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칙
용아가 선판을 건네주다[龍牙過板]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큰 소리는 소리가 없고 큰 그릇은 느직하게 이루어진다. 매우 바쁘고 몹시 요란한 속에서 거짓 바보 시늉을 하면서 천 년을 일곱 번 옛날로 되돌리기까지 서두르지 않는다. 일러보라. 이는 어떠한 사람이던가?
본칙 |
드노라.
용아(龍牙)가 취미(翠微)에게 묻되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니,
-한 번 들면[拈] 한 번 새로워진다.
취미가 이르되 "나에게 선판(禪板)을 건네다오" 하였다.
-본전 챙기고 이자 생각하는구나.
용아가 선판을 집어서 건네주니
-멍청하고 어리숙하기는…….
취미가 받자마자 문득 때렸는데,
-그럴 줄 짐작했지.
용아가 이르되 "때리기야 마음대로 때리시오마는 분명한 것은 아직 조사께서 서쪽으로부터 오신 뜻은 없소이다" 하였다.
-반은 긍정하고 반은 긍정치 않는다.
또 임제에게 묻되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니,
-쇠가죽에 굳은살*이다
임제가 이르되 "나에게 포단(蒲團)을 건네다오" 하였다.
-든든한 밑천엔 동업자가 많나니
용아가 포단을 집어서 건네주니
-잘못을 가지고 잘못에 보탠다.
임제가 받자마자 문득 때렸다.
-손 뻗는 대로 뼈뭉치 주먹이라.
용아가 이르되 "때리기는 마음대로 때리시오마는 분명한 것은 아직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없습니다" 하였다.
-그토록 부드러움과 강함이 갖추어졌다니
용아가 뒷날 원(院)을 맡으니, 어떤 승이 묻되 "화상께서 그때 취미와 임제에게 조사의 뜻을 물으셨는데 두 존숙(尊宿)께서 밝히셨습니까?" 하니,
-가난한 이가 옛날의 빚을 생각하는 꼴이다.
용아가 이르되 "밝히기는 밝혔으나 분명한 것은 아직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없었느니라" 하였다.
-구운 벽돌이 바닥까지 얼어붙었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호남(湖南) 용아산(龍牙山) 거둔(居遁)선사는 처음에는 취미와 임제에게 참문했다가 나중에는 덕산(德山)과 동산(洞山)에게 참문했다. 어느날 동산에게 묻되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니, 동산이 이르되 "동산의 물이 거꾸로 흐르거든 그대에게 일러주리라" 하매, 선사는 깨달음을 얻었다. 불과(佛果)가 이르되 "용아가 그날 선판을 집어줄때에 어찌 때릴 줄을 몰랐겠는가마는 선원을 맡은 뒤 어떤 승이 묻기를 '화상께서 두 존숙을 뵈셨는데 그들을 긍정한 것입니까, 긍정치 않은 것입니까?' 하니, 용아가 이르기를 '긍정하기는 긍정한다마는 요는 아직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없더라' 하였으나, 불과는 이르노니 '산승은 그렇지 않다. 긍정하기도 아직 긍정할 수 없을 뿐더러 요는 아직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도 없다' 하리라" 하였다.
불일 고(佛日杲)선사가 송하되 "자경(子卿)이 선우(單于) 앞에 절하지 않고 / 끝까지 한왕[漢帝]의 법도를 지켰네 / 눈 내린 뒤에야 비로소 송백의 절개를 알고 / 어려운 일 끝에야 바야흐로 대장부를 보게 된다" 하였다. 설두(雪竇)는 한결같이 억눌렀지만 진여 모철(眞如慕喆)은 이르되 "취미와 임제는 가히 본분종사(本分宗師)라 할 것이요, 용아는 훌륭하게 수행[撥草瞻風]해서 후인들의 귀감(龜鑑)이 되기에 족하다" 하고, 이어 원에 머무른 뒤에 어떤 승이 물은 곳을 들고는 이르되 "용아는 앞을 바라보고 뒤를 돌아보매 병에 따라 약을 주었다. 그러나 대위(大潙 : 眞如)는 그러지 않으리니 승이 애당초 두 존숙이 밝혔는가 밝히지 못했는가를 묻자마자 등줄기에 방망이를 후려쳤더라면 취미와 임제를 살려낼 뿐만 아니라 물으러 온 승까지도 저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하였다.
만송은 이르노니 "진여 철은 임제 문하의 진짜 본분겸추(本分鉗鎚)이기에 놓치지 않았겠지만 용아의 팔꿈치 뒤의 신비로운 부적을 보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같은 종파에 속해 있는 천동의 안목이라야 하리라" 하노라.
송고 |
포단과 선판으로 용아를 대했건만
-편안함을 취하자니 방앗간도 감지덕지.
어찌하여 당해 근기[當機]로서 작가답지 못했던고?
-사람을 무는 개는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다.
눈 밝은 이 앞에서 바보됨[成裭]은 걱정할 바 아니나
-사람이 멀리 보는 식견이 없으면
천애(天涯)에 헤매게 될 것을 두려워했더라.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다.
허공에다 어찌 검을 걸리오마는
-검을 빌릴 일이 아니다.
은하수엔 도리어 뗏목을 띄우도다
-달리 위로 향하는 한 가닥 길이 있더라.
싹트지 않는 풀이 향상(香象)을 숨길 줄 알고
-부처의 눈으로도 눈치채지 못한다.
밑없는 광주리에 산 뱀[活蛇]을 담는다.
-예사로이 들어보이나 그대와는 다르다.
오늘의 강호에 무엇이 장애될 것 있으랴?
-태평성대엔 숨길 일이 없으니
사방으로 통하는 나루터엔 배와 수레 분주하다.
-어딘들 풍류가 아니랴?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용아의 포단과 선판을 취미와 임제가 대중 앞에서 집어달라고 했는데 그는 어찌하여 작가다운 용(用)을 내놓지 않았을까? 백장(百丈)이 여우[野狐]의 화두를 들고 나니, 황벽(黃蘗)이 묻되 "옛사람은 한마디를 잘못 대답하고도 여우의 몸을 받아 5백 생을 전전했으니 잘못 대답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됩니까?" 하였다. 백장이 이르되 "가까이 오라, 그대에게 말해주리라" 하매, 황벽이 앞으로 다가서면서 먼저 백장의 뺨을 한 대 때렸다. 백장이 이르되 "오랑캐의 수염은 붉다고 여겼는데 이제 보니 수염 붉은 오랑캐도 있구나!" 하였으니, 이것이 당해 근기로서 작가다운 모습이다.
용아도 작가가 아닌 것은 아니나 눈 밝은 이 앞에서는 바보됨을 걱정하지 않았으니 당해 근기로서 우레가 달리듯 번개가 쓸듯이 한 세대에 우뚝하기를 원하지 않은 것이다. 옛 시에 이르되 "일천 리 안의 풍광은 중추(中秋)의 달빛이요 / 십만 군대의 함성은 한밤중의 파도소리라" 했으니, 이른바 춥고 가난하고 저축한 것 없는 이의 경지인 것이다. 어떤 승이 경청(鏡淸)에게 묻되 "학인이 그 근원을 알지 못하였으니 스님께서 방편을 베풀어 주십시오" 하니, 경청이 이르되 "그게 무슨 근원인가?" 하고 되물었다. 승이 대답하되 "그 근원 말입니다" 하니, 경청이 이르되 "만일 그 근원이라면 어떻게 방편을 받아들이겠는가?" 하였다. 이때 곁에 있던 시자가 묻되 "지금까지의 것은 그를 바보되게 함[成裭]이옵니까?" 하니 경청이 이르되 "아니다." 하였다. 시자가 다시 묻되 "바보되게 하지 않음이옵니까?" 하니, 경청이 이르되 "아니다" 하였다. 시자가 다시 묻되 "화상의 높으신 뜻은 무엇이옵니까?" 하니, 경청이 이르되 "한 점의 먹물이 두 곳에서 용을 이루느니라" 하였다.
바보됨이란 즉 결박을 성취한다는 뜻이니 퍼뜨려서[流布] 가문을 욕되게 할까를 두려워한 것이다. 동산이 조산(曹山)에게 부촉하되 내가 스승 운암(雲岩)선사에게 보경삼매(宝鏡三昧)를 친히 인가받았는데 사리(事理)의 극칙에 이른 확적하고 요긴한 법이었다. 이제 그대에게 주노니 그대는 잘 보호해 지녀서 끊이지 않게 하라. 이 뒤로 만일 참된 법기(法器)를 만나거든 바야흐로 전해주되 모름지기 비밀히 형체를 드러내지 말라" 하였으니, 퍼뜨림[流布}에 떨어져서 후인들을 제접하기 어렵게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어떤 승이 동안 상찰(同安常察)에게 묻되 "어떤 것이 창과 방패[干戈]가 없는 경지입니까?" 하니, 동안이 대답하되 "허공에는 검을 걸 수 없고 옥토끼는 비늘을 입지 않느니라" 하였다. 「문세전(聞世傳)」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천하(天河)가 바다와 통했는데 바닷가에는 해마다 팔월이면 뗏목을 타고 어김없이 왕래하는 이가 있어 신의를 잃지 않았다. 박망후(博望侯) 장건(張騫)이 양식을 많이 싣고 뗏목을 타고 길을 떠났는데 홀연히 밤낮을 가리지 못하게 되었다가 갑자기 어느 곳에 이르니 성곽(城郭)과 거실(居室)이 보였다. 거실 안에는 직녀(織女)들이 많이 있었고 오직 한 남자가 소를 몰고 강가에 왔다가 물을 먹이지 않고 깜짝 놀라서 묻되 "어떤 사람이 여기에 왔는가?" 하였다. 장건이 묻되 "여기가 어디요?" 하니, 그가 대답하되 "그대는 촉(蜀)으로 가서 엄군평(嚴君平)에게 물으라" 하였다. 장건이 그의 말대로 하니, 군평이 이르되 "아무 해 아무 달에 객성(客星)이 두우(斗牛)를 침범했었다" 하였다.
그 이야기로 인해 기록한 「한서(漢書)」에는 장건이 하원(河源)을 끝까지 밟았다는 말과 사신의 임무를 맡아 멀리까지 갔다는 이야기는 실렸으나 천하(天河)의 이야기는 없다. 오직 박물지(博物志)에만 어떤 사람이 양식을 싣고 뗏목을 타고 천하에 이르러 소에게 물먹이는 남자를 보았다는 일과 군평에게 물어 객성이 두우를 침범했다고 한 일이 있으니 곧 이 사람이다.
이는 용아가 작용을 행야 할 기회에는 도리어 놓아버리고 놓아버린 뒤에는 딴전으로 주장을 내세우는 경지를 송한 것이다.
어떤 승이 조산(曹山)에게 묻되 "싹트지 않는 풀이 어찌해서 능히 향상(香象)을 숨길 수 있습니까?" 하니, 조산이 대답하되 "그대[闍梨]가 다행히 작가로구나!" 하였다. 또 조산에게 묻되 "어째서 그렇습니까?" 하니, "싹트지 않는 풀이기 때문이니라" 하였다.
"밑없는 광주리"라 함은 용아의 작용없는 큰 작용이다. 그러므로 향상은 당나귀의 발길질이 아니요, 산 뱀은 죽은 말씀 밑에 엎드려 있지 않는다. 용아가 대중에게 보이되 "제방에 참구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불조의 경지를 초월해야 하느니라. 신풍(新豊)화상이 이르기를 '불조의 말씀을 원수같이 여겨야 비로소 참구할 자격이 있다' 하였으니, 만일 초월하지 못하면 불조의 속임을 당할 것이니라" 하였다. 이때 어떤 승이 얼른 묻되 "불조에게 사람을 속이려는 마음이 있습니까?" 하니, 용아가 이르되 "그대는 강호(江湖)가 사람을 장애할 뜻이 있다고 여기느냐?" 하고, 또 이르되 "강호는 비록 사람을 장애할 뜻이 없으나 사람들이 초월하지 못하기 때문에 강호가 사람을 장애하는 셈이 되었으니 강호가 사람을 장애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느니라" 하였다.
용아는 이와 같이 불조의 관문을 초월하여 원수같이 보았다. 그러기에 이르기를 "밝히기는 밝혔으나 분명한 것은 아직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없다" 하였다.
"강호가 어찌 사람을 장애하리요" 한 것은 속담에 이르되 "자기가 헤엄칠 줄 모르면서 강이 꼬불꼬불한 것을 원망한다" 한 것과 어떤 노숙이 이르되 "자신이 헤엄칠 줄 모르면서 구덩이에서 열기가 난다고 원망하는 것 같다" 한 것과 비슷한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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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머리 뒷부분 멍에가 닿는 곳에는 굳은살이 배겨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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