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산암잡록山菴雜錄

해제

쪽빛마루 2016. 2. 22. 18:25

해제

 

 「산암잡록」은 명초(明初) 홍무(洪武 : 1368~1397) 10년 경에 무온 서중(無慍恕中 : 1309~1386)스님이 원대(元代) 불교(佛敎)를 이야기식으로 정리한 불교사서(佛敎史書)이다.

 저자 무온 서중스님은 태주(台州) 임해(臨海)사람으로 속성은 진씨(陳氏)다. 어려서 경산사(徑山寺)에 출가하여 소경율사(昭慶律寺)에서 구족계를 받고 임제종 양기파 축원 묘도(竺元妙道)스님의 법을 이었다. (별표 참조)

 세상에 나가기를 싫어하여 행각과 안거로 일관한 삶을 살았다. 홍무 7(1374)년에는 일본의 초청에 응하라는 나라의 명을 사양하고 천동사로 돌아가서 이때 「산암잡록」을 집필하였다.

 그는 몽고족의 통일제국인 원(元)이 분열되고 와해되는 과정에서 한족이 곳곳에서 들고 일어나면서 명(明)이 건국되던 시기를 살았다. 이 책 자서(自序)에서, 당 · 송대(唐 · 宋代) 선지식의 언행은 간행된 것이 있으나 원대부터의 이야기는 기록이 전혀 없는 실정이므로 정리해둘 필요가 있지 않겠냐는 조카상좌 장경중(莊敬重)의 청을 받아들여 이 책을 쓴다고 간행의 동기를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살았던 13~14C와 그 이전, 즉 원(元)이 남송(南宋)을 침략하던 때부터 한지(漢地)가 몽고 지배 아래 완전히 들어갔던 때를 거쳐 몽고제국이 무너지던 혼란기 불교계의 상황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우선 이 시대 중국의 불교계 상황을 개괄해 보고자 한다. 12C, 치열한 부족전쟁에 휘말려 있던 몽고초원은 하나의 강력한 질서를 희구함으로써 수대에 걸친 성공적인 정복전쟁을 통해 마침내는 통일제국을 건설하였다. 이들은 중원을 정복했던 몇몇 이민족들이 한족에 동화되려는 노력을 보였던 것과는 달리, 정복지 경영에 있어서 철저히 한족을 차별하고 탄압하는 정책을 폈다. 이런 강압정치는 불교계에도 반영되어 원대 불교는 어느 때보다도 국가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띠었다.

 「원사 석로전(元史 釋老傳)」의 "원흥숭상석씨(元興崇尙釋氏)"라는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원 왕실은 불교를 숭배하였다. 서장(西藏) 지역에서는 불교의 일파인 라마교를 받아들인 한편, 한지(漢地)에서는 송대(宋代)의 전통을 이어받아 제한된 범위 안에서나마 불교가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원 왕실은 국가의 복을 기원한다는 명분 아래 숭불정책을 표방하여 불사를 대대적으로 벌이는 한편, 중국의 역대 왕조가 그래왔듯이 불교세력을 관리하기 위한 통치기구를 강화하고 그들의 활동을 제한하였다. 민생을 돌보지 않은 채 불사를 일으키고 사원이 경제적 부를 누릴 수  있도록 허락하여 부패를 묵인하였으며, 승려자격증을 상품으로 팔아먹기까지 하였다. 이때 일부 승려들의 타락상은 극에 달했다. 이 책에 나오는 승려 엄길상(嚴吉祥)은, 원사(元史)의 기록에 의하면, '도공물 축처노(盜公物 畜妻孥)'라는 죄목으로 어사대의 규탄까지 받았던 대표적인 예이다.

 이 책은 이러한 상황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그 내용을 크게 몇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원이 남송을 침입했을 때 승려들의 처신, 석교총통 양련진가(楊璉眞伽)가 송 이종(理宗) 등 왕의 묘를 파헤치고 가혹행위를 한 사실, 원제국이 비대해지면서 행정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틈을 타고 한족이 봉기한 예로서 장사성(張士誠) 사건 등 정치적으로 주목할 만한 사실들을 다루고 있다.

 둘째는 정치세력과 불교계와의 관계, 불교계 안에서의 이권다툼과 세력싸움, 승려들의 타락상, 흐트러져 가는 선방 분위기, 끊어져 가는 조사의 명맥, 그런 가운데서도 화두참선이나 염불수행에 정진하는 승려들의 모습 등 불교계 안팎의 풍경을 보고 들은 대로 그리고 있다. 그밖에 저자의 주관이 섞인 인물평이나 서평 시평 등을 통해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선승(禪僧)이었으면서도 불교계 전반에 있었던 일들을 폭넓게 다루었고, 한인(漢人)이었으면서도 장사성(張士誠)등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을 보인다. 여기서 그가 사가(史家)로서의 객관적인 안목을 견지하려고 애썼던 흔적과 함께 한인 불교양심세력으로서의 반성이 짙게 배어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자서(自序)에서, 「나호야록(羅湖野錄)」「운와기담(雲臥紀談)」 등 송대 어록의 전통을 이어받았으면서도 그것들이 불교 제일의제(第一義諦)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었던 데 비해, 여기서는 사실들을 채집하여 기록하는 데 힘썼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끝에 사마천(司馬遷), 반고(班固)를 들어 자신의 저술 입장이 역사를 기록하는 데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런 만큼 「산암잡록」은 원대(元代)불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몇 안되는 자료 중의 하나로 자리매길될 수 있다 하겠다.

 

<별표>

                                                                     |- 대혜 종고

양기 방회 - 백운 수단 - 오조 법연 - 원오 극근 -|    (大慧宗杲)

(楊岐方會)  (白雲守端)   (五祖法演)   (圓悟克勤)  |- 호구 소융 - 응암 담화 --|

                                                                          (虎丘紹隆)  (應庵曇華)      |

          |-------------------------------------------------------|

          |                   |- 파암 조선 - 무준 사범

          |- 밀암 함걸 -|  (破庵祖先)   (無準師範)                     |- 고림 청무

                (密庵咸傑)  |- 송원 숭악 - 멸옹 문례 - 횡천 여공 - |  (古林淸茂)

                                       (松源崇岳)  (滅翁文禮) (橫川如(行)珙)|- 축원 묘도 -|

                                                                                                  (竺元妙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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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온 서중 - 현극 거정

                                     (無慍恕中)   (玄極居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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