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칙
조주, 바리때를 씻으라[趙州洗鉢]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밥이 오면 입을 벌리고 졸음이 오면 눈을 감는다. 얼굴을 씻을 때에 콧구멍을 만질 수 있고 신을 신을 때 발꿈치를 더듬게 된다. 언제 화두를 놓치는가 횃불을 들고 밤이 깊도록 따로이 찾아보라. 어찌해야 만날 수 있을까?
본칙 |
드노라.
어떤 승이 조주에게 묻되 "학인이 처음으로 총림에 들어왔으니, 스님께서 지시해주십시오" 하니,
-총림도 그대를 미워하지는 않았는데…….
조주가 이르되 "죽을 먹었느냐?" 하였다.
-순수한 황금이됴 형산의 백옥이라.
승이 이르되 "먹었습니다" 하니,
-오래된 납승도 이 신참만은 못하겠다.
조주가 이르되 "바리때를 씻으라" 하였다.
-잘못 사람을 시기하지 말라.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곧은 낚시로 용을 낚는다는 말이 이미 칠통(漆桶)처럼 둔한 무리였고 낚시에서 세 치 떨어진다 말이 이미 강자(舡子)를 이긴 협산(夾山)으로 하여금 배를 차지하게 했다. 사람들이 자격(分)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나 대체로 먹이를 탐내다가 낚시를 삼키는 꼴이거니와 저 조주를 보라. 낚싯대를 꺾어버리지도 않고, 배를 걷어차 뒤집지도 않은 채 돌다리[石橋] 위에 한가로이 앉았거나 외나무다리[略彴] 옆에서 세월을 보내도 저절로 언덕을 올라와서 손아귀에 드는 자가 있는 것이다.
본록(本錄)에는 그 승이 이를 인하여 깨달았다 하였으니, 가히 장대 끝의 낚싯줄은 그대 마음대로 희롱하시오마는 푸른 파도를 범하지 않는 것은 각자에게 달렸다 할 것이니, 조주가 임공자(任公子 : 장자에 나오는 인물)처럼 앞에서 뜻을 얻었는데 천동이 뒤에서 뱃전을 두드려 주는 것을 다시 보라. 그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고 |
죽을 다 먹자 발우를 씻으라 하니,
-쾌속한 인편은 만나기 어렵다.
활연히 트인 마음바탕은 저절로 부합된다.
-오늘뿐이 아니다.
지금에 넉넉히 참구란 총림의 나그네여,
-역시 죽을 먹고는 바리때를 씻는다.
일러보라. 그 사이에 깨달음이 있었더냐?
-한 사람이 거짓을 전하면 만 사람이 사실처럼 전한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영운(靈雲)이 복사꽃을 보자 도를 깨닫고 위산에게 게송을 바치니, 위산이 이르되 "반연을 좇아 들어온 자는 영원히 물러나지 않으리라" 하였는데, 현사(玄沙)가 전해듣고 이르되 "매우 매우 당연하신 분부이나 감히 말씀드리는 바는 노형(老兄 : 영운)은 아직 사무치지는 못했습니다" 하였다. 영운이 이 말을 전해듣고 이르되 "화상은 깨달으셨습니까?" 하니, 현사가 이르되 "그렇게 해야 된다" 하였다.
천동은 그 승이 깨달음을 얻어, 마음바탕이 서로 계합한 경지를 송한 것이다. 그 승은 처음으로 총림에 들어와서 크게 깨닫고, 크게 사무치겠다고 외쳤으니, 오래 참구한 총림의 선객들은 일러보라. 깨달음이 있는가 없는가 하였으니, 이런 것을 징문(徵問)이라 한다.
설두는 이르되 "본래 미혹도 깨달음도 없다고 하는 이가 삼대[麻] 같이 수도 없건만 오직 영운만을 작가(作家)라고 허용한다" 하였는데, 현사는 이르되 "아직 사무치지는 못했다" 하였고, 설두는 "홀로 작가라고 허용한다" 하였으니, 서씨네 여섯째[徐六]가 송판을 지고 솔밭을 지나는 격이라, 제각기 한 쪽만 보는 꼴이다. 일러보라. 바리때를 씻는 승이 깨달음이 있었느냐?
태평은 본래 장군이 이룩하는 것이지만 장군이 태평스러워지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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