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칙
앙산이 눈사자를 가리킴[仰山指雪]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얼음과 서리가 같은 빛이요, 눈[雪]과 달이 엇갈려 비추니 법신을 철저히 얼어 붙이고 어부(漁父)를 한가롭게 하도다. 그래도 감상할 수 있겠는가?
본칙 |
드노라.
앙산(仰山)이 눈사자[雪師子]를 가리키면서 이르되 "이 빛에 지나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니,
-앙산이 느닷없이 평지에서 곤두박질을 치는구나!
운문이 이르되 "그때에 문득 밀어 쓰러뜨렸어야 했을 것이다" 하였고,
-배[船]를 어쩌지 못해서 두레박을 쳐부수는구나.
설두는 이르되 "다만 밀어 쓰러뜨릴 줄만 알았고, 붙들어 일으킬 줄은 몰랐구나!" 하였다.
-길을 가다 억울한 꼴을 보면 칼을 뽑아 도와준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옛사람은 기회에 임하거나 사물을 만나면 곧 공겁(空劫) 이전의 한 토막 큰 일[一叚大事]을 밝혔으니 「법화경」에 이르시되 "순일하여 잡됨이 없고, 구족히 청백한 범행의 모습이라" 하였다.
어떤 이는 말하되 "흰빛은 뭇 빛의 근본이요, 일승은 모든 승(乘)의 근원이라"고 하면서도 흰빛 그 위에 다시 일이 있음은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앙산이 눈사자를 가리키면서 대중에게 보이되 "이 빛보다 지나는 것이 있겠는가?" 한 것이다.
우선 흰빛은 뭇 빛의 근본인데 눈빛이 지극히 희니, 어찌 이 빛보다 지나는 것이 있을 수 있으랴? 하는 뜻이겠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이미 빛이라고 한다면 반드시 눈과 마주쳐야 한다. 이보다 지나는 빛은 오직 빛없는 것으로서 눈과 상대하지 않아야 한다" 하노라. 그러므로 운문이 이르기를 "그때에 문득 밀어 쓰러뜨렸어야 했다" 하였으니, 만일 외곬으로 지극히 희거나 흰빛이 없는 곳에서 알아내려고 한다면 도리어 빛없는 경계에 떨어진다. 그러기에 설두는 다시 한 가닥의 살길을 지적해내되 밀어 쓰러뜨린 자리에서 다시 붙들어 일으키려 하였거니와 불안(佛眼)은 이르되 "만일 거기에서 붙들어 일으킨다면 무슨 순서가 있겠는가?"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만일 다른 종파라면 굳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동상의 종풍에는 바야흐로 쓰러질 때에 문득 일어나고 바야흐로 일어날 때에 쓰러지는 시절이 있음을 안 뒤에야 일어남과 쓰러짐이 동시가 될 것이요, 일어나고 쓰러짐을 세우지 않게 된 뒤엔 다시 짚세기를 사 짊어지고 30년쯤 행각을 해야 한다" 하노라.
듣지 못했는가? 불각(佛覺)이 송하되 "한 빛뿐인 지날 것 없는 경지를 사람들께 보이니 / 백은(白銀)의 세계 속에서 기지개를 펴도다 / 초연히 밀어 쓰러뜨렸다가 다시 일으켰으나 / 그 어찌 봄바람에 햇빛 도타워지는 것만이야 하리요?"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해돋은 뒤에 한바탕의 허무함[一場懡㦬]이로다" 하노라.
어떤 무리의 학인들은 운문이 밀어 쓰러뜨리고 설두가 붙들어 일으킨 것을 보고는 문득 "기(機)와 봉(鋒)이 엇바뀌고 큰 작용이 방위가 없다는 생각을 짓고는 한 빛인 쪽을 보면 빛 있는 쪽은 알 수 없다"고 함으로써 종지(宗旨)와 혈맥을 삼거니와 이미 불각(佛覺)의 분명한 증거가 있다. 만일 믿어지지 않거든 다시 천동에게 물으라.
송고 |
하나는 쓰러뜨리고 하나는 일으키니 눈 덮인 뜰의 눈사자로다.
-활구 같기도 하다.
법을 범할까 삼가면서 어질기를 생각하고
-법 아는 자가 있을까 두렵다.
할 일에 용감하여 의리를 보인다.
-길을 가다가 억울한 자를 만났다.
맑은 빛이 눈에 비치니 집을 미혹한 듯하고
-동서를 가리지 못한다.
명백한 데로 몸을 돌렸으나 도리어 지위에 떨어진다.
-다시 한 층의 다락에 오른다.
납자의 가풍이여, 끝내 의지할 곳 없으니
-그런 대로 한평생 보내리.
같이 죽고 같이 살거니 어찌 여기와 저기를 따지랴?
-도끼로 쪼개도 갈라지지 않는다.
따사로운 소식이 매화송이 터뜨리니 봄이 찬 가지에 이르렀고
-반혼향(返魂香)을 얻겠군!
싸늘한 회오리에 잎이 떨어지니 가을이 장마물을 맑히도다.
-와서 도독고(塗毒鼓)를 친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운문은 한결같이 쓰러뜨리고 설두는 한결같이 붙들어 일으켰는데 앙산이 눈사자를 가리킨 것은 이러한 빛을 지나기를 바란 것이니, 이 세 가지는 솥의 발과 같아서 하나가 없어도 안 된다.
3현(三玄)과 3요(三要)가 모두 여기에 있기에 앙산은 사람들이 밝고 흰 자리에 앉아 있을까 걱정하였으니, 어찌 '범함을 삼가고 어질기를 생각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들께 지적해 주어서 이 빛을 뛰어넘게 하였으니, 어찌 '할 일에 용감하여 의리를 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노어(魯語 : 논어)」에 이르되 "의로움을 보고 하지 않는 것은 용맹스럽지 못하다" 하였는데 운문이 다시 한결같은 빛 쪽에만 앉아 있을까 걱정하였으니, 이 어찌 '법을 범할까 조심하면서 어질기를 생각한 것'이 아니며, 문득 밀어서 쓰러뜨리니 또한 용감하여 의리를 보인것이 아니겠는가. 설두도 사람들이 다만 밀어 쓰러뜨릴 줄만 알까 두려워했으니 이는 법을 범할까 조심하면서 어질기를 생각한 것이나 다시 능히 붙들어 일으키니 용감스럽고 의리를 행한 것이다.
듣지 못했는가? 조주가 이르기를 "노승은 밝고 흰 데 있지 않다" 했으니, 그 까닭은 맑은 빛이 눈에 비치니 스스로가 자기의 집을 미혹한 것 같고, 밝고 흰 데로 몸을 돌렸으나 도리어 지위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밀어 쓰러뜨릴 줄만 알고 붙들어 일으킬 줄 모른다면 무엇에 쓰겠는가?
진짜 납승[本色衲僧]은 구슬이 소반 위에 구르듯이, 같이 죽고 같이 살건만 생사에 있지 않고, 피차가 없지만 방편으로 피차를 세우나니, 마지막의 두 구절은 때로는 태양문(太陽門) 밑이요, 때로는 명월당(明月堂) 앞이다. 만고의 끝없는 허공이 하루아침의 풍월(風月) 거리요, 아침 버섯[朝菌]이며 쓰르라미[蟪蛄]로다.
일러보라. 지금은 어떤 시절인고? 우선 고목(枯木)을 따르려니 얼어서 여윈 모습 같고 장차 봄바람을 좇으려니, 다시 쥐불[燒瘢 : 초봄에 논두렁 태우기]을 겪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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