민(閩) 사람으로 처음 고목 조원(枯木祖元)스님을 찾아뵌 후 경산(徑山) 묘희스님에게서 공부하였다. 최암 도인(最菴道印) · 동암 연(同菴璉)스님과 함께 「대혜광록(大慧廣錄)」 30권을 편집하여, 세상에 널리 유포하였다. 대혜스님이 입적한 뒤 종연스님은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고, 누더기 한 벌로 추위와 더위를 지내면서 30년 동안 한 곳에서 보냈으며 여러 차례 판수(板首)를 맡아보기도 하였다. 민 땅의 태수 조여우(趙汝愚)가 그를 복주(福州) 수봉사(秀峰寺)의 주지로 청하였으나 굳이 거절하고 나가지 않자, 별봉 인(別峰寶印)스님은 글을 지어 그에게 세상을 나갈 것을 권유하였는데, 그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윽한 숲 속 난초가

어찌 사람이 없다고 향기 나지 않을 것이며

지극한 보배 간직한 도는

안목을 갖춘 자만이 비로소 알 수 있으리.

 

 당시 선림에서는 모두들 그의 지조를 높이 샀다. 그는 만년에 도독(塗毒智策)스님의 천거로 상주(常州) 화장사(華藏寺)로 나가게 되었다. 그곳에 좌정하기를 19년, 삼오(三吳) 지방에 불법이 크게 성행하니, 이것은 불법 인연이 있는 땅이기 때문이다.

 

 

70. 사천 사람 최암 도인(最菴道印)선사

 

 최암 인(最菴道印)선사는 사천 사람이다. 처음 적실(寂室慧光)스님에게 귀의하였다가 후일 대혜스님에게 공부하였다. 경구(京口) 학림사(鶴林寺)의 주지로 세상에 나갔으며, 자화상에 다음과 같은 찬을 썼다.

 

몸을 이기기엔 너무나 파리하고

행동은 엉망이었네

소맷자락에 손을 넣고 점잖은 척 있노라니

예의라도 아는 양 보이구나

잘나고 못나고는 원래 스스로의 재량이 아니니

여러 총림의 분부를 굽어보리라.

 

 

71. 물음에 막힘없이 대답하다 / 형양군왕(榮陽郡王)

 

 형양(榮陽)의 군왕 조령금(趙令衿)이 처음 가화(嘉禾)에 살 때 벼슬에 오르기 전에는 집이 몹시 가난하였다. 당시 수암 청수(誰庵淸粹)스님은 보은사(報恩寺)의 주지로 있으면서 그와 교류하며 의문나는 일을 물어오면 대답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후 효종이 즉위하자 그는 여러 차례 대번(大藩)의 왕이 되었고, 큰 사찰에 청수스님을 주지로 명하는 일이 많았다. 만년에는 하산사(何山寺)의 청으로 공덕사(功德寺)를 짓고 역시 청수스님에게 주지를 맡겼으며, 특별히 자의(紫衣)와 원오선사(圓悟禪師)라는 법호까지 하사하였다. 그의 법제자 또한 대법(大法)의 금성탕지(金城湯池)가 되었으니, 이는 서로의 큰 원력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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