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날카로운 우스갯소리를 잘하던 설두 지(雪竇持)선사
설두 지(雪竇持)선사는 상전 경(象田卿)선사의 법제자이니, 동림 조각(東林照覺)선사 법손이다. 평소에 입을 열기만 하면 게송이 되었는데 그가 '종이장막[紙帳]'에 대해 읊은 시가 있다.
실오라기를 건드리지 않고 베틀로 짜지 않고서도
서리맞은 닥나무 두들겨 깨끗이 하니
난간에 반쯤 비친 가을달빛 깊은 밤에
자리에 찬구름 흩어지지 않는구나
잠자리 누우니 혼돈 세계 모두 잊고
일어나 앉노라니 텅빈 마음 무위(無爲)라 하네
빽빽하여 티끌하나 들여보내지 않으나
바람은 마음대로 팔방에서 불어온다.
不犯條絲不涉機 細揉霜楮淨相宜
半軒秋月難分夜 一榻寒雲未散時
睡去浩然忘混沌 坐來虛白稱無爲
綿綿不許纖塵入 任汝風從八面吹
또한 '만든 산[가산]'에 대해 읊은 시가 있다.
조약돌 몇 개 쌓아 첩첩 산을 만드니
연못물 제법이라 한치 파도 일렁이네
산천의 무한한 뜻을 알고 나면
눈 앞의 맑은 경관 많은 게 필요없네.
數拳幽石疊嵯峨 池水泓然一寸波
識得山川無限意 目前蕭灑不消多
또한 '한거(한거)'를 읊은 시가 있다.
요사이 세상만사 마음에 두지 않고
외로운 봉우리에 살 집 이미 생각해 놓았네
마음이 상쾌하여 때로는 어쩔 줄 모르다가
소나무를 맴돌며 두세번 긴 휘파람 불어본다.
年來趨世勿心情 閣錫孤峯*計已成
快活有時無奈向 繞松長嘯兩三聲
대혜(大慧)노스님이 지난 날 경산사의 주지로 있을 무렵 그 법석이 많은 사찰 가운데 가장 융성하여 감히 노스님의 문정에 올라 갈 수 있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지(持)선사만은 대혜노스님을 찾아뵈니 대혜스님은 그를 위하여 상당해서 법권(法眷)의 예의를 강의하였다. 그리고 화공이 임제대사의 영정 그리는 것을 함께 보다가 지(持)선사가 원본을 복사하고자 하니 대혜선사가 그림에서 팔을 걷어 부치고 때리는 시늉을 하였다. 지선사는 마침내 명을 받고 찬을 썼다.
얼굴은 후줄후줄 잿더미 같지만
할소리는 마른 하늘의 우레소리 같았고
훤출하고 근엄하지만
진솔하지 못하거나 날리지도 않도다
쯧쯧!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만일 이 이치를 알지 못한다면
정작 한장의 형편없는 그림이겠지.
面似淋了灰堆 喝似旱天怒雷
雖然麤麤慥慥 且不隈隈㲝㲝
咄 是甚麽 若不得這箇道理
定作一枚渠魁
그 후 여러 절에서 영정을 그릴 때 팔응 걷고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을 흉내내니 식자(識者)들의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선사는 우스갯소리에 더욱 능하여 말대꾸가 날카롭고 민첩하였다. 범생(范生)이라는 이는 선비를 후려잡는데 뛰어난 재주를 지닌 자로, 그가 절에 들어와서도 한없이 음식을 욕심내자 어느날 공양을 마친 후 배를 만지며 걸어가는데 지선사가 배탈이 났느냐고 묻자 그는 엉겁결에 대답하였다.
"나는 일찍이 도가에 몸담은 바 있었다. 양생(養生) 비결에 의하면 밥을 먹은 후 백보를 걸으면서 급히 배를 문지른다고 한다."
그러자 지선사가 곧장 대답하였다.
"그대가 장생(長生)의 비결을 배우려고 한다면 우리 불가의 상주물을 축내서는 안된다."
이를 계기로 범생은 부끄러워 하며 물러간 후 다시는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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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본의 '蜂'은 만속장경 판본을 참고하여 '峯'으로 번역하였다.
24. 초서체를 잘 쓰던 용아 종밀(龍牙從密)선사
용아(龍牙)선사의 법명은 종밀(從密)이며 자는 세소(世踈)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초성(草聖 : 초서체를 잘 쓰는 사람)이라 하여 귀하게 여겼다. 서주(舒州) 사람 장회소(張懷素)는 스스로 '정신나간 촌놈[落魄野人]이라 하면서 환술(幻術)로 공경대부들과 교류하였다. 숭녕(崇寧) 4년(1105)에 장회소가 모반에 실패하여 처형 당하였는데 그의 보따리를 살펴보니 종밀선사의 초서와 홍각범(洪覺範)스님이 붙인 발문이 있었다. 이 때문에 두 스님이 연루되어 견책을 받았다. 종밀선사는 그후 민현(閩縣)으로 돌아와 게를 지었다.
장정에 사는 늙은 수행승 하나
깊이 돌이켜 보니 악업도 많았구나
노인들 가운데 백발노인 더할까 두려워서
파도를 헤치며 황하로 달려나갔네
하늘끝 바다 모퉁이에 몸을 숨키니
수없는 칼 숲과 칼산을 눈여겨 보며
오늘 남쪽으로 돌아와 아직도 살아 있으니
그들은 선승같지 않다고 웃네.
長汀有箇老頭陀 猛省思量惡業다
怕老人中添白髮 驚翻浪裏走黃河
天涯海角藏身去 劍樹刀山貶眼過
今日南歸猶活在 從佗笑不似禪和
그는 일찍이 「사대송(四大頌)」을 지었다.
지풍화수 네가지 원래 뿌리가 없는데
지금 그 근원을 빌어 그대 몸이 되었네
육용(육용)이 머물 때 사람은 보이지 않으니
한 기틀 빈 곳에 내 어디 있으랴
마르고 습한 데서 조상을 찾지 말고
흔들리거나 단단한 데서 자손을 인정 마라
옛사람이 말했던 바른 도리를 아는가
모두 한낱 깨진 사발 같도다.
地風火水本無根 今藉其元作爾尊
六用停時人不見 一機空處我何存
休於燥濕尋宗祖 勿向堅搖認子孫
記得曾郞言諦當 都盧似箇破沙盆
종밀선사는 노년에 복주 동선사(東禪寺)의 주지로 있었다. 어느 날 선사는 편수관(編修官) 정상명(鄭尙明)을 초청하여 식사를 함께 하고 손수 차를 따르며 말하였다.
"내 죽을 때가 되었으니, 그대가 증명을 하여 주시오."
그리고는 자신의 초서 천자문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어 정씨가 아직 얻지 못했다고 하자 선사는 붓을 들어 천자문을 써주었는데, 글씨가 평소보다 훨씬 뛰어 났다. 또한 종이를 찾아 게를 썼다.
인간 칠십 다 겪은 후
오늘에야 모든 인연 다 끝났네
허공을 때려 부숨도 모두가 부질없는 일
놀라 일어나니 온 몸이 큰 길의 흰소로다.
閱盡人間七十秋 萬緣今日一時休
虛空撲破渾閑事 驚起全身露地牛
이에 붓을 던지고 서거하였는데 다비를 하니 연기가 이르는 곳마다 모두 오색 사리가 되었다.
25. 무쇠 주둥이, 화약사(花藥寺) 영(英)선사
형주(衡州) 화약사(花藥寺)의 영(英)선사는 강주(江州) 호구 이씨(湖口李氏)자손이다. 처음 진정(眞淨)선사의 문하에서 수기를 받은 뒤 운거사(雲居寺)를 찾아가니 불인(佛印)선사는 그를 수좌승으로 명하였다. 어느 날 불인선사는 주먹을 불끈 쥐고서 그에게 물었다.
"수좌는 어떻게 하겠는가?"
"뒷날 감히 스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불인선사는 마음 속으로 기뻐한 나머지 게를 지어 그에게 주었다.
그 누가 길주의 영재를 알랴
신라의 쇠를 두들겨 부리를 만들었네
그는 끝내 까마귀 떼를 따르지 않고
먼구름 바라보며 한가롭게 울음짓네.
誰人識得吉州英 觜是新羅鐵打成
終不隨佗烏鵲隊 望雲閑叫兩三聲
이는 그의 기변(機辯)을 칭찬한 말로서, 이를 계기로 총림에서는 그를 '영철취(英鐵觜 : 쇠로 만든 주둥이, 영스님)'라고 불렀다.
소성(紹聖) 원년(1094) 가을, 운거사에서 담주(潭州) 개복사(開福寺)에 주지하라는 명을 받았으며 진정선사의 법제자가 되었다. 그 후로 해마다 겨울과 여름이 되면 반드시 안부를 묻고 의복을 올렸으며, 심부를 가는 노비에게 계절마다 반드시 서신을 올리도록 당부하였다. 그러나 진정선사는 달리 물건으로 답례하지 않다가 입적할 때 황색 가사를 전해 주면서 뒷일을 부탁하였다. 영선사는 스승의 부음(訃音)을 듣고 승복을 받은 후 슬피 울다가 땅에 쓰러졌다. 대혜(大慧) 노스님은 그가 이러했다고 칭찬하고 나서, 스승을 법답게 섬기는데 영철취보다 독실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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