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中 제40칙 운문의 흑과 백[雲門白黑]

쪽빛마루 2016. 4. 16. 05:05

제40칙

운문의 흑과 백[雲門白黑]

 

 

 대중에게 보이시다.

 스승의 지혜[機輪]가 움직이는 곳에 지혜로운 눈도 어리둥절해지고 보배의 거울이 열릴 때에 가느다란 티끌도 피하지 못한다. 주먹을 펴서 차별의 경지에 떨어지지 않을 때가 사물에 응하매 시기를 잘 안다. 두 칼날이 서로 만날 때엔 어떻게 피할꼬?

 

본칙

 드노라.

 운문이 건봉(乾峰)에게 묻되 "스님께서 대답을 해주십시오" 하니,

 -빈 머리에는 정수리도, 턱도 없다.

 

 건봉이 이르되 "노승에게 이르렀는가?" 하였다.

 -벌써 그대에게 대답해 마쳤다.

 

 운문이 이르되 "그러면 제가 늦었습니다" 하니,

 -사양하면 남음이 있다.

 

 건봉이 이르되 "그랬더냐? 그랬더냐?" 하매,

 -결코 그렇다고 이해하지 말라.

 

 운문이 이르되 "후백(侯白) 뿐이라 여겼는데 다시 후흑(侯黑)이 있도다" 하였다.

 -좋은 솜씨에서는 좋은 수가 나오지 않는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미란왕(彌闌王)이 나선(那先)존자에게 묻되 "내가 질문을 하겠으니, 스승께서 대답을 해주시겠도?" 하니, 나선이 대답하되 "물으소서" 하였다. 왕이 이르되 "나는 이미 다 물었소" 하니, 나선이 이르되 "나도 이미 대답해 마쳤습니다" 하였다. 왕이 묻되 "무엇을 대답하셨소?" 하니, 나선이 대답하되 "대왕께서는 무엇을 물으셨습니까?" 하였다. 왕이 이르되 "나는 물은 바가 없소" 하니, 나선도 대답하되 "나도 대답한 바가 없습니다" 하였으니, 이는 오히려 찾아 규명할 수 있는 일이거니와 운문이 물은 곳은 마치 맑은 하늘에서 번개가 치는 것 같고, 건봉이 대답한 곳은 마치 가문 땅에 우레가 치는 격이다.

 쌍으로 놓고, 쌍으로 거두기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머리도 있고 꼬리도 있음을 보게 되리니, 이것이 납승이 아니면 보지 못하고 작가가 아니면 보지 못하는 도리이다.

 천동화상은 이 부문에 깊숙이 들어와서 다음과 같이 송했다.

 

송고

 활시위와 화살이 서로 물렸고

 -높고 낮음에 두루 응한다.

 

 그물의 구슬이 마주 대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

 

 백 발을 쏘아 백 번 맞추니, 화살마다 헛되지않고,

 -상대를 겨냥함에 기준이 있다.

 

 뭇 경개를 거두니, 광채와 광채가 걸림이 없다.

 -홀로 빛나서 삿됨이 없다.

 

 언구(言句)의 총지(總持)를 얻었고,

 -말을 내뱉으면 문장을 이룬다.

 

 오가는 동작의 삼매에 머물렀다.

 -일거 일동이 박자에 맞는다.

 

 그 사이가 묘함이여, 편(偏)과 원(圓)이 엇바뀌고

 -구슬이 소반 위를 달리는 것 같다.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함이여, 가로와 세로에 자재하다.

 -바른 영이 시행되는 시기를 살피라.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활이 활시위에 걸렸으니, 쏘지 않을 수 없다고 한 것은, 운문이 불은 기봉(機峰)이 예리해서 범접할 수 없음을 송한 것이요, 그물의 구슬이 마주 대했다는 것은 건봉이 대답한 곳이 손과 주인이 뒤섞여 물음이 대답 속에 있고 대답이 물음 속에 있음을 송한 것이다.

 백 번 쏘아 백 번 맞춘다 한 것은 운문이 이르되 "제가 늦었습니다" 한 것을 송한 것이니, 지각(智覺)이 이르되 "어떤 사람이 땅을 향해 활을 쏘면 맞지 않을 리가 없다"고 한 것과 같다.

 빛이 얼기설기 얽히었다 함은 사사무애의 도리이니, 이는 건봉이 이르되 "그랬더냐?" 한 것을 송한 것이다. 「화엄경소」에 이르되 "제석천왕의 궁전에는 구슬을 꿰어 그물을 만들었는데 빛과 그림자가 서로 비추어 겹겹이 다함이 없다" 하였다. 이는 공안의 대의를 송한 것이니 구절구절을 꼭 배대해서 국집[膠柱調絃]할 필요는 없다.

 운문이 이르되 "후백 뿐이라 여겼는데 다시 후흑(侯黑)이 있구나!" 한 것은 수(隋)나라 때, 후백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자는 군소(君素)였고, 익살과 말재주가 능숙한 사람이었다. 대장군 양소(楊素)가 그를 보고 잘 아는 터이라「정이기(旌異記)」를 찬술했는데 인간과 신의 보응이 심히 자세하여 가히 볼 만하다. 당나라 때의 이백(李白)은 시에 능했는데, 나중에 이적(李赤)이라는 자가 이백의 흉내를 냈으나 전혀 비슷하지도 않아서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제 후흑이라는 것도 역시 그러한 종류이다. 어떤 책에는 이르되 "나는 벌써 후백이었는데 그대 다시 후흑이라" 하였으니, 더욱 심하다는 뜻이다.

 총지(總持)에 세 종류가 있으니, 많은 글자, 한 글자, 글자 없음[無字]으로서 모든 법문을 총괄해 지닌다는 뜻이다. 삼매는 정수(正受), 즉 바른 선정이다. 천동의 송에, 편과 원[偏圓]이라 함은 이와 사[理事]를 가리킨다. 관국사(觀國師 : 청량)께서 이르되 "이치는 원하고 말은 편하니 말이 생기면 이치는 죽는다" 하였고, 천태지관에 이르되 "원이삼점(圓伊三點)은 삼수변의 세 점처럼 세로로 놓인 것도 아니며, 불화변의 네 점처럼 가로놓인 것도 아니다. 세로로 삼제를 다했기에 높다 하고 가로로 시방에 두루했기에 넓다" 한다. 그러므로 「법화경」에 이르되 "그 수레는 높고 넓다" 하였다.

 천동은 곁으로 교해(敎海)까지도 통달하고, 훤하게 이론의 하늘을 꿰뚫었다. 운문과 건봉이 글자없는 비를 세우자, 천동이 노래를 부르되 말없는 시로 들어갔으니, 정녕 양수(楊修)가 처음으로 젊은 며느리[幼婦]라는 글을 보고, 보자마자 묘할 묘[妙]자임을 안 것과 같다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