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中 제56칙 밀사의 흰 토끼[密師白兎]

쪽빛마루 2016. 4. 27. 05:31

제56칙

밀사의 흰 토끼[密師白兎]

 

 

 대중에게 보이시다.

 차라리 영겁 동안 지옥에 빠질지언정 여러 성인의 해탈을 구하지 않는다. 제바달다는 무간지옥에서도 3선천의 즐거움을 누렸고, 울두람불(鬱頭藍弗)은 유정천(有頂天)에서 삵[狸]의 몸으로 떨어졌다. 일러보라. 이해가 어느 곳에 있는가?

 

본칙

 드노라.

 밀사백(密師白)이 동산(洞山)과 함께 길을 가는데 흰 토끼가 눈앞을 달려 지나가니, 밀사백이 이르되 "날쌔구나!" 하였다.

 -풀숲으로 들어갔음이야 어찌하랴?

 

 동산이 묻되 "어떻습니까?" 하니,

 -그대 더딘 것이 이상스럽다.

 

 밀사백이 이르되 "마치 백의(白衣)가 재상벼슬을 배수한 것과 같다" 하였다.

 -선 자리에서 허공으로 오르기는 쉽다.

 

 동산이 이르되 "거만스럽게도 그런 말을 하시는군요!" 하니,

 -하마터면 지나칠 뻔했다.

 

 밀사백이 이르되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니,

 -사람이 범을 해칠 마음이 없으면 범도 사람을 해칠 생각이 없다.

 

 동산은 이르되 "여러 대의 번영이 잠깐 사이에 몰락했습니다" 하였다.

 -허공에서 떨어지기는 어렵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동산이 담주(潭州) 신산 승밀(神山僧密)선사와 물을 건너는데 동산이 묻되 "물을 건너는 법이 어떠합니까?" 하니, 승밀이 대답하되 "다리[脚]를 적시지 않습니다" 하였다. 동산이 다시 이르되 "거만스럽게도 그 따위 말을 하시는군요" 하니, 승말이 이르되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니, 승밀이 이르되 "다리가 젖지 않느니라" 하였다.

 교가(敎家)에도 성품과 닦음의 두 문이 있는데 동산은 공을 빌어 지위를 밝힘[借功明位]이라 하였다. 대체로 닦음을 인하여 깨달아서 범부로부터 성인에 들어감은 백의의 서민이 곧장 재상을 배수(拜授) 받는 것 같고, 만일 먼저 깨닫고 나중에 닦아서 성인으로부터 범부로 들어감은 마치 여러 대의 영화가 본래 존귀하였기에 비록 만 가지 형태로 몰락했으나 골격은 여전히 남는 것 같다. 그러기에 이르기를 "가난한 아들의 비유 속에 이 도리를 밝혔고, 구슬을 바치는 게송에서는 비단휘장을 친 속에 드러났다" 하였다.

 그대들 모두는 두 존숙의 견처(見處)를 보고자 하는가? 천동이 한 장의 공초로 처리한 게송을 보라.

 

송고

 서리와 눈을 힘으로 겨루고

 -가난하면 한 몸만을 선하게 하고

 

 구름 위의 하늘을 평지같이 걷는다.

 -현달하면 천하까지도 선하게 한다.

 

 유하혜(柳下惠)는 모국을 떠났고

 -쓴 박은 뿌리까지 쓰고

 

 사마상여(司馬相如)는 다리[昇仙橋]를 건넜다.

 -단 참외는 꼭지까지 달다.

 

 소씨[蕭何]와 조씨[曹參]의 꾀로 한(漢)을 일으켰고,

 -해바라기는 해를 따라 돌고

 

 소부와 허유는 몸과 마음으로 요(堯)를 피했다.

 -버들솜은 바람을 따라 나부낀다.

 

 영욕[寵辱]이 깜짝사인 줄을 깊이 믿는 터라.

 -깨달으려면 실답게 깨달아야 하고 참구하려면 실답게 참구해야 한다.

 

 진실한 생각으로 자취를 감추어 어부와 나무꾼이 섞인다.

 -그래도 신령한 거북이 진흙에 꼬리를 끄는 꼴을 면치 못하리.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쑥대는 비와 이슬을 탐내는데 소나무와 잣나무는 풍상을 견디어내니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송백의 절개를 알리로다. 이것이 인연을 따르는 법과 변하지 않는 법의 도리이다.

 여러 대에 누리던 영화가 일시에 몰락한다는 말씀은 힘있는 사람이라야 감당할 수 있으니 구름 위의 하늘을 평지같이 걸어서 한 번 뛰매 곧장 여래의 경지에 든다 하여도 이미 한걸음 늦는다. 여러 대의 영화이기에 본래 부귀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논어(論語)」에, 유하혜(柳夏惠)는 사사(士師 : 獄官) 벼슬을 했는데 세 번이나 쫓겨나니 사람들이 이르기를 "그대는 떠날 필요가 없지 않는가?" 하였다. 이에 유하혜가 이르되 "곧은 길로 사람을 섬기자면 어디를 간들 세 번 쫓겨나지 않을 수 있으랴마는 굽은 길로 사람을 섬긴다면 어찌 부모의 나라를 떠날 필요가 있겠는가?" 하였다.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는 견자(犬子)였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아홉 살 때에 남의 돼지목장에 가서 일을 해주다가 인상여(藺相如)가 경상(卿相)이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도 상여라고 개명하였다. 그리고는 돼지 치는 일을 버리고 글방으로 가니 주인이 때리면서 막았다. 선생이 사연을 묻고 똑똑함을 알고는 문 밖의 초암(草庵)에 묵게 하였으나, 10년 동안 책 한 권 주지 않고 떠나보냈다. 승선교(昇仙橋) 수레를 지나면서 기둥에 쓰기를 "사마(駟馬) 수레를 타지 않고는 이 다리를 지나지 않겠다" 하였는데, 나주에 자허부(子虛賦)라는 시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때 양득의(楊得意)라는 장군이 어느날 대궐 안에서 묵게 되었는데 이 시를 읊으니 황제가 이르기를 "그런 시를 지은 사람과 같은 시대에 태어나지 못함이 한이요" 하니, 장군이 아뢰기를 "현재 촉(蜀) 땅에 있습니다" 하였다. 황제가 가서 불러오라 명하매 함께 사마를 타고 승선교를 지나 입궐하여 시중(侍中)의 직위를 배수받았다.

 소하(蕭何)와 조참(曹參)은 한고조(漢高祖)의 창업을 도와 이룩했고, 소부와 허유는 요를 피해 귀를 씻고 소에게 물 먹이기를 멈춘 사람들이다. 노자(老子)가 이르기를 "영광과 욕됨이 놀라움과 같으니, 얻어도 놀라움 같고 잃어도 놀라움 같다" 하였다.

 위에 열거한 네 쌍과 여덟 가지 일이 모두가 한 구절은 밀사(密師)요, 한 구절은 동산(洞山)인데, 묘하구나! 규봉(圭峰)이 비유를 들되 "황족이 몰락하여 천민이 되었는데 오랫동안 습관이 성품이 되었다. 나중에 속량[薦拔]을 받아 본래의 지위를 회복하였으나 삼단(三端)과 육예(六藝)만은 다시 거듭 익혀야 배움의 힘이 바야흐로 완전해지는 것과 같다" 하였다.

 그러나 천동의 처지에서 보면 역시 계급에 떨어졌다고 하겠으니 듣지 못했는가? "영욕이 놀라움 같음을 깊이 믿는 터이라, 진실한 생각으로 자취를 감추어 어부와 나무꾼에 섞여 들더라" 하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