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원오심요圜悟心要

원오심요 下 72. 증대제(曾待制)에게 드리는 글

쪽빛마루 2016. 3. 19. 13:29

72. 증대제(曾待制)에게 드리는 글

 

 선은 생각이 아니며, 도는 노력과 무관합니다. 그러므로 생각으로 참선한다면 마치 나무를 뚫으면서 불을 구하고 땅을 파면서 하늘을 찾는 격이어서, 더욱 정신만 수고로울 뿐입니다. 또한 노력으로 도를 배우면 흙 위에 진흙을 더하고 눈 속에 모래를 뿌리는 격이어서, 더더욱 곤란해질 뿐입니다.

 혹시 의식을 쉬고 망상을 쉰다면 선하(禪河)의 물결이 그치고 정수(定水)의 파도가 고요할 것입니다. 힘쓰는 것을 버리고 도모하는 일을 쉰다면 그것이 바로 칠통팔달한 평탄한 대도입니다.

 그러므로 한 스님이 석두(石頭)에게 "어떤 것이 선입니까?"하고 묻자 "벽돌이니라"고 대답하였고, 또 "어떤 것이 도입니까?"하니 "나무토막이다" 하였던 것입니다. 이 어찌 생각과 노력으로 설명해낼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단박에 알아차려 흐름을 끊고 문득 꿰뚫어야만 선과 도가 분명합니다. 여기서는 이해를 냈다 하면 천 리 만 리나 멀어질 것입니다. 요컨대 지난날의 세간의 지혜 · 변론 · 총명을 단박에 놓아버리고 다 없애야만 자연히 여기 지극한 실제 경지에서 스스로 깨달아 증득하게 됩니다. 그러나 깨달았다는 자취를 남기지 않고 단박에 현허(玄虛)하게 통달해야만 훌륭합니다.

 마대사(馬祖)는 일찍이 「능가경(楞伽經)」을 들어서 부처님의 말씀과 마음으로 종지를 삼고 무문(無門)으로 법문을 삼았습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여러분은 부처님의 말씀과 마음을 알고 싶은가? 여러분이 지금 하는 말이 마음이며, 마음이 바로 부처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말씀과 마음이 종지이며, 이 종지는 무문(無門)이 법문이다"고 하신 것입니다.

 옛사람은 노파심이 지나쳐 이렇게 진흙탕 속으로 끌고 물에 띄웠습니다. 한 번 거량하여 바로 꿰뚫으면 그래도 약간은 나은 편이지만, 혹 의미나 이치를 캐는 경우라면 끝내 더듬어 보지도 못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