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칙
현사가 현에 이르다[玄沙到縣]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움직이면 그림자가 나타나고 깨달으면 티끌이 생긴다. 들어일으킬 때엔 분명하게 하고 놓아버릴 때엔 은밀하게 하는 본색도인(本色道人)과 마주했을 때엔 어떻게 이야기를 하겠는가?
본칙 |
드노라.
현사(玄沙)가 포전현(蒲田縣)에 이르니 갖가지 연극[百戱]으로 마중했다. 다음날 소당장로(小塘長老)에게 묻되 "어제의 그 숱한 시끄러움은 어디로 갔는가?" 하니,
-아직도 시끄러운데…….
소당이 가사자락을 들어보이매,
-과연 손이 바쁘고 다리가 떨리는구나!
현사가 이르되 "요조(尞+頁挑 : 尞+頁는 계교, 挑는 발광)로는 교섭할 길이 없느니라" 하였다.
-증거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복주(福州) 현사 종일(玄沙宗一)대사의 휘는 사비(師備)다. 짚신과 누더기에 소식[菲食]으로 태연히 지내니 설봉(雪峰)이 그의 고행을 소중히 여겨 항상 '비두타(備頭陀)라 불렀다.
세상에서 전하는 말에 현사가 영(嶺)을 나오지 않았다는 말과 보수(保壽)가 강을 건너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현사는 영을 나오다가 돌뿌리를 차서 발가락을 다치고는 이르되 "이 몸이 있지 않거늘 아픔이 어디서 오는가? 이 몸이 고통뿐이지만 끝내는 태어남이 없다. 그만두리라. 달마가 동토에 오지 않았고 2조도 서천에 간 적이 없다" 하고는 다시 돌아와서 「능엄경(楞嚴經)」을 열람하다가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근기에 따라 민첩하게 대응하되 수다라와 늘 부합되었다. 심지어는 설봉과 토론할 때에도 옳은 주장은 양보치 않으니[當仁不讓] 설봉이 이르되 "비두타는 다시 온 사람[再來人來人]이라" 하였다. 민(閔) 땅의 태수인 왕심지(王審知)와 영공(令公)인 왕연빈(王延彬)이 모두 스승의 예로써 대했고 대중은 항상 8 · 9백 명이었다.
현사가 포전현에 이르니 갖가지 연극으로 마중했는데 다음 날 소당장로에게 묻되 "어제의 그 숱한 시끄러움은 어디로 갔느냐?" 고 한 것이다. 이에 소당이 가사자락을 들어올려서 굳게 방어[緊峭]한 것은 무방하다 하겠으나 무엇보다도 시끄럽고 고요함, 어제와 오늘 아침이란 곳에 눈을 돌리다가 빤히 보이는 한 토막의 큰일을 그르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소당이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손에 닿는 대로 가사자락을 들어보였는데 현사가 이르되 "계교하고 발광하는 요조(尞+頁挑 )로는 교섭할 길이 없다" 하였으니 소당의 어느 곳이 교섭할 수 없는 곳인가? 현사는 그를 긍정한 것인가, 긍정치 않은 것인가? 대위 철(大潙喆)이 이르되 "대위는 그렇지 않으니 어떤 이가 물으면 다만 손가락을 한 번만 튕겼을 것이다. 만일 어떤 이가 나와서 이르기를 '계교하고 발광하는 요조로는 교섭할 길이 없다 한 것은 도리어 그를 긍정한 것이니 무슨 까닭이겠는가? 대장부가 범의 수염을 끄집는 일, 또한 본분의 일이기 때문이다' 한다면 일러보라. 이해(利害)가 어느 곳에 있는가?" 하였고, 또 이르되 "소당이 품에다 지극한 보배를 품었더니 다른 사람을 만나서 빛을 더했고 현사는 본분의 망치로 한 번 치매 빛이 천고(千古)에 흘렀다" 하였다. 이에 대해 법안은 다르게 이르되 "어제 얼마나 시끄러웠는가 했어야 할 것이다" 하였고, 법등(法燈)이 이르되 "오늘에 다시 웃음이 터진다" 했으니 두 존숙을 살피건대 같은 종파의 후손으로서 현사의 작용이 한결같이 밖의 장막을 너그러이 막아버리고 도리어 안으로 파고들어 어둠 속에서 화살을 겨누는 꼴임을 눈치챘거니와 천동은 사방으로 통하는 안목을 갖추어 그 가문의 장점 속의 단점을 꿰뚫어보고 철저히 읊었다.
송고 |
밤 골짜기에 배를 감추고
-남자는 속이기 어려우니라.
맑은 물에 돛을 올린다.
-어찌 죽은 물에 떨어질 수 있으랴.
용과 고기는 물이 생명인 줄 알지 못하면
-바둑을 두는 이는 곁의 사람보다 어리둥절하다.
부러진 저(箸)로 한 번 저어도 무방하리라.
-풀밭을 쳐서 뱀을 놀라게 한다.
현사 스승과 소당장로여,
-한 장의 공문에 공초를 받아야겠군!
함(函)과 뚜껑이요, 화살과 칼끝이며
-마지막 입을 열기는 쉽지만
탐색하는 장대요, 그림자 비추는 풀뭉치로다.
-추운 겨울을 견디는 마음은 보존키 어렵다.
잠겨 움추림이여, 늙은 거북이가 연잎에 숨었고
-몸을 숨긴 곳에 자취가 없도다.
훨훨 노님이여, 화려한 잉어가 마름[藻]을 희롱한다.
-자취가 없는 곳에 몸을 숨기지 말라.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현사가 어제의 시끄러움으로 물은 것은 마치 「장자(莊子)」 대종사편(大宗師篇)에 이르되 "배[舟]를 골짜기에 숨기고 산을 못에 숨긴 뒤에 견고하리라 여긴 이가 있었다. 그러나 밤중에 힘센 자가 짊어지고 달아나버렸건만 우매한 자는 알지 못했다. 작은 것을 큰 데다 감추는 것이 마땅하건만 도망칠 곳이 있었으니 만일 천하를 천하에 감추어 도망칠 곳이 없다면 이는 항상한 물건[恒物]의 큰 뜻이다" 하였는데, 천동은 현사가 어제와 오늘을 들어 물은 것을 배를 감추었으나 가만히 짊어지고 간 일에다 견준 것이다.
소당이 도리어 맑은 물, 고요한 호수로 와서 외로운 배를 띄웠으니, 이는 현중명( 玄中銘)에 이르기를 "죽은 물에 막혀 있을까 두렵다" 한 경지이니 현사의 말씀 속에서도 안목이 팔팔 살아서 사람들로 하여금 동정(動靜)의 근원을 알게 하려는 뜻이다.
와룡 구(臥龍球)화상이 이르되 "요긴한 곳을 얻고자 한다면 도리어 산하대지가 그대들을 위하여 그 일이 이미 항상하고 또 완벽함을 발명해주리니 만일 문수의 문으로 들어오면 온갖 유위의 토목, 와석들이 그대의 기연을 열도록 도와줄 것이요, 만일 관음의 문으로 들어오면 온갖 음향의 새우, 지렁이들이 그대의 기연을 열도록 도와줄 것이요, 만일 보현의 문으로 들어오면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이르리라. 내가 이 세 가지 문의 방편으로 그대에게 보이노니 마치 한 토막의 부러진 저로 바닷물을 저어서 어룡들로 하여금 물이 생명이 되는 줄 알게 하는 것과 같다. 만일 동정(動靜), 어묵(語默), 거래(去來)의 근원을 항상 안다면 벌써 헛되이 보내는 경지는 면한 것이라" 하였으니, 이는 현사가 사람을 위하는 곳을 송한 것이다.
만일 작가라면 함에 뚜껑 맞듯, 화살과 칼끝이 부딪치듯이, 탐색하는 장대와 그림자를 비추는 풀로 파정(把定)하고 방행(放行)하면서 가사자락을 든 곳과 교섭할 길이 없다. 한 곳에서 이게 무슨 도리인가를 알아내게 될 것이다.
「사기(史記)」 구책전(龜策傳)에 태사공(太史公)이 이르되 "내가 강남에 이르러 그 행사를 보고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거북이는 천 살이 되어야 비로소 연잎 위에 오른다' 하더라" 하였다. 이것이 교섭할 길 없는 도리로서 잠겨 움추려도 훨훨 노닐기에 방해롭지 않고 훨훨 노닐어도 잠겨 움추림이 방해롭지 않은 것이다. 요즘 어조도(魚藻圖)를 그릴 때 마름이란 물풀을 그리는데 그것은 파도를 따라 모양을 흔들면서 스스로 문채를 이룬다. 또 마름[藻]은 물의 풀이니 문채가 있는 물풀이라고도 한다. 「논어(論語)」에 산절(山節 : 포에 단청함)과 조절(藻棁 : 梁上小柱에 단청함)이란 말이 보인다.
이 두 노숙의 경지를 알고자 하는가? 의기(意氣)가 있을 때 의기를 더하고 풍류(風流)가 아닌 곳에 스스로 풍류롭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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