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칙
능엄경의 보지 못함[楞嚴不見]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보이는 것이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이 있음이여, 한낮에 등불을 켬이로다. 보이는 것이 없고 보이지 않는 것이 없음이여, 한밤중에 먹물을 쏟음이로다. 만일 보고 들음이 허깨비나 눈어리 같음을 믿으면 빛과 소리가 허공꽃 같은 줄 비로소 알리라. 일러보라. 교(敎)에도 납승의 이야기가 있던가?
본칙 |
드노라.
「능엄경」에 이르기를 "내가 보지 않을 때에는 어찌하여 나의 보지 못하는 그곳을 보지 못하느냐?"
-이 무슨 요행인가?
만일 보지 않는 곳을 본다면 자연히 저 보지 않는 상(相)이 아니리라.
-혼자서 알고만 있으면 됐지 뭐.
만일 나의 보지 않는 곳을 보지 못한다면 자연히 물상(物相)이 아니어늘 어찌 네가 아니겠느냐?
-마음은 바쁘고 손은 급하게 밀어냈다 끌어들였다 하는군.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천동이 보니 설두(雪竇)가 간략하게 경을 인용하면서도 개요를 잡아 교안(敎眼)을 들추었고, 비록 본칙은 간략하게 거량했으나 송은 매우 자세하였다.* 설두는 「능엄경」 제2권을 인용하면서 먼저 견(見) 아닌 물건은 전진(前塵)임을 밝히고 다음은 물건 아닌 견은 참 성품임을 밝혔는데, 여기서는 나중 단원을 전부 들었으니 이것이 바로 이 공안이 된다.
경에 이르되 "만일 견이 물건이라면 너 또한 나의 견을 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함께 보는 것으로 나의 견을 본다고 한다면 내가 보지 않을 때엔 어찌하여 내가 보지 않는 곳을 보지 못하는가? 만일 내가 보지 않는 곳을 본다면 자연히 저 보지 않는 물건의 모습은 아닐 것이요, 만일 내가 보지 않는 곳을 보지 못한다면 자연히 물건이 아니거니 어찌 너의 참 성품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장수 자선(長水子璿)선사의 주에 이르되 "이 대문의 뜻은 차례차례 맺어 돌아가는데 도리어 다섯 겹의 경문이 있는 중에 여기에는 셋만 있고 두 뜻은 숨었다. 만일 구족히 말한다면 마땅히 이르기를 '만일 내가 보지 않는 곳을 보지 못한다면 또한 내가 보는 곳도 보지 못해야 할 것이다. 이미 내가 보는 곳을 보지 못한다면 나의 견은 자연히 물건이 아니다. 나의 견이 만일 물건이 아니라면 너의 견도 또한 물건이 아니리라. 너의 견이 이미 물건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너의 참 견이 아니겠는가?'라고 했어야 한다" 하였다.
불과(佛果)가 아난의 뜻을 들되 '세계와 등롱과 노주가 모두 이름과 모습이 있는데 견정명원(見精明元)은 무엇이라 불러야 하리오? 바라건대 나로 하여금 부처님의 뜻을 보게 하소서' 하였다. 부처님이 묻기를 '내가 향대(香臺)를 볼 때에 너는 어찌 하겠느냐?' 하면, 아난이 이르기를 '나도 향대를 보니 그것이 부처님의 견을 보는 것입니다' 하고, 부처님이 다시 묻기를 '내가 향대를 볼 때엔 가히 알 수 있겠지만 만일 내가 향대를 보지 않을 때엔 그대 어찌 하겠는가?' 하면, 아난이 이르기를 '나도 향대를 보지 않는 것이 곧 부처님이 보지 않는 곳을 보는 것입니다' 하고,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네가 보지 않는다는 곳은 너 스스로가 알겠지만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곳은 네 어찌 알 수 있겠는가?' 하리라" 하였으니, 옛사람이 이 경지에 이르러서는 다만 스스로만 알 뿐, 남에게 말하지 못했으니 설두는 교안을 드러내어서 부처님을 보는 경지만을 송했고 천동은 경의 뜻을 깊이 얻어서 참 견을 송해냈다.
송고 |
푸른 바다가 마르고
-전과 같이 파도가 친다.
허공이 충만하다.
-털끝도 실끝도 보이지 않는다.
납승의 콧구멍은 길고
-천 리 밖의 매화 향기 가만히 퍼져온다.
옛 부처님의 혀는 짧다.
-외마디 진언을 하려 해도 차지 않는다.
구슬 꿰는 실 아홉 구비를 지났고
-마음과 힘을 공연히 수고롭혔다.
옥 베틀은 이제 겨우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로 세로로 문채를 놓는 것, 내 뜻에 달렸다.
당장에 만난들 누가 그를 알아보랴?
-얼굴 모습이 어떻게 생겼더라?
그 사람 동무될 수 없음을 비로소 믿노라.
-물리쳐서 고독(孤獨) 지옥에다 처넣어라.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설두(雪竇)가 이르되 "겁석(劫石)이 굳더라도 무너지나니, 푸른 바다가 깊더라도 당장에 말려야 한다. 그러한 뒤에야 허공이 가득해진다" 하였다.
불안(佛眼)의 문도 죽암 규(竹庵珪)화상이 백부인 지일(持一)거사와 함께 「능엄경」을 좋아했는데 죽암이 이르되 "만일 전진(前塵)을 여의고 따로이 분별하는 성품이 있다면 이는 바로 생사의 근본입니다" 하니, 거사가 깜짝 놀라면서 이르되 "부처님께서 거짓말씀을 하셨단 말인가?" 하고 반문했다. 죽암이 대답하되 "부처님은 실로 거짓말씀을 안 하셨지만 우선 지금 거사께서 마주 보면서 따져 묻는 마음을 기준한다면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하였다. 이에 거사가 탄복하면서 이르되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1의제의 공을 이해하면 그를 사자후라 한다' 하셨으니 그대는 여기에 머물러 있지 말고 떠나라" 하였다.
나중에 죽암이 상당하여 이르되 '견을 볼 때 견은 견이 아니다. 견까지도 견을 여의어서 견으로 미칠 수 없다' 하니 이른바 낙화는 뜻이 있어 유수를 따르건만 유수는 무정하여 낙화를 보내는 격이니라. '모든 돌려보낼 수 있는 것은 자연히 너가 아니지만 네가 돌려보낼 수 없는 것은 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니, 이른바 봄이 왔다지만 찾을 수 없음을 항상 한탄했는데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줄은 미처 몰랐다는 격이니라" 하고는 할을 한 번 하고, 다시 이르되 "30년 뒤에 능인(能仁)이 남의 집 남녀를 망가뜨렸다고 말하지 말라" 하였는데, 만송은 다만 앞의 세 구절만 가지고 이 공안을 주석하리라. 설두는 부처님이 보시는 경지를 곧장 송했고, 불과는 부처님이 보시지 않는 곳은 오직 스스로만이 안다는 경지를 홑으로 송했고, 천동은 푸른 바다가 마르면 허공이 가득해진다고 송했고, 죽암은 물건 아닌 견이라도 역시 생사의 근본이라 하였다. 이러한 것들에 의거하건대 이 모두가 납승의 콧구멍이 긴 것이며, 모두가 교의(敎意) 밖에 따로이 한쪽 안목을 내민 소식이다.
"옛 부처님의 혀가 짧다" 한 것은 만송이 이르노니 "옛 부처님은 근기에 나아가 남의 말을 따르고 구부려 낮은 근기를 위하는 까닭에 반자(半字)만 말씀하셨으나 납승의 분상에는 한결같이 정령(正令)을 온전히 이끄는 까닭에 따로이 전하는 도가 있느니라" 하노라.
온주(溫州) 서록사(瑞鹿寺) 상방 우안(上方遇安)선사는 토를 잘못 떼어 「능엄경」을 읽었는데, 이르기를 "지견(知見)이 세워지면 지(知)는 곧 무명의 근본이요, 지견이 없어지면 견은 곧 열반이니라[知見立知卽無明本知見無見斯則涅槃]" 하고는 갑자기 깨치니, 사람들이 이르기를 "화상의 도는 토를 잘못 뗀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우안이 이르되 "이것은 내가 깨달은 경지라 끝내 바꿀 수 없다" 함으로써 사람들이 '안능엄(安楞嚴)'이라 불렀다. 그러나 만송은 이르노니 "역시 삿됨을 인하여 바름[正]을 만났다" 하노라.
"구슬 꿰는 실 아홉 구비로 굽는다" 한 것은 공자(孔子)가 진(陳)에서 곤욕을 당할 때 아홉 구비로 굽은 구슬을 꿰는데 뽕따는 여자들에게 비결을 받았다. 비결에 이르기를 "꿀이여, 생각하시오. 생각하시오, 꿀이여" 하매, 공자는 곧 깨닫고 실에다 개미[蟻]를 매고 꿀로써 유도하여 꿰었다. 사주(泗州) 보조 종(普照宗)화상이 천동송고염고서(天童頌古拈古序)를 썼는데 이르기를 "굽은 것을 통하게 하니 마치 구슬을 꿰는 실과 개미 같고, 배회하면서 서로 따르니 마치 비를 뿌리는 용과 구름 같다" 하였고, 부산(浮山) 구대집(九帶集)에는 "구부러지게 띠를 드리웠다" 하였으니, 대의는 금시(今時)의 사람을 간곡히 위함을 밝힌 것이다.
"옥 베틀은 한 번 슬쩍 건드려도 구른다" 한 것은 마치 옥 베틀이 북[梭] 한 번 건네서는 문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천동이 동산의 '첫가을 끝 여름'이란 화두를 들고 이르되, "문을 나서면 풀밭이니, 우거진 풀숲 사이를 헤쳐 지나고 잎새가 떨어지면 가을을 아나니, 검푸른 곳에 떨어진다.
이 경지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베틀은 비록 움직이나 씨[紐印]가 아직 문채를 이루기 전의 도리를 체득해야 된다" 하고는 양구했다가 이르되 "물 밝으니 늙은 조개[蚌]가 태기를 갖은 뒤요, 구름은 무거우니 푸른 용이 뼈를 바꿀 때니라" 하였다.
"당장에 서로 만나니 누가 그를 알리오 / 그 사람 동무될 수 없음을 비로소 믿는다" 한 것은 협산(夾山)이 이르되 "주인옹(主人翁)의 자리에 확실히 좌정했더라도 제2의 소견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어떤 한 사람은 동무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혼자 왔기 때문에 아는 이가 없으리라 여겼더니 시끄러운 저자 속에서 도리어 옛친구를 만났다"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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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암록 제94칙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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