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처겸수좌(處謙首座)에게 주는 글
옛분들이 방편을 베풀고 가르침 세우기를 처음부터 소홀히 하지 않았던 것은, 반드시 만세토록법을 배우는 표준으로 삼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때문에 마갈타에서는 방문을 걸어 잠궜고, 소림에서는 쓸쓸히 앉아 있었으며, 비야리에서는 입을 닫았고, 수보리는 묵묵히 있었으니 다 목적이 있어 그렇게 했던 것이다. 마치 북두성이 제 자리에 위치해 있듯, 모든 시냇물이 바다로 흘러가듯 하였으며, 호랑이가 노려보듯 용이 달리듯, 바람이 돌고 구름이 합하듯이 하였다. 이런 것이 있는 줄 아는 자는 나아갈 바를 가만히 알아서, 이치를 따지지 않고 곧장 알아차려 그 문지방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체재와 행위가 자연히 들어맞았다.
처음 가르침을 세웠을 때는 우연히 그렇게 된 듯도 하나 형체와 소리가 드러나고 보면 감춰지지 않아서 우뚝히 세상을 놀라게 하면서 점점 매일같이 새로워진다.
덕교(德嶠 : 덕산)스님은 백목방(百木棒)을 휘둘렀고, 제북(濟北 : 임제)스님은 우레같은 할을 떨쳤으며, 구지(俱胝)스님은 한 손가락을 세웠다. 비마(秘魔)스님은 무쇠집게를 높이 들었고, 상골(象骨 : 설봉)스님은 세 개 나무공을 굴렸고, 화산(禾山)스님은 네 번 북칠 줄 안다 하였다. 또한 충국사(忠國師)의 물주발과 위산(潙山)스님의 소 친 것 등이 모두 대중의 무리를 뛰어넘는 책략과 작용에 이르렀으며, 서원(西園)스님의 '목욕물 데웠던 것'과 금우(金牛)스님의 '밥 먹으라 불렀던 것'과 천황(天皇)스님의 '호떡'과 조주(趙州)스님의 '차 마시게' 했던 일들은 미세한 곳까지 다 궁구하고 연원을 훤히 꿰뚫은 것이다.
시절과 기연을 저버리지 않고 종지와 격식을 초월하였으니 진실로 기린의 두 뿔이며, 사자의 발톱으로서, 뒷 세상에서도 그를 우러르며 그 자취를 따라가지 못하였다. 말 한마디를 내고 한 기봉을 시행하는 데 있어서는 더욱 형상과 명칭을 헤아리고 모양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뜻있는 사람이라면 시작하기 전에 이러한 책략을 쌓아서 단박에 제방(諸方)을 초월해서 인연을 대하니, 어찌 국한되고 갇혀서 어정대고 딸려가는 무리가 되겠느냐. 그 때문에 계속 해 나아가는 가운데 가슴 속을 열어젖혀서 옛 사람의 고상한 가풍을 따라가고자 한다면 저절로 범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알아주는 이를 만나면 헛되지 않으리니, 그를 역사에 남게 한다 해도 욕됨이 없으리라. 그러므로 나는 진심으로 이를 표하고 드러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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