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中 제55칙 설봉의 반두 소임[雪峰飯頭]

쪽빛마루 2016. 4. 27. 05:22

제55칙

설봉의 반두 소임[雪峰飯頭]

 

 

 대중에게 보이시다.

 얼음은 물보다 차고 푸른 빛은 쪽[藍]에서 나왔다. 소견이 스승보다 나아야 겨우 전해받을 수 있으니 자식을 길러 아비에게 미치지 못하면 가문은 한 세대 쇠퇴한다. 일러보라. 아비의 기개를 빼앗을 자 그 누구더냐?

 

본칙

 드노라.

 설봉(雪峰)이 덕산(德山)에서 반두(飯頭) 소임을 보았다.

 -젊어서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어느날 밥이 늦으니, 덕산이 발우를 들고 법당으로 왔다.

 -늙어서도 마음을 쉬지 못하는구나.

 

 설봉이 이르되 "저 노장이 아직 종도 울리지 않고 북도 치지 않았는데 발우를 들고 어디를 가는가?" 하니,

 -어린애들에게 엄마를 꾸짖는 법을 가르쳤구먼!

 

 덕산이 얼른 방장으로 돌아갔다.

 -모두가 말없는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설봉이 이 일을 암두(岩頭)에게 이야기하니

 -집안에 반란이 생기는군.

 

 암두가 이르되 "변변치 못한 덕산이 마지막 구절[末後句]을 알지 못하는군!" 하였다.

 -애비가 자식의 허물을 숨길 줄 알면 정직함이 그 안에 있느니라.

 

 덕산이 듣고 시자를 시켜 암두를 불러다 놓고 이르되 "그대가 노승을 긍정치 않았다지?" 하니,

 -기름을 뿌려 불을 끄려고 하는구나!

 

 암두가 자기의 뜻을 사뢰매,

 -인간의 사사로운 말이 하늘에 들리기는 우레와 같다.

 

 덕산이 그만두고 물러갔다.

 -과연 알지 못했구나!

 

 덕산이 이튿날 상당하여서는 과연 다른 날보다 다르니

 -바람결을 따라 키를 돌린다.

 

 암두가 손뼉을 치고 웃으면서 이르되 "저 노장이 마지막 구절을 알아서 다행이다.

 -집안의 흉을 밖으로 퍼뜨리는구나!

 

 뒷날 천하의 사람이 아무도 그를 어쩌지 못하리라" 하였다.

 -콧구멍이 어째서 내 손아귀에 있는가?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설봉은 고개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갔고 덕산은 얼른 방장으로 돌아갔으니, 가장 잘 참구해야 할 대목이다. 암두가 은밀히 그 뜻을 사뢰었다 하니 그대 일러보라, 무엇이라 사뢰었겠는가? 덕산이 또 그만두고 물러갔으니, 가히 서로 만나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았건만 마음을 움찔했다 하면 문득 서로 알아준다는 격이다.

 덕산이 다음날 상당하여서는 과연 다른 날과 같지 않았으니, 이 또한 잘못으로써 잘못에 보태는 격이다. 암두가 승당앞까지 내려와서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면서 이르되 "저 노장이 마지막 구절을 알아서 다행이다. 뒷날 천하 사람이 아무도 그를 어쩌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결코 후배들을 덮어누르는 말로만 생각지는 말아야 한다. "비록 그러나 겨우 3년뿐이다" 했는데, 덕산은 과연 3년만에 입적했다.

 천각(天覺)이 송하되 "종소리 북소리 모두 없는데 발우를 들고 돌아가누나 / 암두가 슬쩍 던진 한마디 말씀이 우레같이 천지를 진동하였네 / 과연 3년밖에 살지 못하니 / 그에게 수기를 받은 꼴은 아닌지……"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그대의 이불 호청 찢어진 줄 아는 것은 그대와 같은 이불에서 잠을 잤음이 아니던가?" 하노라.

 명초(明招)가 덕산을 대신하여 이르되 "애닯다! 어디로 가는가, 어디로 가는가?"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콧구멍이 몽땅 남의 손아귀에 있구나" 하노라.

 설두가 이르되 "외눈박이 용이라고 일찍이 들었는데 / 알고보니 원래가 눈 하나인 용이로다" 한 말이 있거니와 덕산이 이빨 없는 호랑이인 줄은 전혀 몰랐다 하리라. 만일 암두가 알아내지 못했더라면 어찌 오늘과 내일이 같지 않음을 알겠는가?

 여러분은 마지막 구절을 알고자 하는가? 다만 노호(老胡)가 "알았다[知]고는 인정할 수 있으나 깨달았다[會]고는 허용할 수 없으니 반쯤 가리우고 반쯤 막아서 새나오는 허물도 모르는도다" 하였다.

 대위 철(大潙喆)이 이르되 "암두는 마치 높은 산의 돌이 갈라지는 것 같아서 백 리 밖의 길짐승이 자취를 숨기는 것과 같은데 만일 덕산의 도량(度量)이 깊고 밝지 않았더라면 어찌 어제와 오늘의 다름이 있으리요?" 했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이빨 없는 호랑이지만 발톱은 아직 있다" 하노라.

 노조(魯祖)는 무릇 승이 오는 것을 보면 문득 벽을 향해 앉았는데 남전이 듣고 이르되 "내가 평소에 그에게 이르기를 공겁 이전에 알아듣고, 부처님이 나타나시기 전에 알아보았더라도 반 밖에 얻지 못하리니, 그렇게 해서는 당나귀 해에나 얻으리라?" 하였는데 만일 남전의 뜻을 알면 암두를 볼 뿐만 아니라 천동과도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걸으리라. 천동의 송을 보라.

 

송고

 마지막 구절을 알고 있는가?

 -이것을 알려고 하지 말라. 알지 못하는 그것이 융통성이 있는 것이다.

 

 덕산부자(德山父子)는 지나치게 침묵으로 말한다.

 -겉이 밝으면 속의 어두움을 알지 못한다.

 

 모임 속에 강남의 나그네도 있으니

 -진(秦)에 사람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사람들 앞에서 자고곡(鷓鴣曲)을 부르지 말라.

 -멈출 수 있을까?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마지막 구절이 이와 같이 밝히기 어려우니, 덕산같이 곧고 준엄하며 암두같이 영리하고 준수한 이도 지금껏 설명[分雪]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듣지 못했는가? "몸이 태어나기는 쉬우나 몸을 벗어버리는 도는 응당 어렵다" 하였느니라.

 정곡(鄭谷)의 시에 이르되 "꽃피고 달 밝은 누각이 구구(九衢) 가까이 있는데 / 맑은 노래 한 곡조가 금 술병을 기울게 한다 / 모임 속에는 강남의 나그네로 있으니 / 봄바람을 향해 자고곡을 부르지 말라" 하였는데 천동이 마지막의 두 구절만 인용하여 다시 드는 수고를 덜었다.

 이렇게 든 뒤에는 어떠한고? (스승께서 자리에서 내려와 얼른 방장으로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