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中 제53칙 황벽의 지게미 먹기[黃檗噇糟]

쪽빛마루 2016. 4. 23. 05:34

제53칙

황벽의 지게미 먹기[黃檗噇糟]

 

 

 대중에게 보이시다.

 계기[機]에 임하여 부처를 보지 못하고 크게 깨달음에 스승이 존재하지 않는다. 건곤을 안정시키는 검(劒)은 인정(人情)이 없고 호랑이와 물소를 사로잡는 기개에는 성스러운 지해[聖解]가 없다. 일러보라, 이는 어떤 사람의 계략인가?

 

본칙

 드노라.

 황벽(黃蘗)이 대중에게 보이되 "그대들은 모두 술지게미[酒糟]나 씹는 첨지들이다.

 -황벽의 문하이겠지.

 

 그렇게 행각(行脚)해서야 어찌 오늘이 있을 수 있겠는가?

 -지금이 이미 옛날 같지 못하니 뒷날은 마땅히 오늘 같지 못하리라.

 

 대당국(大唐國) 안에 선사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하니,
 -눈이 사해(四海)에 높았다.

 

 어떤 승이 나서서 이르되 "지금 제방에서 무리를 이끌고 대중을 거느리는 분들이 있음은 어찌합니까?" 하매,

 -황벽도 거기에 들지.

 

 황벽이 이르되 "선(禪)이 없다고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선사가 없다고 했을 뿐이다" 하였다.

 -겨우 반쯤은 구제되었군!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이 화두는 너무 간략해졌다. 만일 전부를 든다면 이렇게 된다.

 어느날, 상당하여 이르되 "그대들 모두는 무엇을 구하는가?" 하고는 이어 몽둥이로 내쫓았다. 대중이 흩어지지 않으니, 선사께서 다시 이르되 "그대들은 모두 술지게미나 씹는 첨지들이다" 하였으니, 당나라 때에는 사람을 꾸짖을 때 술지게미를 씹는다는 말을 즐겨 썼다.

 제환공(齊桓公)이 당상(堂上)에서 글을 읽는데 수레를 깎는 편씨[輪扁]가 당하(堂下)에서 수레를 깎다가 망치와 끌을 놓고 올라와서 이렇게 물었다. "감히 묻잡노니, 공께서 읽으시는 것은 누구의 말씀입니까?" 공이 대답하되 "성현들의 전적이니라" 하였다. 편이 다시 묻되 "성인이 계십니까?" 하니, 공이 대답하되 "이미 떠나셨느니라" 하였다. 편이 다시 말하되 "그렇다면 공께서 읽으시는 것은 옛사람의 지게미입니다" 하였다. 공이 이르되 "과인이 글을 읽는데 수레나 깎는 주제에 무엇을 안다는 것인가? 대꾸가 있으면 가하겠지만 대꾸가 없으면 죽어야 하리라" 하니, 편이 이르되 "신이 신의 일로써 관찰하건데, 수레를 깎는데 느슨히 하면 헐거워서 견고하지 못하고, 꽉 조이면 빡빡해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느슨히 하지도 않고 꽉 조이지도 않으려면 손에서 얻어지고 마음에서 느껴져야 합니다. 입으로는 말할 수 없으나 묘함[數]은 그 사이에 존재합니다. 신도 신의 자식에게 가르치지 못하고 자식 역시 신에게 배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신이 나이 칠십이 되도록 수레를 깎고 있습니다. 옛사람도 전하지 못하고 죽었을 터인즉, 공께서 읽으시는 것은 옛사람의 지게미입니다" 하였다.

 또 이르되 "그렇게 행각해서는 다른 사람의 웃음을 살 뿐이다" 하였으니, 팔백 명, 천 명 모인 곳을 보거든 얼른 떠나되 다만 열을 올리거나 소란을 피우기만을 도모하지 말라고 하였다. 산승이 행각할 때에 간혹 풀섶에서 어떤 첨지를 만나면 얼른 정수리에다 한 방망이 갈겨주어서 그에게 감각[痛痒]이 있으면 자루에다 쌀을 넣어서 공양했었다. 만일 그대들같이 전부 이렇게 수월한 자들이었다면 어찌 오늘 일[今日事 : 新薰]이 있었겠는가? 그대도 이미 행각하는 이라 불리운다면 역시 정신을 바싹 차리는 것이 좋겠다.

 대당국(大唐國) 안에 선사가 없다는 말을 아는가? 황벽 이후에 암두와 나산(羅山)이 이 법령 시행하기를 즐겼고, 근대에는 불일 북래(佛日北來 : 北來는 堯公?)와 경수의공(慶壽顗公)이 죽을 때까지 뜻에 맞는 이가 없으되 차라리 후사[嗣]가 끊어져 아무도 없어도 무방하게 여겼다. 향산 준(香山俊)화상과 우리 종조[叔祖]의 문손들도 이 영을 시행했는데 모르는 이는 가슴속으로 깨쳤다[點胷] 하거니와 간혹 분함을 모르는 자[不憤底]가 있으면 나서서 머리로 알기[承頭]를 바랐던 것인데 과연 한 승이 나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제방의 존숙(尊宿)들이 모두가 무리를 모아놓고 교화하는데 어찌하여 선사가 없다고 하십니까?" 하니, 황벽이 이르되 "선이 없다고 한 것이 아니라 다만 스승이 없다고 했을 뿐이니라" 한 것이다.

 위산이 이 일을 들어 앙산에게 묻되 "어떠한가?" 하니, 앙산이 이르되 "거위왕[鵝王]이 우유를 고르는 것이 실로 오리의 무리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하였더니, 위산이 이르되 "이는 실로 가리기 어려우니라" 하였다. 이에 오조 계(五祖戒)가 그 승의 말을 꺼내 다르게 말하되 "화상께서 도리를 말씀해주심에 감사합니다. 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선 소리[生言]에 익은 말씀[熟語]이요, 찬 입술[冷脣]에 담담한 혀[淡舌]로다" 하노라. 석문 총(石門聰)은 이르되 "황벽의 법문[垂示]은 기특하지 않은 바는 아니나, 한 납자에게 건드림[挨拶]을 당하자마자 외짝눈을 잃어버렸다"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그 승의 두 눈망울을 바꾸어버렸다" 하노라. 승천 종(承天宗)은 이르되 "오조 계의 눈빛이 사천하를 비추었다"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그래봤자 겨우 외짝눈이다" 하노라. "만일 황벽을 알아보려면 아직 멀었다"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과연!" 이라 하노라. "만일 정법안장은 붙들어 세우려면 모름지기 황벽종사 같은 분이라야 된다"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비단 위에 다시 꽃을 수놓는구나" 하노라.

 취암 진(翠岩眞)이 이르되 "제방에서 헤아려 따지고는 문득 이르기를 황벽이 그 승을 주저앉혔다 한다" 하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그 승을 붙들어 일으킨 줄은 모르는구나!" 하노라. 또 이르되 "황벽이 그 승이 나타나자 꼼짝도 못했다" 하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승과 속이 더욱 분명하니라" 하노라. 또 이르되 "무슨 까닭인가?" 취암이 문득 망설임을 일으켰으나 안개 속의 이리[霧豹]나 못 속의 수달피[澤毛]도 일찍이 먹기를 금했었고 뜰의 새[庭禽]는 용맹을 기르다가 마침내는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닷새 뒤에 살펴보라" 하노라.

 황벽은 또 이르되 "그대들 보지 못했는가? 마대사 밑에 80여인이 도량에 앉았었는데 모두가 그럭저럭할 뿐이요, 대사의 정안(正眼)을 얻은 이는 겨우 두세 사람이었고, 그중에도 귀종(歸宗)이 가장 비슷했었느니라. 대저 출가한 이는 이상에 말한 일의 갈피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사조문하의 우두 융(牛頭融)대사도 횡설수설(橫說竪說) 했으나 위로 향하는 문빗장(關棙子]은 여전히 알지 못했으니, 이런 안목이 있어야 비로소 삿된 종당인가 바른 종당인가를 가려낼 수 있느니라" 하였다.

 간략히 들어 여기에 이르렀거나와 이 화두의 시종[始末]을 알려면 그뒤로 백십여 마디의 말씀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최초에 출세하여 사람들께 보이신 말씀이기 때문에 제방에 요란스레 퍼지고 있다. 그중에도 설두(雪竇)의 송과 불과(佛果)의 평창(評唱)이 가장 상세한데 그래도 본록(本錄)에서의 상당(上堂)의 바른 뜻이 빠져 있다. 이것을 천동이 송해내니, 진선진미(盡善盡美)를 극진했다 하노라.

 

송고

 갈래길 나누고 흰 실을 물들이기 지나치게 수로로웠고,

 -아는 일이 적을 때 번뇌도 적고

 

 잎을 엮고 꽃을 엮다가 조상[祖曹]들을 잊었네.

 -아는 사람 많을 때엔 번뇌도 많다.

 

 남쪽을 가리키는 조화의 칼자루는 묘한 손아귀에 있고

 -하루아침에 권세가 손에 들어왔으니

 

 물과 구름을 담는 그릇은 진도(甄陶)에서 나온다.

 -법령이 시행되는가를 살펴볼 때이다.

 

 번거롭고 자질구레한 것은 무찔러버리고

 -코끼리는 토끼 가는 길에 다니지 않고

 

 솜털 같은 분별도 용맹하게 깎아 없앤다.

 -크게 깨달은 이는 작은 절개에 구애되지 않는다.

 

 눈금 박힌 저울대요, 잘 비추는 거울이니

 -털끝만치도 어둡게 하지 않는다.

 

 옥으로 만든 자일런가, 금으로 만든 검일런가?

 -재고 헤아려 깊이 밝혀낸다.

 

 황벽노장이여, 가을 터럭까지 살피니

 -별똥만치도 그를 속일 수 없다.

 

 봄바람을 가로막되 도도하게 굴지 않네.

 -살피지 못했을 때를 미리 대비한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열자(列子)」 설부편(說符篇)에 이르기를, 양자(楊子)의 이웃 사람이 양(羊)을 잃었는데 이미 그 권속들을 다 인솔하고서도 양자의 시종들까지 따라가기를 청했다. 이에 양자가 이르되 "잃은 양은 하나인데 어찌하여 뒤쫓는 이는 많은가?" 하니, 이웃 사람이 대답하되 "갈래길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그들이 돌아온 뒤에 양을 찾았느냐고 물으니 없어졌다고 하였다. 어째서 없어졌느냐고 다시 물으니, 갈래길에 또 갈래길이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다.

 「묵자(墨子)」에 이르기를, 양혜왕(梁惠王) 때 도덕있는 사람이 길을 가다가 흰 실에다 물을 들이자 갖가지 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슬퍼하면서 이르되 "사람의 담연(湛然)함은 성인의 바탕[聖體]과 같거늘 나쁜 세속에 살기 때문에 물들어서 누(累)스럽게 되었도다" 하였다. 갈래길 나누고 흰 실을 물들이기 지나치게 수고롭다 할 때의 '노로(勞勞)'는 래(勑)와 효(効)의 반절로서 료(閙)라고 읽어야 하니 수고롭다는 뜻이다. 혹 수고로울 노(勞)자를 써도 무방하다.

 잎을 엮고 꽃을 엮는다는 것은 초조 달마의 송에 이르되 "내가 본래 이 땅에 온 뜻은 법을 전해 미혹한 유정을 깨우치려는 것이다. 한 꽃에 다섯 잎이 피니 열매는 저절로 이루어지리라" 한 데서 연유하니, 이것이 갈래길을 나누고 흰 실에 물을 들이는 것이다. 만일 대당국 안에 선사가 없다면 달마도 세상에 나올 길이 없을 것이다.

 「종경록(宗鏡錄)」에 "남쪽을 가리키는 수레[司南之車]란 본래 미혹한 자에게 보이기 위함이요, 담을 비추는 거울[照膽之鏡]이란 삿된 사람을 가려내기 위함이라" 하였다. 고금주(古今註)에 이르기를 황제(黃帝)가 치우(蚩尤)를 맞아 탁록(涿鹿)에서 싸우는데 선우가 큰 안개를 피워내어 사방을 가리거늘 황제가 수레에서 손가락으로 남쪽을 가리키니, 사졸들이 마침내는 선우를 생포하여 죽였다. 그리하여 남쪽을 가리키는 차[指南車]라는 호가 생겼다.

 진도(甄陶)라 함은 진류(陳留)의 「풍속기(風俗記)」에 이르기를 순(舜)이 진하(甄河)가에서 질그릇을 구었다고 하였는데 그뒤로 성씨가 되었다. 지금 성인 진()은 진(眞)으로 발음해야 한다. 이는 현묘한 불매가 뭇 형상을 빚어내고, 지혜의 바다가 만 가닥의 흐름을 총괄한다는 뜻이다.

 번거롭고 자질구레한 것은 무찔러버리고[屛割繁碎] 솜털 같은 분별도 깎아없앤다[剪除氄毛] 함은 갈래길의 차별을 버리고 잎을 엮는 곁가지를 잘라버린다는 뜻이다. 두(斗)를 형성(衡星 : 눈금박힌 저울대)이라고도 부르는데 사시를 운행케 한다는 뜻이요, 잘 비추는 거울[藻鑑]이란 매우 밝은 거울이란 뜻이다. 저울은 무게를 재는 것이요, 거울은 미추를 밝히는 것이다.

 옥으로 만든 자[玉尺]라 함은 「습유기(拾遺記)」에 이르기를, 우(禹)가 용문(龍門)에 갔더니 여덟 신이 옥으로 된 간자[玉簡]를 주었는데 길이가 두 치로되 천지도 잴 수 있었다고 하였다. 금으로 만든 검[金刀]이라 함은 옛날에 금착도(金錯刀)라는 돈과 금도서(金刀書)라는 주화가 있었다고 한다.

 이는 황벽이 제방납자들을 감별할 수 있는 저울대와 잣대를 손아귀에 넣었고, 겸하여 귀밝기로는 개미 코고는 소리까지 듣고 눈밝기로는 가을 터럭 끝까지 살필 수 있음을 송한 것이다. 그러니, 적을 때 방지하고 흐름이 약할 때 막아서 거센 봄바람을 가로막아 잠재우되 높은 체 도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성안사(大聖安寺)의 이(彛)화상의 죽순시(竹笋詩)에 이르되 "뿌리에다 바싹 칼을 내림이 좋으니 / 훗날 마디 밖에서 딴 가닥이 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