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원오심요圜悟心要

원오심요 下 55. 중송지장(中竦知藏)에게 주는 글

쪽빛마루 2016. 3. 18. 13:43

55. 중송지장(中竦知藏)에게 주는 글

 

 암두(巖頭)스님이 말하였다.

 "무릇 종문을 부지하고 교학을 창도하는 뜻은 다 똥누기 전에 있다. 한 번 엿보고 그대로 꿰뚫어 멋대로 이론을 전개한다 해도 흔적이 없다"라고.

 이는 실로 작가선지식의 수단이라 하겠다. 눈 밝은 이는 문에 들어섰다하면 벌써 깊은지 얕은지를 분별한다. 다시 입을 놀리며 쓸데 없는 짓 하기를 기다리면 언제 마칠 기약이 있으랴.

 설봉(雪峰)스님이 투자(投子)스님에게 물었다.

 "백추 한 번 치는 순간에 이루었을 땐 어떻습니까?"

 "성미 급한 놈은 아니다."

 "백추 한 번 치는 것도 필요치 않을 땐 어떻습니까?"

 "민첩하지 못한 칠통이다."

 옛사람에겐 원래 이런 가풍과 모범이 있어 흙탕물을 떠나고 언어문자를 끊으며 화살촉을 물어뜯어 과녁 부술 것을 요하였다. 번개가 말아오르고 바람이 휘돌듯 바로 그 기미를 타고 정면으로 통쾌하게 주면 곧 임제의 종풍이라 부르며, 또한 사방에서 찾아와 의지하여 묻는 사람들을 저버리지 않는다. 말로 말을 타파하고 자취로 자취를 깎아 죽은 물에 떨어지지 않고 멀리 뛰어넘어 농사꾼의 소를 몰고 가고 주린 사람의 밥을 뺏는 솜씨를 행한다. 이렇게 하는 뜻은 생과 사를 벗어나고 성인과 범부를 초월하며, 남과 나를 같게하고, 더러움과 깨끗함을 녹여서 천지를 환히 비추는 큰 해탈을 증득하여, 자리이타로 성인의 종족을 계승하는 데 있다.

 "이조(二祖)는 서천에 간적이 없고 달마는 동토에 온 적이 없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가. 사람들에게서 눈에 티와 쐐기를 뽑아주듯 속박을 풀어줌이 바로 은밀한 방 가운데 있다. 실법(實法)이란 것으로 사람을 묶지 않고, 처음부터 그에게 백추를 주어 가지고 가게해서 그 중에 온 개나 반 개의 안목 바른 사람이 씨앗이 되는 것을 감당케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치를 따지고 이해를 세우며 언어 문구를 정리하고 고금을 비교한다면, 어찌 땅에서 사람을 싹 쓸어 없앨 수 있겠는가. 이는 조실스님의 자리에 앉은 선지식의 본래 직분이다.

 그런 가운데 부지런히 손을 드리우고 지칠 줄 모르고 계속해 나가야 한다. 오로지 귀찮다고 미루어 버린다면 근본 종지를 잃고 옛성인을 저버리게 된다.

 백운(白雲)노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뚫지 못했을 땐 철벽같았는데 뚫고 보니 원래 철벽이 바로 자기였다"라고. 반드시 철벽같은 선정를 지어야 한다. 그런 뒤에야 착착 몸을 벗어날 기틀이 있어서, 암두스님이 갈파했던 강종(綱宗)의 본모습에 비로소 부합하리라.

 꼬리 아홉 달린 여우는 몹시도 굴을 그리워하는데, 금빛털 사자는 몸을 돌릴 줄 아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