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즉암 자각(卽庵自覺)선사의 게송
건강부(建康府) 보령사(保寧寺)의 즉암 각(卽庵自覺)선사는 지난 날 무준(無準)스님과 함께 파암(破庵)스님의 문하에서 같이 공부했는데, 뒷날 무준스님이 산에 살게 되자 게송을 지어 보냈다.
솔바람 깊이 들이마시고
푸른 산빛 실컷 먹으며
호연지기 기르노니 뼛속까지 스며드는 맑은 기운
깊은 꿈 깨어보니 천봉만학에 안개 서리고
흥에 겨워 웃노라니 천지가 비좁은 느낌
저녁노을 사라지고 눈발 그치니 푸른 산빛이 뚝뚝
절벽 위에 쏟아지는 폭포수 소리는 우르르 꽝꽝
옛사람의 이 즐거움을 내 어이 알리
저 건너 흰 구름이 바위를 감싸안고 날아가네.
吸松風 飽山色 浩養未妨淸徹骨 夢覺千嵓杳靄分
與來一笑乾坤窄 霽霞凝雪翠滴滴
泉瀉斷崖聲瀝瀝 故人斯樂我何知 遐跂白雲抱幽石
이주사(梨洲寺)로 떠나가는 고원(高源)스님을 전송하면서 게송을 읊었다.
소옥아! 부르는 소리에서 대강은 알아챘지만
지금도 나의 두 눈은 흐릿하외다
스님이여, 고향에서 겪은 수모 설욕하지 못한다면
이 훌륭한 법을 누가 바로잡는단 말이오.
小玉聲中認得些 至今兩眼尙眯麻
阿師不雪鄕人恥 鼎鼎敎誰辨正邪
고원 · 즉암 · 석전 · 무준 등 도가 있다고 이름난 촉(蜀 : 四川省) 땅 노스님들은 모두 일세의 존경을 받았으니 아름답고도 훌륭한 일이다.
28. 설두 무상(雪竇無相)선사의 상당법문
경원부(慶元府) 설두사(雪竇寺) 무상 범(無相範)선사가 송원(松源)스님을 참례하고,
초산사(焦山寺)에서 개당법회를 했는데 당시 훌륭한 납자들이 모두 운집하였다. 신참인 설두 무준스님을 위하여 양기화상과 구봉 근화상이 주고 받은 화두를 들어 상당 설법을 하였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양기(楊岐)화상이 주지가 되어 법좌에 올라 설법이 끝나자 구봉근(九峰勤)화상이 양기화상의 손을 잡으며 말하였다.
"기쁩니다. 이런 동참을 얻게 되다니……"
"어떤 것이 동참하는 일이오?"
"그대 양기는 얼룩소를 끌고 나 구봉은 쟁기를 끕니다."
"그럴 때 내가 앞이요, 그대가 앞이요?"
구봉스님이 잠시 머뭇거리자 양기스님이 말하였다.
"동참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잖아!"
이 말을 마치고 이어 게송을 붙였다.
양기의 왼쪽 눈은 반 근이요
구봉의 오른 눈은 여덟냥이니
한 쌍의 구멍없는 쇠망치를
여지껏 줍지 못하였네.
楊岐左眼半斤 九峰右眼八兩
一對無孔鐵鎚 至今收拾不上
이 시로 인하여 총림에서는 모두 그를 '대범(大範)'이라 불렀으니, 아마도 이는 무준(無準師範)스님과 같은 시대에 도를 행한 까닭인 것 같다. 무상스님은 설두사에 주지해달라는 청을 받고 그곳으로 가는 도중에 입적하셨다.
이보다 앞서 소정(紹定) 신묘년(1231) 새해 아침에 상당설법을 하였다.
봄이 드니 온갖 것이 모두 다 새로워라
그리려 해도 그려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
하릴없이 묘고봉을 한바퀴 거닐다 보니
누가 그 경계에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없어라.
春來萬彙悉皆新 一段風光畫不成
無事妙高行一轉 不知誰是境中人
그 이튿날 공양을 물리고는 요사채를 둘러보고 묘고봉에 올라 말하였다.
"나의 뜻을 아는가?"
또다시 그 이튿날 법당에서 죽을 마시고 따뜻한 물을 가져오라하여 목욕하신 후 단정히 앉은 채로 입적하였다. 이에 대중들이 상의하여 묘고봉 정상에 부도탑을 세웠다. 이 이야기를 불감선사(佛鑑禪師 : 無準師範)스님의 기록에서 보았다.
29. 무명 혜성(無明慧性)선사의 염고(拈古)
평강부(平江府) 쌍탑사(雙塔寺)의 무명 성(無明慧性)선사는 성품이 결백하여 바르지 못한 일을 싫어하였다. 한번은 '입을 열어 말하는 건 혀 끝에 있지 않다[開口不在舌頭]'라는 화두에 대해 송하였다.
겉으론 사닥다리를 수리하는 척하면서
남 몰래 진창으로 건너갔네
뱃전에 새겨놓고 거기서 칼을 찾는데
소상강 강물 위에 밤비가 스산하네.
明脩桟道 暗度陳倉
刻舟猶覓劍 夜雨過瀟湘
'역양이 큰 사람이라도 발을 들지 못한다[大力量人 擡脚不起]'라는 화두에 대하여 말하였다.
늙은 오랑캐가 알았다고는 할 수 있으나
늙은 오랑캐가 깨달았다고야 할 수 없지.
흰구름 다한 곳이 청산인데
행인은 다시 청산 밖에 있구나.
只許老胡知 不許老胡會
白雲盡處是靑山 行人更在靑山外
또한 '역량이 큰 사람이라도 다리 아래 붉은 자국이 끊이지 않는다[大力量人脚下紅線不斷]'라는 화두에 대하여 말하였다.
이 일도 저 일도 모두 버리고
귀신마저 속이고서
즐겁게 노닥거리지만
누가 네 마음을 모르랴!
放兩拋三 瞞神謼鬼
換盆換盆 誰不識你
조주스님이 두 암주와 만난 고사에 대하여 말하였다.
남쪽 가지는 따뜻하고 북쪽 가지는 차가우니
똑같은 봄바람도 두 갈래로 부는구나
바라노니, 높다란 다락에서 젓대를 부지 마오
많은 사람들이 난간에 기대어 귀 기울이네.
南枝向暖北枝寒 一種春風有兩般
寄語高樓莫吹笛 大家留取倚欄看
스승 송원(松源)스님은 이 게송을 듣고 수긍하였다.
무명스님은 일생동안 대중스님들과 숙식을 함께 하였고 늙을수록 더욱 정진을 하였다. 이 한 편의 일화만 해도 기록으로 남길 만한데 하물며 그의 결택(決擇)은 납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겠는가.
30. 백암사 선사의 산수화와 시
백암사(栢巖寺)의 선사[凝]는 복주 옥융 임씨(玉融林氏)의 자손이다. 많은 총림을 찾아 정진을 하였으며, 가는 곳마다 앞에 놓인 자리를 걷어치우고는 벽 위에 산수화 한 폭을 그리고 그 위에 글을 썼다.
물결이 고동칠 때 방울방울 떨어지지 않고
풍파가 잠자는 곳 잔잔하고 고요하다
밝은 창문 종이 틈새 진종일 찾지말고
벽위에 떠가는 배 바라봄이 어떠하오.
波浪鼓時無點滴 風濤息處即瀰漫
明牕紙鏬休尋覓 壁上行船方好看
동료 스님들이 이 시제를 보고 모두 칭찬하였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와 양서(洋嶼) 운문사(雲門寺)에 주지하면서 식암(息庵達觀)스님의 법을 이었으며, 부지런히 수행하여 대중스님의 존경을 받았다.
31. 중암 적(中巖寂)선사의 대중법문
중암 적(中巖寂)선사는 천성이 고고하신 분이었다. 한번은 대중스님에게 설법하였다.
"과거 많은 여래가 이 도랑과 산 골짜기에 꽉 차 있고, 현재 많은 보살은 잠뱅이옷에 윗구멍이 없고 고쟁이(여자속옷)에 아래구멍이 없으며, 미래 수도인은 떠밀쳐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잡아 당겨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만일 이를 안다면 한 구덩이 흙이므로 차이가 없고 만일 모른다면 그대는 서쪽 진(秦)나라로, 그리고 나는 동쪽 노(魯)나라로 갈 것이다."
또다시 말하였다.
"걸어도 참선이요 앉아도 참선이라, 하루종일 머리 들어 쳐다봐도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은 너에게서 나와 너에게 돌아가는 것이나 여전히 그대로라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들어 일으키면[拈起] 우주에 가득 차고 놓아버리면[放下] 하나의 티끌마저도 일어나지 않으니, 들어 일으킬 것도 없고 진주(鎭州)의 무우에 조주스님은 최고의 값을 불렀다."
또 다시 말하였다.
"오늘 아침이 칠월 초하루이니 머지않아 올 여름의 결제도 마치게 될 것이다."
다시 법상으로 올라가 옛 공안을 들어 말하였다.
"완전히 들어 보여준다면 콧구멍 반쪽을 읽을 것이요, 완전히 들어 보여주지 못한다면 혀 끝으로 범천(梵天)을 떠받드는 일이다. 아! 모든 것이 진창이로구나! 나에게 그 공안을 가져오너라."
주장자를 내리 친 뒤 다시 말하였다.
"이 말을 되씹지 말라. 이 몇 마디 말은 마치 입에 모래를 머금은 여우가 사람의 그림자를 보고서 독모래를 쏘아대는 것과 같다. 나는 그 독모래에 중독되지 않을 자가 몇이나 될지 두렵다."
32. 천목 문례(天目文禮)선사의 게송
천목 예(天目文禮)선사가 도반을 찾아갔다가 만나보지 못하고 게송만 읊었다.
뜨락에 한그루 붉은 싸리꽃
그대는 어인 일로 계시지 않는구려
그래도 혹시나 서로 만나리라 생각했었더니
한 스승의 제자로서 하늘 멀리 헤어지다니.
庭前一樹紫荆花 老子何嘗不在家
若謂弟兄相見了 先師門戶隔天涯
이 게송은 총림에서 회자되어 온 글이다. 또한 백장스님의 '야호(野狐)' 화두에 대해 송하였다.
어느 곳에 떨어졌나
그대여, 자세히 살펴보오
조수 밀려드니 포구마다 일색이요
낙엽 지고 나니 저 산이 보인다.
墮落知何處 憑君子細看
潮來無別浦 木落見他山
치둔(痴鈍)스님은 이 게송을 듣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고 한다. 일찍이 북간(北澗)스님과는 불조(佛照)스님 문하에서 서로 우열을 다투는 제자였기에 그들을 간천(簡川) · 예규(禮竅)라 일컬었다.
나는 경정(景定 : 1208~1224) 연간에 보령사(保寧寺)에 머물면서 처음으로 그의 어록을 보고 천목 예스님이 노외옹(老聵翁 : 松源崇岳)의 인가를 받았던 것이 구차하게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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