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원오심요圜悟心要

원오심요 下 54. 중선유나(仲宣維那)에게 주는 글

쪽빛마루 2016. 3. 18. 13:01

54. 중선유나(仲宣維那)에게 주는 글

 

 대유령 밖의 조사 조계(曹溪)스님은 부처의 종족이시다. 신성(新城 : 新州)에서 자취를 내어 번우(番禺) 땅에서 법을 펴셨다. 마치 해가 세상을 비추듯, 기린과 봉황이 상서를 나타내듯 하였으니, 세상사람들이 모두 그를 으뜸으로 받들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후 번창하여 태전(太巓)과 삼평(三平) 같은 용상대덕들이 나와 창려(昌黎 : 한퇴지)에게서 견해의 가시를 뽑아주고 세상을 위해 횃불을 밝혔다. 이로써 그들에게 사람이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으니 그것은 아마도 세속을 끊고 인간을 떠났기 때문에 진실로 가업을 이룬 씨앗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걸었던 발자취와 지향했던 업(業)은 하늘처럼 높았으니, 어찌 좀스럽게 줄[行伍]이나 따르고 무리나 쫓으려 하였겠느냐.

 옛날 흥화(興化)스님이 극빈(克賓) 유나에게 말하였다.

 "너는 오래지 않아 창도사(唱導師 : 전법사)가 되리라."

 그러자 극빈스님이 대답하였다.

 "저는 그런 처소[保社]에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흥화스님이 따져 물었다.

 "알고서 들어가지 않겠다는 거냐. 몰라서 들어가지 않겠다는 거냐?"

 극빈은 말하였다.

 "모두 상관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벌금을 받고 절에서 쫓아내도록 영(令)을 내렸다.

 많은 사람들은 이에 대해 일상적인 생각에 떨어져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특별한 기연이거나 관문이라는 생각을 지으니 어찌 그들에게 하늘을 통하는 바른 길이 있는 줄을 알랴. 오로지  바람만 바라보고 더듬을 뿐이다. 반드시 그 가운데의 사람이라야만 조계 · 태전 · 삼평 · 흥화 · 극빈과 모습이라도 비슷하리라.

 그러면 어떤 사람이 그런 사람이겠는가?

 봉황이 안개 낀 하늘 밖으로 곧장 들어가니, 누군들 숲 속의 참새를 두려워 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