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中 제34칙 풍혈의 한 티끌[風穴一塵]

쪽빛마루 2016. 4. 13. 16:33

제34칙

풍혈의 한 티끌[風穴一塵]

 

 대중에게 보이시다.

 맨손 · 맨주먹으로 천 가지 만 가지 변화를 일으키는도다. 비록 없는 것을 있게 만들기는 하였으나 거짓을 희롱하고 진실을 흉내낸 것임에야 어찌하겠는가? 일러보라. 그 기본이 있던가?

 

본칙

 드노라.

 풍혈(風穴)이 수어(垂語)하되 "만일 한 티끌을 세우면 나라가 흥성(興盛)하고,

 -얻고 보니 본래 있던 것이요,

 

 한 티끌을 세우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 하니,

 -잃었다지만 본래 없는 것이다.

 

 설두(雪竇)가 주장자를 들어올리고 이르되

 -이는 세우는 것인가? 세우지 않는 것인가?

 

 "같이 살고 같이 죽을 납승은 없는가?" 하였다.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적을 뿐입니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설두가 주장자를 든 뜻은 티끌을 세운다는 데 있으니 송하되 "촌 노인이 비록 (근심에) 눈썹을 펴지는 못해도 집안과 나라의 웅대하 기틀을 도모하나니" 하였고, 또 "모신과 맹장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였으니, 이는 "같이 살고 같이죽을 납승은 없는가?" 한 것을 송한 것이며, "만 리의 맑은 바람만이 스스로 알 뿐이다" 라고 하였다.

 "촌 노인이 눈썹을 펴지는 못한다" 한 것은 화두가 자세히 들어 있지 않았으니, 본록(本錄)에는 다음과 같다.

 풍혈이 상당하여 이르되 "만일 한 티끌을 세우면 나라가 흥하거니와 촌 노인은 이마를 찡그리고, 한 티끌을 세우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거니와 촌 노인은 평온해한다. 여기에서 밝혀내면 그대들에게는 몫이 없는지라 완전히 노승의 몫이요, 여기에서 밝혀내지 못하면 노승이 곧 그대들이니, 그대들과 노승은 천하 사람들을 깨닫게 하기도 하고 미혹하게 하기도 한다. 그대들을 알고자 하는가?" 하고는 왼쪽으로 손뼉을 한 번 치고 이르되 "이것이로구나!" 하고, "노승을 알고자 하는가?" 하고는 오른쪽으로 손뼉을 한 번 치고는 "이것이로구나!" 하였다.

 운문은 이에 대해 이르되 "이것[這裏]이라면 쉽지만 저것[那裏]이라면 어렵다!" 하였고, 낭야 각(琅琊覺)은 이르되 "표주박 던지는 점[杓卜]으로 허공의 소리를 듣는다"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운문은 화살 위에다 촉[尖]을 더하고 낭야는 뒤통수에서 말뚝을 뽑아낸 격이다" 하노라. 이 또한 한 티끌을 세우느냐, 폐하느냐에 따라 나라가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도리이기는 하나 그 실제의 중심 말뚝이야 어찌 일찍이 조그만치인들 요동함이 있겠는가?

 설두는 불사의 문[佛事門中]에서는 한 법도 버리지 않는 자세였거니와, 천동은 실제의 이치[實際理地]에는 한 티끌도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까지 겸하여, 두 법을 가지런히 시행하면서 동시에 드러내어 송했다.

 

송고

 백발의 늙은이가 위수에서 낚시를 드리웠으나

 -늙어가면서 마음을 쉴 줄 모르고

 

 그 어찌 수양산의 굶어죽은 이와 같으랴?

 -젊어서는 노력을 안했구나!

 

 다만 한 티끌에 따라 변화가 생겼을 뿐이니,

 -주장자를 들어 일으키면서 이르되 "보라" 하였다.

 

 높은 명성, 위대한 업적, 모두 잊기 어렵다.

 -주장자를 던지면서 이르되 "설두가 아직 있도다" 하였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서백(西伯)이 사냥을 나가려는데 점 치는 이가 사뢰되 "얻을 바는 곰도 아니요, 말곰도 아니요, 칡범도 아니요, 범도 아니라 패왕(霸王)의 보좌로소이다" 하였는데, 과연 여상(呂尙 : 太公望)을 위수(渭水)의 남쪽에서 만났다. 그를 만나자 크게 기뻐하면서 이르되 "우리 선군(先君)이신 태공께서 일찍이 이르시기를 '장차 큰 성인이 주(周)로 오실 것이라' 하셨는데 우리 태공께서 그대를 희망하신 지가 오랩니다" 하였다. 그러므로 태공망이라 부르게 되었고, 왕사로 추대하였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로서 나라를 서로 양보하다가 마침내는 모두 멸망했다. 나중에 무왕(武王)이 주(紂=殷王)를 공벌하려 할 때에, 말고삐를 붙들고 간하되 "아버지가 죽어도 장사도 지내지 않더니, 마침내 전쟁을 일으키니 효자라 하겠는가? 신하로서 임금을 죽이는 것을 인자라 하겠는가?" 하니, 좌우가 죽이려 하거늘 태공이 이르되 "이는 의인(義人)입니다" 하고는 붙들어 일으켜주고 떠났다. 무왕이 끝내 은을 정복하여 천하가 주를 따르게 되니, 백이와 숙제는 부끄러이 여겨 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 하고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꺾어먹다가 굶어 죽었다. 태공은 은을 쳐서 주를 떠받드니, 나라가 흥성한 것이요, 백이와 숙제는 나라를 사랑하고 굶어죽었으니, 나라가 망한 것이다. 현수(賢首)국사는 오직 한티끌을 변태시켜 백 가지 법문을 설했다. 높은 이름은 백이와 숙제요, 위대한 업적은 태공망이다.

 낙포(洛浦)가 이르되 "촌 노인의 문 앞에서는 조정의 일을 이야기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편안히 농사에 힘쓸지언정 일찍이 이마를 찡그릴 일이 없었다" 하였는데, 무슨 소리인가? 작용없는 경지가 진짜 작용있는 경지로 이루어지고, 좋은 인연이 곧 나쁜 인연으로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