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원오심요圜悟心要

원오심요 下 58. 오시자(悟侍資)에게 주는 글

쪽빛마루 2016. 3. 18. 15:49

58. 오시자(悟侍資)에게 주는 글

 

 운문(雲門)스님에 대중에게 법문을 하였다.

 "스님네들이여, 망상 부리지 말라. 산은 산 물은 물이며, 스님은 스님 속인은 속인이다."

 그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제가 산을 산으로 보고 물을 물로 볼 때는 어떻습니까?"

 운문스님은 손으로 면전에 한 획을 그으면서 말하였다.

 "불전(佛殿)이 무엇 때문에 이 속에서 가느냐?"

 지난 시절 대중 속에서 참구할 때 "산은 산 물은 물"하며 일 없는 선[無事禪]을 설하며 서로 전하는 것을 보았는데, 평범하면서도 실다워 더이상 허다한 일들이 없었다. 현묘한 이치니 성품이니 하는 것들을 뽑아 버리고 공(空)을 천착하여, 심장을 요란스럽게 흔들어놓은 것을 면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운문스님이 자비로 한 가닥 길을 열어 보여주시자 이 스님은 대뜸 알아차리고 나와서 물었던 것이다. 그러자 운문스님은 뒤에서 고차적인 선 도리를 사용하여 그를 얼떨떨하게 하더니, 이윽고 손으로 획을 긋고는 "불전이 무엇 때문에 이 속에서 가느냐"고 물었으니, 이야말로 그를 뒤바꿔준 것이라 하겠다.

 그 때문에 일반적으로 진실만을 이야기해야 올바른 선(禪)이며, 이쪽 저쪽을 지적하기만 하면 그대의 눈동자를 바꾸는 것이다. 그를 믿지만 말고, 다만 말하라. "나는 그대를 안다"고. 괴롭고도 괴롭도다. 단박에 해치울진저. 산승은 일 없는 경계 속에서 이 년 남짓 살았지만 가슴 속이 끝내 분명하지 못했다가, 그 뒤 갑자기 백운(白雲)에 있으면서 통밑이 빠지듯 하였다. 그제서야 바야흐로 이 망정과 견해가 모든 사람을 죽이고 엉뚱한 사람들을 산 채로 결박했음을 확연히 보게 되었다. 일 없는 경계 속에서 가슴 속이 마치 검은 칠통과도 같이 오로지 무명의 업식(業識)을 길렀던 것이다. 명예를 탐내고 이익을 취하여 지옥업을 지으면서 스스로 "나는 이미 아무 일도 없다"고 하였다.

 운문스님의 의도를 자세히 살펴보건대 어찌 이러했을 뿐이랴. 이로써 맛좋은 제호도 이런 사람을 만나면 독약이 된다는 점을 알겠다. 진실로 운문의 경지에 이르렀다면 어찌 이처럼 죽이려 하겠느냐. 그가 제창한 경계는 모두 불조의 대기대용으로 드러내 보여준 것이다. 그리하여 손으로 획을 그으며 "불전이 무엇 때문에 이 속에서 가느냐"고 하였으니, 모든 성인도 모름지기 뒤로 물러나야 하고, 큰 해탈지견을 갖춘 이라도 모름지기 숨을 마시고 소리를 삼켜야만 한다. 산승이 부득이하여 겨우 약간만 보여주었으니 아는 자만이 알 뿐이다.

 참학을 하려면 꼭 실답게 참구해야 한다. 시비를 끊고, 득실을 떠나며, 티끌번뇌를 버리고 지견을 벗어난 데 이른 뒤에야 이런 부류에 들어갈 수 있다. 참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