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칙
염관의 무소뿔 부채[鹽官犀扇]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찰해(刹海)가 끝이 없건만 제자리를 여의지 않았으니 티끌 겁 이전의 일이 모두가 지금에 있다. 그로 하여금 얼굴을 마주하여 보여보라 하나 문득 알지 못하여 바람 따라 드러내보이도다. 일러보라. 허물이 어디에 있는고?
본칙 |
드노라.
염관(鹽官)이 어느날 시자를 불러 "나에게 무소뿔 부채를 건네다오" 하니,
-아직도 그것이 없어서는 안 되는군.
시자가 대답하되 "부채가 부서졌습니다" 하였다.
-들추기 전에는 완전했는데.
염관이 다시 이르되 "부채가 망가졌거든 무소[犀]라도 돌려다오" 하니,
-못 들으셨나요? 부셨다고 하지 않았어요?
시자가 대답이 없으매
-부채는 아직 있는데 있어도 없는 것 같다.
자복(資福)이 일원상(一圓相)을 그리고 그 중심에다 우(牛)자 하나를 썼다.
-뛰어나게 교묘한 신출내기 행자가 능히 꾸며서 장사를 할 줄 아는구나!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항주(杭州) 염관현(鹽官縣) 진국(鎭國) 땅 해창원(海昌院)의 제안(齊安) 선사는 본시 당(唐) 나라 황실의 종친이다.
선종(宣宗)이 숨어 있을 때, 승(僧)이 되어 선사를 뵈려고 하였다. 선사는 이 일을 미리 알고 주사(主事)에게 잡된 말을 일체 금하고 잡된 일을 모두 그치도록 당부했다. 선종이 오랜동안 머물렀다가 갑자기 하직을 고하니, 선사께서 은밀히 이르되 "때가 왔으니 초토[泥蹯]에 묻혀 계시지 마소서" 하고 겸하여 불법의 장래를 부탁하였다. 무종(武宗)이 불교를 탄압한지 6년에 선종이 부흥시키는 데 선사의 공이 컸다. 황제(선종)가 선사를 궁중으로 초빙하여 오래도록 공양하려 했으나 선사는 이미 입적한 지 오래였다. 황제가 슬피 여겨 시호를 오공선사(悟空禪師)라 하였다.
선사가 어느날 시자를 불러서 "내게 무소뿔 부채를 건네달라" 하니, 시자가 대답하되 "부채가 부서졌습니다"고 대답하였는데, 이는 평범한 실제 부자의 대화였다. 선사께서 다시 이르되 "부채가 이미 부서졌으면 무소라도 돌려다오" 하였으니 이는 온몸을 풀숲에 던지면서 자식을 기르는 사연[緣]이요, 시자가 대답이 없는 것은 도리어 삿됨을 인하여 바름을 찾는 격이거늘 단지 그런 줄을 알지 못할 뿐이다.
그러기에 투자(投子)가 대신해서 이르되 "드러내기는 어렵지 않으나 머리와 뿔이 온전치 못할까 걱정입니다"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잘 고치겠습니다" 했어야 하리라.
설두(雪竇)는 염하고 이르되 "나는 온전치 못한 머리와 뿔을 요하노라"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이것은 우리 가문의 묵은 보물입니다" 했어야 하리라.
석상(石霜)이 이르되 "만일 화상에게 돌려보낼 것이라면 없습니다"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얼굴을 마주 대하면서도 피하는구나" 하리라. 설두가 염하고 이르되 "무소가 아직 있습니다"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로노니, "눈밝은 이는 속이기 어렵다" 하리라.
보복(保福)이 이르되 "화상께선 연세가 높으시니, 따로 딴사람을 청하심이 좋을 것입니다"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로노니 "은혜가 많으면 원망도 깊다" 하노라.
설두가 염하고 이르되 "아깝구나! 수고는 했으되 공이 없구나"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좋은 마음에 좋은 과보를 얻지 못했구나!" 하노라.
이 한 패거리의 노장들이 공연한 도리를 설한 것에 의거하건대 부채도 무소도 끝내 드러내지 못했더니, 오직 자복이 있어 원상 하나를 그리고 그 복판에다 소 우(牛) 자 하나를 딱 쓰니, 부채와 무소가 선명하여 끄떡도 않게 되었다.
설두가 염하고 이르되 "아까는 어찌하여 그런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고 그저 이르기를 '부채가 부서졌습니다'라고만 하였을까?" 하였으나, 어찌 일찍이 털끝만치의 요동인들 있었겠는가? 아까까지 드러내지 못했다 한들 어찌 일찍이 없어진 적 있으며 지금 드러낸다 한들 어찌 일찍이 더한 것이 있으리요?
천동은 자복이 드러내고 친숙히 사용해서 이름을 붙이고 청을 불러일으킨 모습을 가상히 여겨 특별히 차 한 잔 달여서 올리고, 다음과 같이 송했다.
송고 |
부채가 부서지자 무소를 찾으니
-하나는 움직이고 하나는 쉰다.
둘레 안의 그 글자가 까닭이 있도다.
-억지로 도리를 설한 것 같다.
위 알았으랴? 계수나무 바퀴에 깃든 천 년의 넋이
-뿌리가 천 길이나 묻혔겠군.
묘하게 환한 광명되어, 한 점의 가을이라.
-현세에 싹이 난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제방에서 이르되 "부채에다 무소가 달구경하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하고, 혹은 이르되 "무소뿔로써 부채를 만든 것이다" 하고, 혹은 "무소뿔로 자루를 만든 것이다" 하니, 모두가 무소부채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염관이 그때 점포를 활짝 여니, 사람마다 한 자루씩 집어올렸는데 유독 자복만이 새 모습에 손이 익어졌고 온 전체가 치우치고 유별났다.
선사께서 일찍이 대중에게 보이되 "강을 사이에 두고 자복의 찰간(刹竿)을 보자 문득 돌아서서 떠났으니, 발꿈치에다 30방망이를 주는 것이 좋겠거늘 어찌 하물며 강을 건너왔을 때리요?" 하였다. 이때 어떤 승이 나서자마자 선사께서 이르되 "함께 이야기를 할 수 없다" 하였다. 대저 강사(講肆)에서는 말로써 완벽[到底]하기를 귀히 여기고 선문(禪門)에서는 용(用)이 완벽함을 귀히 여기니, 그러므로 둘레 안의 글자가 가장 까닭이 있다 하였다.
현사가 대중에게 보이되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이 있는데 마하가섭에게 전하노라 한 것은 마치 달을 그린 것 같고, 조계(曹溪)가 불자(拂子)를 세운 것은 마치 달을 가리키는 것 같다" 하였는데 계수나무 바퀴란 곧 달이다.
「열반경(涅槃經)」에 세존께서 월애광(月愛光)을 놓으시니, 아사세왕(阿闍世王)의 뜨거운 번뇌가 서늘해졌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르되 "뉘 알았으랴? 계수나무 바퀴에 깃든 천 년의 넋이 묘하게 환한 광명되어 한 점의 가을이라" 하였으니, 가히 큰 자루가 손에 있으면 맑은 바람 언제나 몸에 미치리란 격이다.
무소뿔 부채의 화두를 염하고 송한 것이 가장 많아서 분명하기를 바랐으나 염관을 만나본 이는 일찍이 없었다. 만송이 만일 시자였다면 "나에게 무소뿔 부채를 건네달라"는 말을 듣자마자, 어찌 깃 · 창포 · 종이 · 대 · 비단 · 무소 등을 가리겠는가? 닿는 대로 문득 한 자루 들어올렸으리라. 무슨 까닭이겠는가? 비록 천만 가지 기교를 부렸다 한들 마침내 두 가지 바람은 없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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