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칙
법안이 발을 가리킴[法眼指簾]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스스이 많으면 법맥이 어지러워지고 법이 생기면 간교함이 뒤따른다. 병 없을 때 병을 미리 치료함이 자비[傷慈 : 傷은 悲]이기는 하나 나뭇가지가 있으면 나뭇가지를 휘어잡나니 어찌 화두를 들기에 방해되리요.
본칙 |
드노라.
법안(法眼)이 손으로 발[簾]을 가리키니
-모른다고도 못 할 것이요, 못 봤다고도 못 할 것이다.
이때 두 승이 있다가 동시에 가서 발을 걷어올리매
-함께 다니되 함께 걷지 않는구나.
법안이 이르되 "하나는 얻고 하나는 잃었다" 하였다.
-한 칼에 두 토막이 나는구나.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법안이 재(齊 : 공양) 전의 상참(上參)에 손으로 발을 가리키니, 두 승이 함께 가서 발을 걷어올리매, 법안이 이르되 "하나는 얻고 하나는 잃었다"고 했다는 것이다.
동선 제(東禪齊)가 이르되 "'상좌(上座)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니, 어떤 이는 이르기를 '그들이 속뜻을 밝히지 못해서 문득 가서 발을 걷어올렸다' 하고, 또 어떤 이는 이르기를 '가리킴을 받고 간 쪽은 얻었고 가리키지 않았는데 간 쪽은 잃었다' 하는데 그렇게 이해해서야 되겠는가? 옳지 못하다. 이미 그렇게 알기를 허용치 않았으니 다시 상좌들에게 묻거니와 어느 쪽이 얻었고, 어느 쪽이 잃었는가?"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흙탕물 속에거 흙덩이를 씻는 격이다" 하노라.
이런 화두는 법안뿐이 아니라 남전(南泉)도 어느날, 승에게 이르되 "밤 사이에 바람이 심했었지……" 하니, 승도 이르되 "밤 사이에 바람이 심했습니다" 하였다. 남전이 다시 이르되 "바람이 문 앞의 한 그루의 솔을 꺾었느니라" 하니, 승도 이르되 "바람이 문 앞의 한 그루의 솔을 꺾었습니다" 하였다. 남전이 다시 다른 승에게 이르되 "밤 사이에 바람이 심했었지……" 하니, 승이 이르되 "무슨 바람입니까?" 하였다. 남전이 이르되 "바람이 문 앞의 한 그루의 솔을 꺾었느니라" 하니, 승이 다시 묻되, "무슨 솔입니까?" 하매, 남전이 이르되 "하나는 얻고 하나는 잃었다" 하였다.
발을 가리키는 화두에는 사람을 위하는 계략이 뚜렷하게 있건만 두 승이 발을 걷은 것은 자신들의 분수 위에 자연히 두가닥의 길이 생긴 것이다. 법안은 우선 한 개의 도장을 찍어 주어 다시는 변동이 없게 하였으니, 법안의 분수에는 밝음과 어두움을 서로 섞어 죽이고 살리는 기개가 있었으니, 큰 사람의 경계는 보현만이 알 수 있다. 제방에서 모두가 생각하기를 "얻음과 잃음을 여의고, 옳고 그름을 잊음으로써 최상이 된다" 여기거늘, 법안이 도리어 시비의 바다, 득실의 구덩이로 들어가서 살 계교를 하였으니, 얻음과 잃음이 없는 사람이라야 천하의 얻음과 잃음을 평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만송이 이렇게 제창함에도 얻음도 있고 잃음도 있으며, 여러분이 이렇게 모여옴에도 얻음도 있고 잃음도 있으니, 오직 이해(利害)의 조짐을 깊이 밝힐 줄 아는 자만이 그 손해와 이익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경지를 일러 눈앞에 드러난 공안[現成公案]이라 부르기에 다시 감정할 필요가 없거니와 그가 거꾸로 쓰러짐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천동이 송사를 끌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송고 |
솔은 곧고, 가시는 굽었으며,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의 발은 짧으니
-꼼짝 말라.
복희씨와 황제씨 시절의 사람들은 평화도 어지러움도 모두 잊었도다.
-박통이 담장에 매달려 저절로 살이 찌도다.
그 평안함이여, 숨은 용이 못 밑에 있고
-부처의 눈으로도 눈치채지 못하고
그 초연함이여, 날아가는 새가 얽매임을 벗어났다.
-머리에 손을 얹고 멀리 바라보아도 미치지 못한다.
어쩌다 조사께서는 서쪽으로부터 오셨던가?
-윗 대들보가 비뚤어져서
그 속에 얻음과 잃음이 반반이 되었도다.
-밑의 기둥이 퉁그러졌다.
쑥거울 뭉치는 바람 따라 허공에 맴돌고
-업식(業識)이 망망해서 의거할 근본이 없다.
나룻배는 흐름을 가로질러 언덕에 이른다.
-물길 따라 돛을 다니 만나기 어려운 쾌적한 선편이라.
그 안에 영리한 납승이 있다면
-거리를 휩쓰는 취객에게야 누가 감히 승복하겠는가?
청량(淸涼 : 法眼)의 수단을 눈여겨보라.
-나의 여기에도 있겠지만 다만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옛사람이 마지 못해서 본분사(本分事)라 하였거니와 솔은 곧고 가시는 굽었으며, 따오기는 희고 까마귀는 검다는 말은 본래 「능엄경」에서 나온 것인데 천동이 인용[點化]하였다.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의 발은 짧다는 말은 「장자(莊子)」에 이르되 "길어도 남지 않고 짧아도 모자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리의 다리가 아무리 짧아도 이으면 병이 되고 학의 다리가 아무리 길어도 자르면 슬퍼한다" 하였고, 속담에는 이르되 "번민하지 않으려면 본분(本分)에 의지하라" 하였다.
평화도 어지러움도 모두 잊는다는 것이 어찌 복희씨, 황제씨 때의 사람뿐이겠는가? 공자가 이르되 "서방에 큰 성인이 있으니, 다스리지 않아도 어지럽지 않다" 하였으니,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이 곧 얻음과 잃음인데 3조께서는 이르되 "얻음과 잃음, 옳음과 그름을 일시에 놓아버리라" 하였다.
「주역(周易)」 건괘(乾卦)에, "초구(初九)는 잠긴 용이니, 작용이 없다" 하였고, "구사(九四)는 혹 연못에서 뛴다" 하였다.
진대기(秦臺記)에 이르기를 왕차중(王次仲)이 젊었을 때 창힐(蒼詰)의 고문(古文)을 변화시켜 예서(隸書)를 만들었는데 진시황(秦始皇)이 그를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 왕이 노하여 함거(檻車)에다 가두어 가지고 서울로 데리고 오게 했는데 도중에서 새로 변하여 굴레를 벗고 서산(西山)으로 날아가서 깃[翮] 두 개를 떨어뜨렸다 했으니, 지금의 위천현(嬀川縣)의 대핵와(大翮碢)가 바로 그곳이다.
이 구절은 상고의 풍물들이 출과 처[出處], 행과 장[行藏]이 제각기 자기 분수에 자리하고 있어서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기 전에도 약간의 경론과 공안이 있었으나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뒤로부터 문득 얻음과 잃음이 있게 되었음을 송한 것인데 어찌하여 발을 가리키기 이전에 알아내지 못하는고?
'바람 따라 허공에 맴돈다'는 구절과 '흐름을 가로질러 언덕에 이른다'는 구절은 두 승의 얻음과 잃음을 지적해낸 것이니, 천동에게 대단한 공부가 있더라도 그렇게 말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만일 활인검이 없다면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또 이르되 "그 안에 영리한 납승이 있다면 청량의 수단을 눈여겨보라" 하였다.
일러보라. 어떠한 법령에 근거하여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그대들이 방망이를 맞은 뒤에 그대들에게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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